여름날, 띄우는 편지

마지막 기억은 웃는 모습으로

by 이방글

습한 공기와 뜨거운 햇살이 더욱 강렬해지던 여름날, 우렁찬 매미 소리를 들으며 병원 1인실에 아빠와 둘이 있었다. 아빠는 환자복 소매를 걷은 채 침대에 반쯤 누워 TV를 보고 있었고 나는 보호자용 침대에 걸터앉아 여름방학 숙제를 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골판지를 동그랗게 말아 해바라기를 만들어 커다란 판에 붙이느라 온통 본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환기를 시킬 겸 작은 창문을 열었지만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

오빠가 왔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와 함께 병원에 왔었는데 의사의 호출을 받고 잠시 나갔던 오빠가 돌아왔다. 본드 냄새가 역했는지 내게 숙제는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는 오빠의 말에 골판지를 정리해서 가방에 넣었다. 오빠는 아빠의 상태를 눈으로 살피곤 시선을 TV로 돌렸다.

TV 소리만 나던 병실에서 적막을 깬 아빠의 목소리. 내게 초콜릿이 먹고 싶다며 편의점에서 초콜릿 하나를 사다 달라고 하는 아빠의 부탁이었다. 환한 미소로 내게 말하던 아빠의 얼굴이 선명하게 남았다. 조금 귀찮았지만 알겠다며 500원을 들고 초콜릿을 사러 나왔다. 밥도 잘 먹지 못하는 아빠가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하니 꼭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마지막인 줄 모르고.

아빠는 초콜릿을 맛있게 먹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해졌다. 잘 먹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에 혼란스러웠다. 어렸던 내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던 그날을 몸으로는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짐작할 수 없었다. 아빠는 초콜릿을 다 먹지 못했다. 아빠가 남긴 초콜릿이 조금 슬퍼 보였다.

늦은 밤, 막차를 타고 오빠와 집으로 갈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가 집으로 가고 나면 한 시간쯤 뒤에 일이 끝난 엄마가 아빠에게 왔었다. 우리가 버스를 타러 갈 때쯤이면 아빠는 자고 있거나 잠이 오는 목소리로 조심히 가라는 말을 하곤 했다. 오빠는 내게 오늘은 너 혼자 집에 가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왜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한 뒤 가방을 메고 막차를 타러 갔다.

300번 직행 버스를 타고 혼자 집으로 온 나는 텅 비어 있는 집의 불이란 불은 다 켰다. 나 혼자 있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가방 속에 넣어뒀던 방학숙제를 꺼내어 다시 돌돌 말아 붙이기를 반복했다. 똑딱이는 시계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벽 1시.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에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고 귀에서도 두근거림을 느꼈다. 평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받은 전화기에서 울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지막이 부르는 내 이름, 그 뒤에 이어진 말. 아빠가 죽었다고 한다. 온몸이 굳은 채 머리가 쭈뼛 선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나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게 손끝부터 차가워졌다. 엄마는 현금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며 지금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은 나는 돈을 들고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탄 나는 병원으로 가달라고 말한 뒤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죽음이라는 게 내게 다가와 덮쳤다. 참았던 응어리가 터지듯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우는 내게 당황한 택시 아저씨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처음으로 아빠의 죽음을 인정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며 더 크게 울었다. 눈물 콧물 범벅인 내게 아저씨는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택시 안에는 내 울음소리가 가득 차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8월 15일. 음력 6월 26일 아빠의 생일날, 그렇게 아빠는 내 곁을 떠났다. 내게 마지막으로 환한 미소를 품은 얼굴로.

작가의 이전글여름날, 띄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