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히 카페&공방 대표가 되기 전, 나는 2012년부터 2025년까지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의 회사에 재직했었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는 두 번째 직장이었고, 나의 첫 번째 직장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누구나 아는 커피 프랜차이즈였다. 학부생 시절 대학원을 가겠다며 들어간 랩실을 도망치듯 나와 들어간 첫 번째 회사는 그 당시 황금 같은 전성기 시절이었으며, 나 또한 그 빛을 함께 보고자 선택한 곳이었지만 막상 입사 후 내부 사정을 알게 되니 허황된 버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대학원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들어온 제안 하나. 그 일로 인해 나의 인생이 달라졌다.
본사 교육 중 들어온 제안, 제품 개발부서에서의 러브콜이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두근두근 뛰는 설레는 가슴은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감정이 바사삭 사그라들었다. 연이어 터지는 매스컴에서의 우리 회사 내부 실태 고발, 곧이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대표. 그러나 현장에서는 발주가 잘리고 미입고되는 상황, 불안한 상황이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더 큰 물로 나가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직'이었다.
원서 접수와 동시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순간, 나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떨어질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면접이 잡히고 나서야 집에 사실대로 알렸다. 하지만 거세게 반대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처음으로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엄마의 말을 거역했던 사건이다. 보수적인 부모님 아래에서 대학과 직장은 집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며 오빠와 나를 꽁꽁 싸매고 놓아주지 않았다. 순응했던 내가, 처음으로 멀리 떠나는 준비를 하니 엄마도 당황스러웠겠지만 나는 정말 가고 싶었다. 면접만 보고 오게 해달라고 울고 불며 빌었다.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엄마는 허락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울린 문자 메시지 한 통. 합격자 발표였다. 귓속까지 두근거림이 들렸던 그 순간, 합격자 조회 사이트에서 수험번호와 이름을 입력한 뒤 버튼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던 기억이 난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메시지. 머리카락까지 쭈뼛 선 느낌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에 이직을 했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열심히 달렸다.
보수적인 집단으로 유명한 회사. 지연, 학연으로 똘똘 뭉친 곳에서 나는 경남 창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예쁨을 받기도 하고 미움을 받기도 했다. 이례적인 인사 발령으로 그룹에 연줄이 있냐는 소리도 종종 들었으며 오빠가 마산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남자 선배들에게 내가 대신(?) 예쁨을 받기도 했다. 제품 개발 부서와 제품 관리 부서를 오가며 많은 걸 배웠던 회사를 작년 이맘때, 퇴사를 했다. 2025.02.28 퇴직.
인사발령장에 뜬 나의 퇴직 발령으로 인해 선후배며, 동기며 할 것 없이 연락이 쏟아졌다. 믿기질 않는다며 왜 네가 퇴사를 하냐고.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감정이 요동치지는 않았다. 단지 아쉬움이 남을 뿐. 휴직 후 복직을 했을 때에도 어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으며, 최고의 전성기 때 신나게 달렸던 기억을 벗 삼아 다시 올라갈 수 있다고 긍정 파워를 전파했던 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을 냈고 침울했던 현장에서 오랜만에 열정적인 직원을 봐서 옛 생각이 난다던 선배들의 말들. 결국 최단 시간 내에 영업점에서 인정을 받아 점장까지 달았다. 그런 나인데 퇴사를 한다니 다들 의아했을 거라 생각했다.
퇴사는 입사를 하는 순간부터 생각했었고 그 시기가 대략 10년쯤 뒤, 시장 분석부터 재료를 선택하고 조합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순간까지 모든 걸 경험하기까지의 시간으로 정했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영업 현장에서 뛰는 직원들에게, 우리 제품을 경험하는 고객들에게 최선의 선택으로 최고의 제품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탑다운이 아닌 현장과 고객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다. 담당자로서 재료 선택부터 까다롭게 바라봤으며 최고의 품질이 아니면 제품을 출시하지 않기도 했다.(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짓밟히고 모욕적인 말을 많이 들었던 시기였으며, 그때 내가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갔던 선택에 대해서는 그때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애정도 많고 애사심이 여전히 철철 넘치는 나지만,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 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으니까.
퇴사 후 '잔잔히'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공간 기획부터 재료 선별, 조합으로 지금의 잔잔히 카페&공방이 탄생했다. 나에게 마침표가 아닌 또 다른 이정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인 잔잔히. 많은 이야기들이 공존하고 매일 달라지는 계절을 느끼며, 머무름과 떠남이 함께하는 공간, 잔잔히에서의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