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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승 Oct 02. 2020

순간과 찰나의 기록

서랍 속 이야기가 나에게 준 선물

  내 책상 옆 서랍엔 언제나 내가 자주 쓰던 노트와 메모와 가득하다.  언제나 익숙한 그곳엔  필요한 물건들을 넣어두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279x216mm, 120 sheets의 대학노트들을 쓰고 싶을 만큼 써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다니기보다는 책상 옆 서랍장에 넣어두는 것을 선호하게 되는 편이었다.

  특히나 학교 다닐 때부터 전공수업이 끝난 후에는 주로 내가 관심 있었던 기사 스크랩부터 각종 메모와 노트, 그리고 복사본 사진들까지 모아 두고 다시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었던 행복한 기억들은 여전히 내가 고마워하는 내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 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사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시작은 더없이 처음부터 너무나 미비하고 초라했기 때문에  늘 어떤 하나의 일을 잘 해내고 싶었다는 갈망은 생각보다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어떤 확신과 열정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던 거 같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시기가 아니었을 땐 더욱더 아날로그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에 더욱 그 절실함이 지금보다 더 강렬했던 거 같다.

  다행인 건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라는 게 늘 마음의 짐처럼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서서  내가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갖고 다시 그 삶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되돌아 봐줘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청춘의 한 페이지에는 예술의 전당 자료관에서 햇살이 내리던 어느 날 그 햇살을 뒤로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내가 만나고 싶었던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 집중하고 또 집중해주었던 그 시간들은 어쩌면 내가 내 청춘을 기억할 때 가장 고맙게 여기는 순간의 한 페이지 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그때부터의 내 삶도 어느 날부터 소리 소문 없이 진지해지고 진중해지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떤 일이든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때 내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힘들어도 집중해서 몰입했던 그 힘든 선택들은 어쩌면 현실이 아무리 냉혹하고 남들이 보기엔 우습고 한심스럽게 보일지라도 그래도 자신이 확신이 있다면 확신을 갖고 스스로에게 구차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름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성공을 목표로만 살았다면 그 긴 시간이 지나가기도 전에 일찌감치 포기했었겠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혼자서라도 가야 된다고 생각했을 땐 어떤 다른 이기심이 바탕으로 돼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면 필요했겠지만 어쩌면 남들 보기엔 답답할지도 모를 만큼의 무덤덤함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든 잘하고픈 일에 대한 진심 어린 갈망은 인간을 더없이 참 초라하게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바쁘기만 하고 실속 없는 시간을 보냈다 하면 다른 어느 날보다 더 괴롭고 슬펐겠지. 욕심에 비해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서의 나는 너무나 초라했고 때론 비참했었을 것이고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어도 현실은 그저 냉혹했고 잔인했지만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가져야 하는 합당한 실력과 자격은 분명 만 시간의 법칙에 더한 노력을 했어야 함은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실력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도 그때부터 알게 되었는데 어느 날 어떤 바이올린 연주자가 바이올린을 제대로 잘 켜기 위해선 어깨 힘만 빼는데  9년이 걸렸다는 탤런트 임현식 님의 인터뷰 기사는 읽자마자 내게 큰 위로가  되기도 했었고 내가 실수하거나 못할 때마다 남들도 그랬을 거라며 웃어넘길 수 있는 위로의 힘은 또 다른 히든카드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일에 대한 가장 큰 노력의 산물은 결국 노트 안에 든 진심이 담긴 그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하고 초라했어도 자신을 남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것처럼 하대하고 트집 잡으며 함께 미워하지 않은 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날 겪은 시행착오와 무의미한 일들이 그저 이유 없이 기억되고 왜곡된 기억으로 남지 않았던 탓에 지금은 그 자투리 조각보 같은 남은 쓸모없는 천조각들이 모두 모여 한 장의 괜찮은 이불로 만들어질 수 있을 거 같은 이 행복한 착각은 어쩌면 밤하늘 사이를 날아다닐 수 있는 튼튼하고 따뜻한 한 장의 매직 카펫 라이드가 될 수 도 있을 거라는 행복한 상상이 가능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서랍 속에 오랫동안 숨어있던 그 이야기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는 건 녹음기와 카메라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대화가 숨어 있기도 하고 그 대화는 기본적으로 진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정확한 기억과 증거자료로 부족할 순 있어도 그때 서로에게 집중해서 나눈 그 깊은 이야기들은 숨어서만 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이야기들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래서 이제 그 서랍 속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한 걸음씩 나오게 할 생각이다. 순간과 찰나의 기록이 그저 서랍 속에 갇혀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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