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홍지승 Sep 16. 2021

나는 왜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무용 연습실- 냉혹한 그 공간의 기억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발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싶었다.

도도하기 짝이 없는 이 밀당의 귀재를...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눈 하나 끔뻑 안 할 이 존재를... 나는 왜 이토록 목 매여 사랑하는지 그땐 알지 못했다. 본디 사랑의 감정도 때론 무기력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고 그 사랑을 정면으로 마주 본다는 것은 그걸로 이미 나의 이 애달픈 짝사랑은 이미 검증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다. 

  


  내 발은 평발이다. 살면서 내 발이 평발이라서 문제가 될 수 도 있다는 건 발레를 배우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연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력이 내 마음만큼 늘지 않았던 이유 때문에 그땐 많이 힘들어 울기도 했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키나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지만 발레는 냉정하게 말하면 실력이 없으면 그 모든 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평발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하기도 했었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 같은 마음에 비해선 현실은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못했다. 

  이와 반대로 나보다 월등히 잘하는 실력 있는 동기를 보면서 자신의 실력을 비교해 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한 일이기도 했었다. 물론 그 친구들은  나보다 재능도 많았고 노력도 훨씬 더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어른이 되어서 보면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 가능한 일이지만 어린 나이에 이 모든 걸 다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는 그 나 이땐 생각하기 힘든 감정의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습실 안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를 가로질러 뽐내어지는 동기들의 빛나는 실력들을 보면 나만 부족해서 그런 거란 슬픈 생각만 앞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당시엔  부족한 나의 실력만을 원망하고 괴로워할 뿐이지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잘 못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인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잘하고 싶었고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더 공들이고 노력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인드 컨트롤 밖에 없었을 테니까....


 


  춤을 배우기 전엔 늘 말의 힘이 때론 더 셀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말을 통한 표현이 늘 중요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춤을 배우러 와서 보니 말은 생각보다 힘이 없었다. 춤은 보이는 그 자체로 모든 게 끝이 났다. 서 있는 자세만 봐도 애가 얼마만큼 연습을 했는지.. 작품을 한 번만 봐도 바로 보인다던 선생님의 말은 나름 확고했다. 그땐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많아서 그려려니 했었지만 나도 선생님만큼의 나이를 먹고 보니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그런 경지의 나이에 이르렀다. 특히나 아이를 키우면서  내 자식이기에 앞서 사람으로서 아이의 행동만 봐도 그 아이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고 느껴졌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먼저 알게 되는 이런 감정들이 매 순간마다 아이에게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일이 나는 다른 엄마들보다 힘들어했다.  그래서 예전에 유명한 초코파이 광고음악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알게 되는 그 순간이 어쩌면 예측만 해도 미리 걱정되고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나는 한국무용을 배웠다. 당시 그 춤을 배우러 다닐 땐 특별히 어떤 기술이나 기교가 없이도 장단에 맞춰 신명 나게 춤을 추고 뛰어다니는 것과 어렸다는 이유로 생각보다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릴 때 다녔던 한국무용 학원에서의 선생님께 가장 많이 배운건 춤의 실력이 아니라 춤을 대하는 진심 어린 마음가짐과 자기 자리에 대한 정돈된 깔끔함이었다. 당시 무용 선생님은 남자분 이셨는데 아빠의 지인이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춤의 대가라고 인정받고 칭송받으시는 분이었지만 내가 어릴 적엔 선생님도 지금보단 젊었고 훨씬 건강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학원에 연습하러 나오는 우리들에게 춤을 연습해야 하는 공간인 이곳이 언제나 깨끗해야 함을 자주 말씀하시곤 했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쩌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무용 연습실의 공간을 소중히 여기셨던 선생님은 연습실  바닥을 자주  청소하시기도 하셨고 때론 걸레질도 손수 할 만큼 그 공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먼지 한 톨없어야 하는 그 공간에서  큰 축음기 같은 기계에 지금은 보기 힘든 릴 테이프를 감고 돌려서 장단을 틀고 연습과 지도에 집중하던 선생님의 모습은 몰입된 깔끔함과 연결되어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추억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도 작정하고 청소를 하게 되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연습실이 내 집처럼 깨끗하고 평안해야 한다는 말씀은 선생님이 유별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자신이 춤을 추고자 하는 곳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그 공간을 대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춤추는 사람들을 가까이 에서 보고 그 안에 직접 들어가 마음을 다해 사랑을 했고 사랑을 받기도 했으며 사랑을 주기도 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시간이 아깝거나 후회되는 시간이 올까 봐 두려운 적이 없었냐고 물어본다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용과를 다닐 때 내 나름의 좌우명은 무용과를 다닌다고 내 삶을 무용지물 (無用之物) 되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 이후의 내 삶은 한때 정말 내 인생에 꽤 많이 집중하고 몰입했었다. 평생 집중만 하고 몰입만 하고 살았다면 아마 지금과 다른 삶이 펼쳐져 있거나 숨이 막혀 여러 번 쓰러졌을 거 같다. 하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아이도 키우면서 많이 다듬어져 둥글둥글해진 나를 바라보면서 아무리 떼써도 달라지지 않는 내 인생도 이젠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다. 그게 물론 무용 연습실 공간에서만 배운 감정들만은 아니겠지만 차가운 거울 앞에서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생에서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깊이를 가늠하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꼭 움직이는 춤으로만 연결되는 보이는 감정이 아니라 냉정하게 자기를 집중해서 바라보고 겸손하게 삶을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서 만든 김밥의 마력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