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발레 100년 역사사전에 등재된 한국인 발레리나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한국인 최초 단원이 되어 러시아 발레사전에 등재된 한국인 발레리나.
세계 발레역사에서 5대 메이저급 발레단이라고 하면 마린스키 발레단 (Mariinsky Ballet), 볼쇼이 발레단(Bolshoi ballet),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Paris opera ballet), 영국 로열 발레단(Royal ballet),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er)등을 꼽을 수 있는데 유지연은 바가노바 발레학교 졸업할 당시 졸업공연에서 호두까기 인형의 주역이었던 마리역으로 춤을 추었기 때문에 마린스키 발레단의 입단은 본인에게도 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바가노바 발레스쿨을 다녔다고 해서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발레단 입단을 위해서는 무조건 마린스키 극장에 가서 오디션을 보고 입단을 해야 한다. 그렇게 입단을 한다 해도 바로 어떤 좋은 역할의 자리가 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야 하는 피라미드 모형처럼 군무진부터 천천히 승급해서 위로 올라가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발레단 생활은 녹록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점은 발레단 입단 후에 일 년의 반은 거의 세계투어를 다니고 안 가 본 나라가 없을 정도로 여러 나라의 극장에 설 수 있어서 좋았고 러시아 및 세계 최고의 무용수들과 함께 연습하며 춤을 추고 땀을 흘린 것도 좋았으며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아 춤을 추고 갈채를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고 한다.
입단이 어렵긴 해도 무용수로서 러시아 발레의 정점에 있을 수 있어서 무용수로서는 어쩌면 가장 빛이 나던 시절이었음은 분명했다. 특히나 주역 무용수나 솔리스트가 아닌 경우에는 하루 종일 연습실에 나가지 조차 못 할 정도로 단체 연습을 하며 개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때 유지연은 그 시간들을 그렇게 시간을 허투루 쓰게 된다면 자기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자기 스스로의 갖았던 위험의식에 대해 걱정과 염려가 많았다고 한다. 이 말인 즉, 군무에만 발전 없이 머무르게 된다면 자신이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에 스스로 마린스키 발레단의 이름에 치우쳐 입단에만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본인 스스로의 나름 비장하고 결연한 의지도 있었기에 힘든 외국 생활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발레리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 발레역사나 발레 인물사라는 키워드로 이 내용들을 정리한다 해도 유지연은 한국인으로서 바가노바 발레스쿨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영광이 있는 한국인 출신 발레리나이었고 그녀가 러시아에서 이룬 가장 자랑스러운 타이틀 중에 하나는 그녀가「페테르부르크 1903~2003 발레 역사사전」에 등재된 한국인 발레리나라는 사실이다.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이 그 나라의 역사사전에 등재가 되었다는 것은 외국인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활동한 첫 외국인 발레리나이기 때문이었고 그만큼 마린스키 발레단에서의 활동이 발레단에 꼭 필요했다는 의미에서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부분을 좀 더 높이 평가하고 기억해야 할 부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유지연은 30대가 넘는 나이로 무용수로서 솔리스트로 활동할 때 그녀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차츰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고 한다. 물론 다른 나라의 발레단의 입단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본인이 러시아 발레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발레단으로 입단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슬슬 무대에서 내려 올 준비를 하다가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고 그때 그녀는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배운 발레 테크닉과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배운 정통 러시아 발레를 가슴에 안고 러시아에 남아 무용수로서의 활동을 더 하기보다 한국으로 돌아올 채비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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