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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기- 발레리나 유지연 편⓷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

by 홍지승

인터뷰로 시작된 인연.


아마도 이 일을 하기 위해 준비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너무나 막연했고 어디서부터 언제쯤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잘하지 못할 거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나은 걸까? 하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고비들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독이다가도 아니야 시작조차 안 하면 어쩌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까지 그렇게 수많은 감정과 포기 속에서 보낸 시간을 뒤로하고 그녀를 처음 만나 러시아에서 정통으로 발레를 배운 진짜 발레리나를 만나고 나니 제가 알았던 발레의 세계보다 더 넓고 깊은 예술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름 저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준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러시아라는 발레 강국에서 정통 코스를 밟고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활동한 그녀의 서사를 듣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요.

이 브런치북의 새 연재를 앞두고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몰라도 적지 않게 고민을 하던 시점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잘하고픈 그 마음의 이면에는 어느 날 우연찮게 만나는 이런 특별한 인연 덕분에 그렇게 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또다시 좋은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이 들어 노트북을 열어 키보드를 누르게 되는 매직을 발견하게 됩니다.

발레는 정말 타고난 사람들만 하는 예술이라는 생각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는 무용가들을 만날 때마다 더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 한들 그 마음이 얼마나 헛되고 공허한지도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옥석 같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그들이 견뎌내는 인내는 우리가 상상하는 언제나 그 이상의 터널을 겪었다는 것을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기도 해요. 그래서 그렇게 그들은 무대 위에서 빛이 나는 건가? 싶은 그런 초절정의 순간에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예술이 얼마나 잔인하고 힘든 것인지를요...


처음으로 그녀의 연락처를 받았던 건 한 3년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연락처를 주신 분께서 '발레리나 중의 발레리나 '라는 표현을 하셨고 오랜 전부터 이 일을 꾸준히 준비해 온 저의 요청 덕분에 이루어진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를 오랜 세월 지켜본 지인으로서 한 표현이라고 하면서 보물 찾기를 하듯 하이에나처럼 다니는 제게 그녀를 소개해 준 덕분에 인터뷰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바쁜 스케줄로 인해 바로 시간을 맞춰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겨우 잡은 약속마저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었고 일부로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저 또 다음에 갖게 될 미래의 시간을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실 같이 춤을 추었던 동료나 제자, 선배나 후배의 제보는 실로 귀하기 짝이 없습니다. 연습실 밖에서 무용수를 보는 그 잠깐의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무대 공연이라면 실제 같이 그 세월을 보낸 동료의 추천은 사실 어떤 면에서는 더 귀하고 값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발레리나 출신의 어떤 분께서 제게 해 준 말이 있습니다. "춤추는 사람을 귀찮게 하지 마세요. 말을 못 해서 아니라 그 사람들이 정말 바빠서 그런 거니까요. 그렇지만 네게 어떤 시간을 내주게 된다면 그땐 정말 마음을 열고 말을 해 줄 겁니다"라고 조언해 주신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오래된 말이지만 저는 늘 그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번 인터뷰하고 싶다고 말을 하고 바로 어떤 피드백이 오지 않아도 언제든 편하신 시간에 연락 주셔도 된다고 하곤 했었죠. 그렇게 인터뷰 날짜를 조율하다가 그녀의 아버님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올해 봄이 지나 뜨거운 여름 어느 날 그녀를 진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발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


무용책 중에서도 베스트로 꼽는 명작 책 중에「불멸의 무용가들」이라는 책에서 "발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이며 이 전통의 지속성은 대부분 개인으로부터 개인에게, 발레 마스터로부터 댄서에게,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전수된다는 특성이 있다. 이 개인적인 접촉은 댄서들로 하여금 과거 속의 위대한 발레의 인물들과 직접적인 연결이 되어있다."로 적혀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지연의 예원학교 시절 이야기를 듣던 중에 돌아가신 임성남 선생님께 작품을 받은 적이 있다는 말에 이야기 집중해서 듣다 말고 무릎을 칠 뻔했던 이유는 발레에서 말하는 마스터가 무용수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어느 정점이 있다면 그때가 그 순간이었던 걸까? 싶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임성남은 우리나라 발레계의 가장 대표적인 선구자이었고 그가 일본에서 발레를 배우긴 했지만 그의 스승도 러시아 황실 발레를 배우고 제자들에게 발레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를 인터뷰할 당시에도 그는 다른 부분을 말씀을 하실 때보다 예원학교 학생들을 말할 때는 말에서 남다른 애정과 사랑으로 말씀해 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다른 발레 선진국처럼 발레학교가 없다는 점에서 보면 그래도 가장 비슷한 접점의 학교가 예원학교라고 생각하고 계셔서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학교의 학생 출신이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스쿨에까지 입학해서 발레리나로 활동했다는 사실에 대해 그 누구보다 뿌듯해했을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죠. 결국 발레 예술이 발레 마스터에 의해 전수되고 전통으로 이어진다는 발레사적 시각에서 본다면 이 또한 놀라운 만큼 당연스러운 일임이 분명했고 그렇게 발레에 모든 것을 걸었던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 보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술의 지속성이 결국 발레 마스터가 무용가에게 전수해 주는 방식이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이런 순간이기도 합니다. 변하지 않은 마음 덕에 누리는 찬란한 호사 같은 것은 아닐까? 싶어 지니까요. 이야기가 연결이 자연스럽게 끊기지 않고 연결된다는 것은 어떤 드라마 시리즈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처럼 더없이 그 연결고리가 흥미로운 건 당연하니까요. 그래서 아마도 이 날 제가 한 인터뷰하고 난 뒤의 심정은 심마니가 산삼을 뿌리째 캐어낸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폭폭 찌는 폭염에도 그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 일을 해서 다행이고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기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기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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