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차례’에 담긴 의미

명절을 명분으로 가족도 보고 하는 거 아닐까요?

by 이선준

설날은 음력 1월 1일 새해가 되는 날로 '배에 기름칠하는 날'로도 많이 인식되기도 한다. 배에 기름칠을 하려면 먼저 기름칠할 음식이 필요한데, 설의 시작은 그 음식들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직 유교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집은 그 음식들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그 음식을 다 같이 나누어 먹는다. 사실 이 조차 옛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번거롭다는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들도 많다. 아니면 대부분 그 음식을 만드는 걸 독박으로 해내신 분들에 대한 배려로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고 그냥 다 사서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사회가 변화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변화의 긍정적인 측면들도 많지만 '차례'문화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아직 어려서 그래"라는 반응과 "직접 준비해보지 않아서 그래"

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실 것이다.

맞다. 대부분의 집안의 어머니들이 차례를 지낼 음식을 주도적으로 해 오셨기 때문에 그 부담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 어른들은 다 해외에 계시고, 그 자식들만 한국에 있어 명절에 주도적으로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 음식들을 우리 집 어머니가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틀렸다. 그 생각은 음식 준비를 당연히 어머니들이 해오던 우리나라의 관습으로 심어진 편견일 것이라고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그 음식 준비를 누가 하냐 바로 내가 한다. 그 집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주도적으로 음식을 한다. 최근 몇 년 명절 때 음식 준비는 다 내가 했는데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한민국 깊게 뿌리 박힌 유교 관습에 대한 저항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들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그냥 어머니가 일을 하시느라 집안일을 크게 신경 쓰실 여건이 되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내가 그 일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하게 되었다. 또 마침 내가 손맛이 나쁘지 않아 집에서 요리 담당이 되었다.

사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들을 도와주는 착한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족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도와준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요리 준비가 다 어머니의 역할이라고 무의식 중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족이 하는 집안일에 관습적으로 정해진 역할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가족끼리의 합의다. '합의'와 '잘하는 것'에 의해 바뀔 수 있다.

그렇게 몇 번의 명절이 지나 보니 나 또한 차례 음식 준비를 하는 사람으로서 무지 힘들다는 것은 진짜 뼈저리게 느낀다. 어렸을 때 원래 친가 쪽에서 큰어머니가 주도적으로 음식 준비를 하셨고, 나는 옆에서 도움만 드렸다. 근데 내가 직접 주도적으로 해보니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큰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지금까지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니 정말 큰 감동을 받으셨다. 큰 어머니가 감동받은 만큼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들이 이 일로 인해 엄청나게 힘듦을 느끼고 있다는 것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지점에서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는 지금의 나는 사실 차례를 힘들게 굳이 지내지 않는 것이 맞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환경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차례' 문화가 아예 사라지는 것에 대해 좀 아쉬운 감정이 든다. 물론 이게 특정 집안의 어머니만 독박으로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면 좀 다르지만,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가족 다 같이 모이는 명분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바쁜 현대사회 시간 내서 모이려고 해도 못 모이는 게 현실인데, 차례는 핑계 차례라는 핑계로 가족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우리 문화인인데 이렇게 계속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물론 유지되기 위해서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며, 음식 준비가 누구 한 사람의 의무가 아닌 가족 모두의 역할로 인식하고 함께한다라는 전하에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문화인 차례가 될 것이다.



음식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던 뜨끔하는 독자 여러분들도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 같이 하면 어떨까라는 개인적인 희망을 건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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