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다가 ’현실 시골‘에 적응하기
재수를 마치고 대학교 합격 소식을 들은 어느 날, 우편 하나가 집으로 날아왔다.
‘20XX년 XX월 XX일 상근 예비역으로 입대하시기 바랍니다.’
우편을 받자마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난 군대를 신청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 입대를 시킨다고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입대를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처음 보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상근 예비역’은 생전 처음 들어보았기에 뭔가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걸 보시더니 로또 맞았네. 다행히도 상근 예비역은 긍정적인 무엇인가구나 하고 안심했다.
알고 보니 출퇴근하는 군인이 바로 상근예비역이었던 것이다. 근데 입대일이 대학교 입학하고 두 달 쯤이어서 약간의 고뇌에 빠졌다. 도대체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상도 예비역 입영 통지를 받은 후 대학교 입학으로 자동 연기되면 그냥 일반 현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군대를 가보자 하는 생각도 있었기에 해병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기회가 찾아오니 결심과 무관하게 고민이 되었다. 며칠을 고민했지만 전혀 답을 낼 수가 없어 밑져야 본전으로 병무청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처음 전화를 건 곳은 입양 통지는 다른 분이 담당하셔서 다른 곳으로 연락해 보라고 연락처를 주셨다. 그 연락처로 전화를 거니 어떤 나긋한 목소리의 직원분이 전화를 받으셨다. 뭔가 느낌이 좋았다. 그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니 엄청 난 해답을 주셨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됩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유로 입영 연기를 하면 1번은 연기를 해도, 한 번은 연기를 해도 상근 예비역으로 복무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정말 그 말을 듣는 순간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약간 날개 없는 천사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천사의 말대로 연기를 하니 지금까지 짊어졌던 무거운 짐이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연기하고 1년간의 대학교 신입생 라이프를 즐긴 후 독감으로 앓아누운 크리스마스이브날 갑자기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선준 님 내년 1월 xx일 입대하시기 바랍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일자였다.
너무 갑작스러워 멘붕이 왔다. 분명히 해외여행도 가야 하고 알바도 해야 하는데 나 놀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나둘씩 재빠르게 입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입영 통지가 학기 끝나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쫓기듯 훈련소로 들어갔다. 정말 다행히도 상근 예비역은 훈련소 6주만 잘 버티면 집에 갈 수 있었기에 버틸 만했다. 오히려 좋은 경험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훈련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군기가 들어 있어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집이 더 낯설게 느껴진 건 그 집이 부모님이 꿈꾸던 전원생활을 위해 지어진 시골에 있는 전원주택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시골집으로 이사 가시고 1년 반 정도가 지났지만 나는 바쁜 탓에 시골집을 간 건 손을 꼽았다. 그렇기에 모든 게 낯설었고, 이런 환경에서도 또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내가 출근해야 되는 곳은 집에서 도보 25분 정도 걸으면 되는 가깝지는 않은 또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다. 사실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하고 점점 시골에 적응해 갔다. 내가 정말 특이한 케이스였는데 대부분 상근병들은 그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처럼 이방인이 상근이 되는 건 운이 더 좋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잘 알기에 이 동네를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낭만적이고 정 많은 식은 라이프를 떠올리지만 내가 처음 느낀 시골은 좀 달랐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의 특징인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가게를 가나 무심하고 은근불친절했으며, 물가도 도시에 비해 좀 더 비쌌다. 또한 사람의 기운이 뭔가 거세게 느껴졌다. 분명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TV에서 보던 그 향토적인 분위기의 시골이 맞지만 그렇지 않았다. 뭔가 오묘했다.
상상과는 다른 상상과는 다른 건 시골에 점점 정이 더 떨어져 갈 무렵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인사를 건네도 돌아오는 건 무시뿐이었던 곳에서 인사가 돌아왔고, 계산을 하면서 단답으로 이야기했던 직원들의 말이 더 길어졌다. 점점 내가 시골의 일부가 되어 스며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덕분에 떨어졌던 시골의 정이 서서히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을 느꼈다.
나도 점점 시골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배달 음식도 시키지 못하고, 편의점 가려면 20분은 족히 걸어 나가야 하며, 어디를 가려면 차가 있지 않는 이상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절대 적응될 것 같지 않았던 이러한 불편함들이 서서히 일상이 되어 나의 일부가 되었다. 피곤함을 머금고 퇴근하는 길에 보이는 푸르른 논밭과 붉은 석양은 매일매일 지친 나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존재들이었다.
반복되는 단순한 시골 라이프가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왔던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해하고 있다.
뭐든지 처음은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다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쉼을 주는 시골’이 누구에게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