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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내 안에 빛과 어둠을 마주하는 것에 대해

브런치북by_지니

by 생각창고 지니

“안녕하세요. 좋은 뜻에 동참하시라고 연락드렸어요.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서…”

“네. 네,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나, 어제쯤이었을까.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해지 좀 하려고 하는데요.”

“아, 그러신가요 고객님? 해지 말고 일시 중단은 어떠신가요?”

“일시 중단이 어떤 건데요?”

“잠시 중단해두셨다가 6개월 후에 자동으로 납부가 재개되게 도와드리는 기능이에요.”

그 순간, 화가 갑자기 치밀어 올랐다.


왜 화가 났을까.

그건 아마 지난 일 년 동안 해지와 재가입을 반복하며, 매번 전화를 걸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지를 말하는 내가 혹시 잔인해 보이지는 않을까?' 그런 유약함과 우유부단함 속에서, 결국은 스스로에게 지쳐버렸던 것이다.



최근 들어 내 안의 모순을 자주 들여다본다.


어떤 날은 거리에서 잠든 노숙인을 보고 봉사활동에 나서기도 하지만, 술에 취해 있거나 냄새가 나는 노숙인을 보면 도와주기 꺼려진다.


기부금을 내면서도, 이 기부를 통해 내가 얻는 건 뭘까, 되묻게 된다.


관심 있는 단체에 가입했지만, 그 하위 조직에서는 정치적 편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마치 시민들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보면 나 역시 어떤 조직에 속하든, 완전히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정치적 견해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고,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신념을 지니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가치와 관점에 대해 호기심을 품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상반된 감정과 동기가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착함과 이기심, 연민과 거리두기, 열망과 망설임처럼. 누군가를 도우면서도 주저하게 되는 마음, 기부를 하면서도 그 동기를 되짚게 되는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칼 융은 말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빛과 어둠, 모순을 모두 인정할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폴 틸리히는 이렇게도 말했다. “의심 없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고백했다. “내 마음속 갈등과 흔들림도 신께서 이해하신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자신의 불일치와 솔직하게 마주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내 행동의 복잡한 진짜 이유를 탐색하고 인정할 수 있다는 건 자기 이해와 성장의 중요한 신호라고 한다.


경계선 위에서 잠시 머무르며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나만의 성장이고 진짜 ‘성찰’이라는 뜻이다.


또, 새로운 호기심을 품는 과정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은 완벽주의적 기준이며 중요한 건 ‘모순된 자신’을 비난하기 보단 “나는 지금 내 마음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항상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내 안에는 여러 조각들이 있다.”

라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신만의 속도로 회복력도 자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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