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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랜드 Mar 31. 2021

밥보다 중요하고, 잠만큼 소중한 시간

건강하게 깨우는 숨, 운동


아침 등원 길에 아이와 헤어진 후 곧장 강가로 나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동안 걷고 들어온다. 아침을 맞는 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시간이 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말로 설명하기에도 벅찬 그 무언가가 강으로 날 강하게 이끌었다. 적어도 처음엔 그러했다.

그렇게 운동하길 2주, 뛰어도 보고 걸어도 보고 경보를 해봐도 계속 정신은 밤과 새벽의 중간 그 어디쯤에서 머물고만 있는 느낌이었다. 아침이 되었지만 잠든 채 깨지를 못하고 오히려 우울함만 쌓여갈 뿐,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대로 지속한들 원하는 만큼 단단한 몸을 만들기에도 영 뭔가 아쉽고 부족했다. 분명 지대한 도움이 되었겠지만, 눈바디로는 수확이 없으니 의지도 무너지고 활기는 점점 사라졌다. 결국 그만둔 아침 운동. 그 뒤로 운동 없이 반복되는 등원-집-하원-집의 일상은 점점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또다시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그럴 때마다 소울메이트 덕분에 난 또 일어선다. 이번에는 필라테스를 제안해온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선견지명은 역시나 옳다.


처음 제안했을 땐 감흥이 크지 않았다. 그룹, 개인 레슨을 다 경험해본지라 6대 1 그룹 수업이 영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1대 1이 아니면 전혀 의미 없다 생각해 100회권을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반응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괜한 짓해서 돈만 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첫 수업 후, 기대가 없어서였을까. 무려 6년 만에 다시 시작하게 된 필라테스는 몸 구석구석에서 반응하고 있다. 지금까지 생전 초면인 근육들과 하이파이브하는 느낌이다. 의욕도 근육도 티 나지 않지만 신명 나게 차오르는 중이다.



장소와 시간,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은 운동을 매일 한다는 건 보통의 의지로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걷고 뛰는 분들을 보면 너무나 존경스럽다. 나도 제한이 없는 환경에서 운동을 시작해보았다. 하지만 나에게 아침 걷기는 (그래 봐야 2주였지만) 이상하리만치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사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운동과는 담쌓을 것 같아서 시작했었다. 시작부터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있었다. 그러니 오래 갈리 또한 만무했다.




요가, PT, 필라테스, 크로스핏, EMS 트레이닝, 점핑 그리고 다시 필라테스




지금까지 거쳐온 운동들이다. 지금 돌아보니 20대에는 항상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운동을 쉰 적이 없다니.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오전 업무를 끝내면 오후에는 PT를 받았고, 밤 근무를 해도 아침 귀가길에 집이 아닌 헬스장으로 향했다. 겨울이면 심철권(심야+철야)을 끊어 평일에도 퇴근과 동시에 보드를 타고 아침에 곧장 출근하는 마치 체대 입시생과 같은 스케줄이었다. 시즌이 끝나 근질근질해진 몸은 크로스핏에 빠졌고 팔다리에는 처음 보는 근육들로 빵빵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은 늘고 살도 차올라 몸은 더 커져만 갔다. 결혼 준비를 하며 근육과 군살 정리를 위해 EMS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EMS : 고강도 단시간 운동, 전용 수트를 입고 운동하면 미세한 저주파가 근육을 자극하는 원리, 20분의 시간으로 6시간 운동 효과를 보는 운동)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매료되어 시작했지만 가성비가 너무 떨어졌다. 다시 돌고 돌아 PT를 받았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3년간 운동하는 나는 없었다.


출산, 육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시작한 운동은 당시 핫했던 점핑이었고, 3개월간 6kg를 감량했다. 일을 시작하며 다시 돌아간 몸은 이제 필라테스와 함께하게 되었다. 길고 짧은 공백기가 있었지만, 여지껏 강도 높은 운동을 오래 해서 정적이진 않을까 했던 걱정은 다 사치였다. 오히려 지금 내 몸은 잠든 근육을 깨워 탄탄하게 만들어 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무엇을 하든 적재적소의 타이밍이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운동이었고, 그 운동은 필라테스였다. 하루하루 파이팅이 넘친다. 당분간 지금의 나에게 이것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을 것 같다.






잠깐 다른 이야기이다.

나와 참 비슷한 구석이 많은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생계에 필요한 현실적인 환경으로만 봤을 때 그 친구는 전반적으로 넉넉했다. 취미로 하는 주식마저도 성공한 친구는 매일매일이 행복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의외의 말을 건넨다.


"나 너무 우울해"


분명 무슨 일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는데 없어도 너무 없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점점 늦어지며 친구의 자유도 늘어만 가는데, 이게 문제였다.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이 들었을 땐 이거 무슨 배부른 소리야 했을 테다. 그런데 친구는 심각했다. 자유를 자유롭게 즐길 준비가 안 되었던 것이다. 공허한 시간은 압박으로 가득 찼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당연하고, 나에게 자유가 가당키나 한 건가라는 물음표는 결국 존재 자체도 스스로가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대화의 끝에 친구는 우울함의 원인을 깨달았고, 그것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일과'가 없는 것이었다. 친구에게 배움, 운동, 좋아하는 활동 등으로 알차게 채워보길 제안했다. 매일 2만보를 걷는 친구이지만 운동을 선택했다. 오래전부터 신나고 힘든 근육 운동을 하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그런 친구의 니즈에 꼭 맞을 운동으로 크로스핏을 적극 추천했다. 체험 먼저 해보기로 결정했고, 기분 좋게 굿나잇 인사를 한 시간은 새벽 2시.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나지만 '내'가 사는 이야기, 요즘의 '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시간은 더욱 소중해 며칠이고 곱씹게 된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내 설레어 떨리기까지 하는 시간, 그런 시간이 없어서 친구는 더 우울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그렇게 각자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기대, 그리고 함께 나눈 이야기를 꼭 끌어안고서 잠을 청했다.






운동을 해야만 꼭 날 살릴 수 있다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맘에 시작하기조차도 버거울 일이다. 아니다. 바꿔 생각해보면 단지 운동 하나만으로 내가 숨통이 트이는 것, 이것만큼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건 또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해진다. 운동과 같은 효과의 신체적 움직임만 있다면 분명 삶의 질을 좌우할 무언가를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멍 때린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운동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멍 때릴 시간, 즉 뇌를 쉬게 해 줄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억지로라도 뇌를 비워내기 위해 명상을 배우기도 한다. 곳곳에서 넘쳐나는 정보들을 가려내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이기에.


어떤 것이 되었든 시작도 유지도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변화보다 안정, 편안함을 추구하는 심리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조작된 행동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거스르고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 어려운 걸 시작해냈다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응원한다.


매 순간이 나에게 소중하다. 그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내고 싶다면 건강한 나의 신체가 수반되어야 한다.




오늘의 나를 살리는 건 운동이다.
그리고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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