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혹시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
누군가는 나에게 거스름돈을 주려
주머니 속에 넣은 손을
만지작거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외로운 적이 있으신가요?
내가 얼마를 주었든
그것은 대가 없이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길
바래 그리했던 것인데
당신은
딱 이만큼만 받겠노라
선을 그어놓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넘으면
그건 모두 돌려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아
쓸쓸했던 적 있으신가요?
이석원 씨가 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 있는 내용이다.
(조금 어투만 변형시키긴 했지만)
이석원 씨는 거스름돈을 움켜쥔 것 같은 그 여성분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성분은 항상 '뭐해요?'라고 물었기 때문에
그가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뭐해요?'였다.
사실 이 책은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중 '언제'에 초점 맞추며 이야기하고 있다.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짝사랑남(독자가 남성이면 짝사랑녀라고 해석하시길)
이 연락 오기 전까지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걸
그가 나를 방관하는 태도에 화도 나고,
제멋대로인 것 같은 느낌에 철저한 을이 된 것 같고(맞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했던 행동을 회상하며 해석해보고,
그 해석을 친구에게 재해석해보라고 시켜도 보고,
내가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시간에 그는 뭐할까 고민해보면,
그는 내 생각 안 할게 뻔하고 ,
그런 생각해보니 지금 너무 자존심 상하고,
그런 수많은 부정적인 언제 속 '뭐해요?'라는 연락 한통에
나는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
얼마나 찌질한가.
그러나 다들 알 것이다.
찌질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작가 양의 지난 글을 보면 알겠지만
작가 양 또한 쿨한 성격은 아니다.
작가 양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밥 먹었어?'이다.
작가 양은 그 말 한마디로부터 그 사람에게 얽매이게 된다.
사소한 물음은 오히려 사소한 의미가 아니게 된다.
사소한 물음 하나가 작가 양의 하루 기분을 좌지우지시키니 말이다.
그걸 잘 알기에 매번 당하고 다짐한다.
쉽게 마음 주지 말아야지.
그런데 마음이란 게 내 멋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오죽하면 제일 친한 친구가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 몰래 연애할까.
이석원 씨는 나 자신을 가꾸는 일이 소중한 이유는
그 일을 함으로써 나와 내 삶이 아직 결론 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믿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느낌.
그런 느낌을 가질 수만 있다면
하다못해 살이라도 몇 킬로 빼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게 별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 해도, 그 작은 변화의 여지라도
내 남은 생이, 내 몸과 마음이 이대로 정해져 버리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언제까지고 결정되지 않을 삶을 위하여.
나는 좋아할 것 같은 사람과 대면할 때
항상 생각한다.
얽매이지 않겠다고.
그에 의해 기분이 좌지우지되지 않겠다고.
그 노력은 '연애하면 다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갇히지 않기 위해서
내 몸과 마음이 '다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정해져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결정되지 않을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