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도 될 거라 생각한 게 막상 없으니깐
오랜만에 나의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왜냐하면 약 두 달 전에 나는 맥북 메인보드를 박살 냈기 때문이다.
수리비 100만 원대의 가격에 놀란 나머지 다른 방안을 찾느라
두 달이나 걸린 것이다.
두 달 동안 나는 친구의 노트북, 오빠의 노트북, 아빠의 노트북을
빌려 빌려 작업을 해갔다.
그렇게 빌려서 쓰는데, 빌릴 당시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USB에 내 파일들이 다 담겨있고, 노트북만 바뀐 거니깐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는 걸 첫 번째 빌린 노트북을 사용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습관이 가장 묻어나는 게 노트북인걸 왜 몰랐을까.
노트북을 열자마자 즐겨찾기에 브런치를 가려니깐,
아. 오빠는 유튜브 게임방송, 교내 장학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놨네..라는 생각에
네이버 검색어에 '브.. 런치'라고 써서 둘러본다.
뿐만 아니라, 로그인을 하는데
'어 난 페이스북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서 비밀번호 칠 일이 없었는데'
내 비밀번호가 뭐더라.. 를 생각하고 있다.
이것뿐일까. 일러스트레이터를 켜는데 작업 보드가 나와는 정말 다르다.
나는 패스파인더, 캐릭터 등등 옆에 다 두며 작업을 하는데
오빠는 아닌가 보다.
이렇게 노트북 유목민 생활을 하니깐, 그 사람의 습관에 나를 맞추는 게 참
버겁다는 걸 알았다.(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감정으로)
노트북 하나쯤이야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나 했는데,
한 달 반쯤 되니 스트레스가 쌓여쌓여 아빠한테 서러움을 얘기하다가
초등학생처럼 눈물이 났다.
울면서도 '아 이 나이에 노트북 때문에 울다니'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정말 별 거 아니고, 난 아날로그가 좋더라.라고 주위에 말하던 내가
생각보다 노트북에 많은 것을 공유했었나 보다.
정말 이별한 것 같았다.' 다시 복구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말이다.
주야장천 길게 썼는데, 예상했다시피 대단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노트북에게 아니 평소에 습관을 공유했던 모든 것을 한번 닦아주자.
먼지 있는지 한 번 봐주고,
안에 한번 슬쩍 들여다봐주자.
별 거 아니지만 없으면 너무 힘들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