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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Mar 20. 2020

바이러스를 막는 과학자들 <컨테이젼, 2011>

과학자들의 사투와 미디어의 공포 마케팅

2월 3일 날 페북에 썼던 글. 이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를 휩쓰는 강한 놈인지 몰랐다.


2개월 전, 기존 연구실을 나와 새롭게 도전한 분야는 바이러스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새로운 연구실에서 바이러스와 조금 친숙해졌나 할 때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가 발생했고,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 연구실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RNA 계열 바이러스도 연구하기에 뭔가 연구의 의미가 십분 체감되는 요즘이다.


은근 초호화 캐스팅인 영화 컨테이젼


영화 컨테이젼(Contagion, 2011)은 바이러스 재난 영화이다. ‘바이러스’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런지 영화 속의 과학자들과 동일시가 일어났던 것 같다. 영화가 나고 내가 영화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간 순삭이었다. 


사실 플롯 상으로는 결말이 뻔한 할리우드 재난 영화이다. 재난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만 끝내 백신을 개발했다는 해피엔딩. 아마 결말이 뻔한 영화라 생각해 당시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의 포커스가 강하고 무서운 짱짱 바이러스가 아닌 바이러스를 막는 과학자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기에 글로 남겨놓지 않으면 감동을 잊을 것 같아 포스팅으로 남긴다. 


영화는 세계 곳곳을 조망하며 바이러스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과학자라고 해서 딱히 만병통치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암울한 현실까지도 잘 조명했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과학자들의 정신은 다시 곱씹어볼 만하다. 특히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하게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편의상 세 가지 유형의 과학자들로 분류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과학자 1 - 바깥세상과의 접촉점


로렌스 피시번(메트릭스의 모피어스)이 연기하는 치버 박사는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근무하는 고위직의 과학자다.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총지휘를 하고 있는 동시에 정치와 언론과 여론을 상대해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이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스튜디오 인터뷰 장면이다. 치버 박사가 방송사와 스튜디오 인터뷰를 하던 중 사회자가 갑자기 원격으로 음모론으로 파워 블로거가 된 한 사람을 인터뷰에 포함시켜 개싸움, 아니 토론을 유도한다.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공포심을 부추겨 파워 블로거가 된 이 사람을(근데 배우가 주 드로..) 이성적으로만 설득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미 CDC가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한 블로거가 주장하는 사실이 백 프로 거짓이었다면 사실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겠지만 적당한 비율의 사실과 선동을 섞는 그 교묘함을 나였다면 어떻게 상대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했던 장면이다. 국가적인 패닉 상태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비공개로 돌리고 있었던 수치들을 생방송에서 까발리는 장면에서는 나지막한 탄식까지 나왔다. 저렇게 과학자들의 신뢰를 뭉개버리면 믿을만한 사람이 없을 텐데.. 하고 (과몰입 맞음). 왠지 우리나라 언론을 상대하는 질병관리본부의 현실과 오버랩되어 씁쓸했다. 


투명한 정보의 공개 vs. 적당한 정보의 통제를 고민해야 하는 정부와 관련 부처의 딜레마를 잘 표현한 것 같다. 하긴 SNS가 제3의 눈이 된 요즘 세상에서 통제가 쉽겠나. 하지만 정말 영화같이 하루에 몇십만 씩 죽어 나가는 바이러스라면 진실을 공개하는 순간 헬게이트가 열릴 테니 이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보통 같으면 긴장감에 손톱을 뜯으며 봤을 텐데 선견지명이 있었던 와이프가 영화 직전에 손톱을 깎아주어 애꿎은 입술만 계속 문질렀다.




과학자 2 - 최전선 실무진


케이트 윈슬렛(타이타닉의 로즈)이 연기하는 미어스 박사는 최전선에서 발로 뛰는 실무자이다. 감염자 동선을 파악하고, 접촉자들을 만나고, 바이러스 진원지를 추적한다. 가장 위험한 직무이기도 하다.


감염경로가 정확히 파악도 안 되는 바이러스를 저렇게 추격해도 되나 하고 걱정이 쌓여가고 있을 무렵 보란 듯이 미어스 박사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출장 중 묵고 있는 호텔에서 자신에게 바이러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인지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영화에서 가장 몰입했던 장면인 것 같은데, 참 영화다우면서도 현실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게 되었을 때의 그 절망감이 짧은 장면이지만 압축적으로 표현되었다. 거의 흑백의 명암만으로 무미건조하게 표현이 되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 마음이 저린 장면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 누군가가 과학자였기 때문에 미어스 박사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책임지다 그렇게 스러져 간다. 방호복을 입은 채 꽃 한 다발로 미어스 박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후배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미래의 나에게 저런 일이 맡겨진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영화지만 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장면이었다.




과학자 3 - 바이러스와의 사투


제니퍼 엘 이 연기하는 앨리 박사는 연구실에서 바이러스와 24시간을 씨름하는 과학자이다. 이놈이 어떻게 우리 몸에 침투하는지를 밝힐 뿐 아니라 그 침투 경로를 막는 백신까지 개발해야 하는 중대한 미션이 부여된 인물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호락호락하겠는가, 끊임없이 새 백신을 개발하여 원숭이에게 투여해도 불쌍한 원숭이들은 족족 죽어 나간다. 실험을 해도 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현재 내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잠깐 눈물 좀..


영화에서는 현실 과학 세계에서의 한계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고위험군 바이러스의 경우는 High community risk + High individual risk 등급으로 분류되어 생물안전 최상 등급인 BSL-4 실험실에서만 취급이 가능한데, 이 BSL-4 실험실은 우리나라에 2개, 그리고 전 세계에 60개 미만으로만 존재한다. 다르게 말하면, BSL-4 시설을 갖추지 못한 수천 명의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무기력하게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씨름해야 하는 순간에 소수에게 그 부담이 지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초반에는 이 바이러스를 BSL-3 시설에서도 연구하지만, 예상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임을 인지하고 연구 허가를 BSL-4 등급으로 올린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지시를 생까고 BSL-3에서 실험하는 과학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나의 논문을 놓칠 수 없다!!). 그리고 심지어 보란 듯이 배양에 성공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동원해 해결 방안을 낼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소수에게 부담을 지울 것인가? 감독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이 소수 중의 한 명인 앨리 박사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57번째 백신이 원숭이를 바이러스로부터 막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너무 이르다. 앨리 박사가 상부(치버 박사)에 토로하는 내용을 들어보자:


“원숭이가 산다고 사람도 산다는 보장이 없기에) 임상 실험을 거치면 한 달, 기관의 허가가 있으려면 2주, 백신을 제조하는 시간 한 달, 분배하는 시간, 투여 교육 시간 등을 다 따진 후에는 이미 백신으로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 아닐지도 모른다."


엘리 박사는 이렇게 시간이 없다고 실컷 불평하다 자기는 퇴근(?!)한다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남기며 전화를 끊는다. 그래 이날만큼은 쉬고 싶었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57번 백신을 꺼내 자신에게 직접 주사를 하고 뚜벅뚜벅 걸어가 바이러스와 접촉한다 (진정한 걸크러쉬). 마루타를 자처한 것이다. 너무나 영화 같은 설정이지만, 하루에 사망자가 몇백만 스케일로 커진 이 긴박한 상황에서는 나라도 눈 딱 감고 찔렀을 것 같다. 누군가는 백신을 맞아 안전성과 효용성을 증명해야 하니. 다행히도, 그녀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고 57번 백신은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현실 코로나바이러스와 이 영화가 닮은 점이 있다면 이 시간에도 영화같이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 또 그 노력을 조롱하듯 공포 마케팅을 벌이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관종 블로거가 백신이 만들어졌음에도 백신은 제약기업과 정부가 합작해 만든 또 다른 약물이라고 백신을 맞지 말라고 호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블로거의 목적은 사람들의 안전이 아닌 자신이 유명세로 얻게 되는 어떠한 이득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종은 지금 포털 뉴스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오늘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와 꽤 오랜 세월을 함께했기 때문에 면역 체계가 최소한 위험 물질로 인식을 한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 면역 체계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바이러스가 등장한다면? 그것이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불러온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녹고 있다. 과학자들이 진심으로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상황은 빙하 속에 갇혀 있던 수천 년, 수만 년 전의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나는 것이다. 어떤 바이러스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 고대 바이러스가 현실 세계에 등장한다면 그때는 정말 걱정할 때이다. 패닉 버튼은 그런 때에 누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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