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로 말하는 아기
루하 D+9
루하를 낳기 전까지 아기의 얼굴을 엄청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냥 배고파 울면 찡그리고 자면 평온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아기의 얼굴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루하가 눈이 똘망똘망해서 (그리고 엄청 굴려대서) 그런지 몰라도 수유할 때 보면 참 재미있다. 우선 잠에서 깨어나 배고픈 상태면 입을 크게 벌리고 왼손(가끔 오른손)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빨아먹으려 한다. 하지만 보통 옷이나 속싸개로 손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손을 먹기위한 루하만의 사투가 벌어진다. 너무 간절하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한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잔인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기도 한다. 물론 영상도 찍었다.
그래도 부모인데 배고픈 아기를 마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속싸개를 푼다. 봉인 해제된 루하는 다리를 열심히 꼼지락거리며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먹는다. 그 모습도 너무 웃기고 귀엽다. 요즘엔 배변이 활발해져서 밥 타임에는 항상 먼저 기저귀를 갈게 된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 한 손으로 기저귀 갈이대로 옮길 때 그 특유의 표정이 있다. 아마 곧 밥을 먹을 것을 아는지 시선을 오른쪽으로 내리깔며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다. 수줍은 듯한 표정이라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다. 신생아가 아니라 무슨 어른을 상대하는 것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처음 몇 번 기저귀를 갈 때에는 이질감에 항상 울었는데 이제는 즐긴다. 가끔 기저귀를 벗기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벗긴 타이밍에 맞추어 오줌을 갈길 때도 있다. 똥 세례는 한 번 받아봤다. 기저귀 간 후에 밥 타임이라는 것이 학습이 됐는지 그 희망찬 표정은 여전하다.
시력이 조금 생겼는지 젖병이 보이기 시작하면 젖병에 시선을 고정한다. 진짜 이 아기가 젖병을 알아보나? 하는 생각에 바로 물리지 않고 젖병을 상하좌우로 움직여 봤는데 오 정말 일편단심 젖병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표정은 매우 진지하다. 어서 젖을 물리지 않고 무얼 하느냐 하고 엄히 꾸짖는 표정이다.
젖병을 물리면 세상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열심히 빨아먹는다. 너무 귀여워서 사진이나 영상을 몇 개나 찍었는지 모른다. 웃긴 게 젖을 빨면서 반 이상은 나를 본다. 루하 입장에서 내가 대각선 위쪽에 있기 때문에 나를 보려면 눈을 옆으로 굴려야 하는데 젖은 열심히 빨면서 시선은 나에게 고정한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얘가 내 눈치를 보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저렇게 먹으면 불편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내 얼굴을 루하 위쪽으로 가져갈 때도 있다. 좀 편하게 먹으라고.
종종 열심히 젖병을 빨다가 멍하니 허공을 주시할 때가 있다. 너무 허겁지겁 먹어서 숨을 고르나 보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곧 부르릉 하는 소리와 기저귀 밑으로 꽤 강한 압력이 느껴진다. 아주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난 루하는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먹는데 집중한다. 아, 볼일을 보고 난 후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고 잠이 들 때도 있다. 얼마나 시원했으면.
대략 30-40ml 정도 먹고 나면 잠이 오는지 속이 더부룩한지 눈이 스르르 감긴다. 웃긴 건 눈이 감겼는데도 젖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입이 반사적으로 오물오물거리는데 이건 정말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기 때문에. 트림을 시키려고 이 상태에서 조금 일으켜 올리면 아주 신 것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가스가 올라와서 그런 것 같다. 어깨에 안아 트림을 시켜주면 조금 헥헥거리다가 이내 잠이 든다. 그렇게 몇 번을 더 깨워서 먹여야 30분 후 또 밥 달라고 쩝쩝거리지 않는다.
신생아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를 취할까. 나중에 말까지 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해진다. 나를 닮았다면 말보다는 행동파일 것이고 엄마를 닮았다면 수다파일 것이다. 루하야, 너가 어떤 아이로 자랄지 아빠는 참 궁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