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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Sep 16. 2021

돌파 감염자가 되다

내가 확진자라니..?

루하 D+241


미국은 9월 6일이 Labor day 공휴일이었다. 이 연휴를 맞아 큰맘 먹고 우리 세 식구 1박 2일 여행을 계획했더란다. 장소는 차로 2시간 떨어진 콜럼버스. 루하가 태어난 이후로 30분 이상 거리를 한 번도 못 벗어난 아내에게 환기할 시간을 줄 겸, 8개월이 되어가는 루하와 함께 추억도 쌓을 겸 과감히 결단한 여행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지만 아내와 난 백신도 맞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서 가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첫날은 이케아 한 바퀴 돌고 호텔로 돌아와 주위 한 번 산책하고 쉬고, 둘째 날은 체크아웃하고 동물원에 갔다가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것 보고 식겁해 입구에서 되돌아왔다. 그리고 동물원 대신 사람 없는 숲 트래킹으로 전환해서 1시간 정도 숲길을 걷고 왔다.


모든 것을 쏟아낸 1박 2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컨디션이 좋지가 않았다. 당연히 무리했을 거란 생각에 그냥 푹 쉬었다. 그날 밤부터 몸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보통 몸살이나 독감과는 달랐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온몸에 피로가 쌓였는데 감각이 사라진 느낌? 긴장을 해서 버티는 것이지 이 긴장이 풀리면 뭔가 엄청나게 아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콧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코가 완전히 꽉 막혀서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다. 독감이 몸살과 같이 왔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아래부터는 혹시.. 하는 마음에 써 놓은 증상일지다.




9/5 일 - 몸이 좋지 않아 Night time 2알 먹고 잠.  코가 꽉 막혔음.


9/6 월 - 밤 12시 반쯤 열나기 시작. 자기 전에 약을 먹었음에도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이상했음. 4시까지 버티다 타이레놀 2알 먹음. 열이 아주 조금씩 가라앉긴 했지만 완전히 내려오진 않음. 6시쯤 되어서야 잠이 듦. 이후 타이레놀을 먹지 않으면 열이 많이 나고 두통 심함. 목 침 삼킬 때 따가움. 온몸이 쑤시는 증상. 밥 한 술 떠먹기도 힘듦. 이 날이 고비였던 듯.


9/7 화 - 월요일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열이 떨어지지 않음. 목에 가래가 차고 기침이 조금 나오려는 낌새. 하지만 심한 기침으로 이어지진 않음. 주기적으로 약 먹으며 버팀. 저녁에 누우면 코가 꽉 막히는 건 동일. 옆으로 누우면 조금씩 뚫림.


9/8 수 - 목 가래가 더 걸걸해짐. 간간히 기침. 열 완전히 안 떨어짐. 오후에 라면이 간절해서 끓여먹었는데 후각과 미각이 완전히 상실된 것을 깨달음. 귀가 살짝 막히는 듯한 답답한 느낌.




어떤 감기도 높은 열이 2일 이상 지속된 적이 없었는데 월화 연속으로 열이 나는 것을 보고 혹시..? 하는 생각은 했지만 딱히 누구를 만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거의 피해 다녔어서 에이 아니겠지..라고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그놈의 노마스크 족속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스치기만 해도 감염되는 델타? 혹시 새로 상륙한 뮤 변이? 과학적 상상력이 나래를 펼치려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서 아예 고려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요일. 아픈 와중에 뜬금없이 라면이 너무 땡겨 아내의 허락을 맡고 끓여먹었는데, 아무 맛도,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는 분명히 뚫려 있는데 후각과 미각이 상실된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힌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이 증상을 자각하고 나니 아 이건 진짜 코로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안타깝게도 미국은 코로나 검사가 예약제라 다음 날에 검사 예약을 잡았다.


혹시 몰라 몸이 힘들어지는 초반 시기부터 루하랑 격리를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들은 면역 반응이 성인만큼 심하지 않아 무난하게 지나가는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만약 루하가 코로나에 걸렸다면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목요일, Walgreens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셀프(!) 검사였다. 유튜브 동영상들을 미리 숙지해 면봉을 깊숙이 찔러 넣었지만 생애 첫 코로나 검사라 제대로 찔렀는지를 모르겠어서 영 찝찝했다. 게다가 Walgreen는 결과까지 48시간이 걸린다니.. 결과 확인 겸 전문가의 면봉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클리브랜드 클리닉에 금요일자로 영상진료를 잡아놨다. 클리브랜드 클리닉은 의사의 처방이 없이는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참 여러모로 답답한 나라다.


금요일 아침 8시에 영상진료를 받고, 9시에 클리브랜드 클리닉에 출두해 면봉 검사를 받았다. 오, 그런데 깊숙하게 찔러 넣는 것이 아닌 콧구멍 살짝 안쪽에서 대여섯 번을 문지르는 것이었다. 이게 새로 나온 검사법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검사 결과를 받았다: 확. 진. (그리고 그다음 날 나온 Walgreens 결과도 확진)


클리브랜드 클리닉 결과
Walgreens 결과

허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담담했다. 10만이 넘어가는 일일 확진자 수에 내가 한몫했구나.


문제는 루하와 아내다. 이미 고비를 지났기 때문에 감염력은 초반보다 많이 떨어졌겠지만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 지내려 한다. 다행히 난 백신 2차를 2월에 맞았고, 아내는 4월에 맞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내가 백신 효용성이 나보다 낫다. 어쩌면 그래서 나 혼자 걸렸을 수도. 백신 효용성이 6개월부터 떨어진다는 논문을 봤던 기억이 있다. 아니면 그냥 여행 때문에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진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내 회복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루하와 아내가 건강한 것이 최우선이다.


요새 실험이 너무 많아서 매일매일을 숨 넘어가기 직전까지 실험하다 집에 와서 쓰러지곤 했는데, 코로나 덕분에(?) 집에서 강제로라도 쉬게 됐다. 그래도 백신을 맞아서 이 정도인 거지, 백신을 안 맞았다면 지금 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을 하고 있을지도. 미국은 부스터 샷을 준비 중인데 그냥 자연(?) 부스터 샷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원래 후각 미각이 돌아오는데 한두 달 걸린다고 하는데 백신을 맞아서 그런지 벌써부터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너무 감격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백신을 맞아도 소용이 없다가 아닌 돌파 감염이 될 지라도 백신을 맞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아프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이다. 그러니 아직 접종을 안 한 분이 계시다면 가능한 한 빨리 백신 접종을 하라 권해드리고 싶다. 미국의 경우 곧 3차 부스터 샷을 시작하는데 델타 변이나 뮤 변이(혹은 오미크론 12/8일 추가)와 상견례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맞으라 권해드린다.


몸이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먼발치에서라도 루하를 하루 종일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종을 골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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