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의 슬픈 초상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넷플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봤다. 육아를 하면서 이런 시리즈물을 보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역시 사람이 의지가 있으면 시간을 잘게 쪼개서 해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었던 시리즈였던 것 같다.
사실 '오징어 게임'이라는 제목이 흥미롭긴 했지만 딱히 끌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가 나오다니..!’ 라는 반응들이 많아 대체 어떤 드라마이길래 하는 생각에 시청을 시작한 드라마였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면을 떠나 감독님께서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드라마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기독교 레퍼런스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총 3명의 기독교 관련 인물이 나오는데 각 사람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 주의: 여기서부터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기도 아저씨
기독교 관련 인물 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길게 나오는 캐릭터다. 줄다리기 게임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며 계속 중얼중얼 기도하는 캐릭터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사이비스런 면이 더 강하다고 느꼈지만 아마도 사회에 표출되는 기독교인의 이미지를 표출하다 보니 이런 캐릭터가 나왔구나 싶었다.
이 기도 아저씨는 줄다리기 게임 편에서 등장한다. 줄다리기 대기중에 혼자 기도하는 장면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이때까지는 그냥 뭐라도 붙잡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인 줄 알았으나, 상대편을 몰살시키고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감사 기도하는 장면을 보며 이 캐릭터는 발암 캐릭터 포지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 사람들이 반감을 느낄지라도 이상한 종교논리를 앞세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마이웨이 스타일이다.
기도 아저씨는 기독교인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캐릭터라고 느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어린양의 피를 외치지만 행동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특히, 다리 건너기 게임에서 사람을 밀쳐 죽여놓고 "주님, 감사합니다"고 말하는 장면은 위선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대놓고 혐오 캐릭터긴 하지만 우리 사회가 느끼는 기독교인의 이미지가 이럴 수도 있겠다 싶어 씁쓸했다. 주옥같은 대사들이 몇 개 있었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어떻게 저런 기적의 논리가 나오나 혀를 내 눌렀던 기억은 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캐릭터의 대사를 조금 더 '교회스럽게' 바꿨으면 시청자들이 더 공감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솔직히 이 캐릭터는 너무 사이비스러워 딱히 공감이 되지가 않았다. 만약 이 캐릭터가 대형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사나 장로 스타일이었다면 몰입감이 배가되었을 것 같다. (감독님, 혹시 기독교 관련 자문을 구하시면 연락 주세요)
2. 아내를 죽인 목사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회상 캐릭터로 등장한다. 반복적으로 딸을 성폭행하지만 매번 회개기도로 죄책감을 씻어버리는 속 편한 목사다. 아마도 '도가니'를 연출하신 감독님이라 암암리에 이런 성범죄가 많다는 것을 잘 아시나 보다.
이 회상 속에 등장하는 목사 캐릭터는 기독교인의 '억눌린 욕구'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특히 한국 교회 내부를 관찰해보면 '보여지는' 면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십일조를 잘 내는지, 모임에 빠지지는 않는지 등등 겉으로 보여지는 면으로 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는 면이 강하다. 성적인 욕구를 언급하는 것은 속물적이고,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믿음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다 보니, 목사를 포함한 소위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곪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욕구나 감정들이 내부에 쌓여가다 보면 언젠가 폭발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억눌린 성적 욕구는 딸을 성폭행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억눌린 분노는 아내를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그냥 한국 교회에서 일어나는 극단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 문제에 대해 평소에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생각이 더 많아졌던 것 같다.
실제로 기독교인 우울증 비율이 일반 평균보다 높다. 종교적으로 요구되는 도덕성과 자신이 살아내는 삶과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 아저씨와 이런 목사같이 '값싼 회개'로 자신의 죄책감을 퉁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3. 예수천당 불신지옥 아저씨
막 화에 나오는 아저씨다. 요즘엔 많이 사라졌지만 거리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피켓을 들고 전도하는 사람이다. 이정재가 결박당한 채로 거리에 던져졌을 때 가장 먼저 발견해 풀어주는 사람이다.
드라마 내내 기독교를 깠기에 막판에 선한 기독교인의 모습도 한번 보여주나 싶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었던 이정재가 눈을 뜨자 쓰러져있는 그에게 처음 하는 대사가 "예수 믿으세요"라는 것을 보며 참 감독님은 끝까지 일관된 스탠스를 유지하시는구나 싶었다.
이 전도왕 아저씨 캐릭터는 기독교인의 '맹목성'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온몸이 만신창이인 사람이 있으면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주고, 119나 112에 신고를 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갓 정신을 차린 사람에게, 그것도 손발이 아직 결박되어 있는 사람에게 한다는 첫마디가 "예수 믿으세요" 라니. 밑도 끝도 없이 '예수'를 전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가 오버랩됐다. 이 예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있는데 장로나 목사는 예배시간에 늦을까 봐 애써 못 본척하지만 한 외노자가 그를 부축해 병원에 입원시키고 병원비까지 선불로 지불한다는 예화이다.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지를 예수님께서 설명하실 때에 이 예화가 등장한다.
사람들이 심심찮게 지나다니던 거리에 이정재가 떨궈졌는데 이정재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이 사람밖에 없는 것을 보고 선한 사마리아인 예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정재의 상황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를 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이 전도자를 보며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다. '예수'를 전하지만 '예수의 정신'이 결여된 맹목적인 기독교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드라마에 나온 사람들과 같지는 않겠지만 각 캐릭터들이 고발하는 기독교인의 이중성, 말뿐인 전도, 억눌린 욕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사회비판적 요소는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다. 아마 드라마를 보면서 유독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 그 부분이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 추가 (2021/10/16)
곰곰히 생각해보니 새벽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죽은 지영 캐릭터가 진짜 기독교 정신을 표현한 것이었다. 게임 참가자 중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한 사람은 지영이 유일하다. 목사인 아버지와 기독교를 증오했지만 아이러니하게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을 실천한 것이 그녀였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영 캐릭터가 기독인들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크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고마워, 나랑 같이 해줘서" 였다. 이 대사가 전세계인을 울렸고 나에게도 굉장히 큰 울림이 되었다. 요새 '교회'란 무엇인가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 대사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있어주는 사람', 그것이 교회이고 그리스도인의 모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