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모호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마음이 여린 친구 초초. 세상 물렁하고, 상처를 쉽게 받는 친구는 머나먼 타지에서 6년째 살아가고 있었다. 무척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나는 초초가 미나리의 스티브연 같다고 생각했다. 아칸소의 땅을 개척하는 스티브연처럼 - 그녀는 나보다 강하다. 지구 반대편에 살아서 자주 보지 못하지만, 그래서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오후 반차를 내고 인천 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비행기를 탈 의도 없이 공항에 가는 것은 처음이다. 출국장에서라도 우리는 2년 만에 만났다.
"우리 29살이 되었잖아. 19살의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훈이 말을 들어라?"
기억나? 네가 나한테 원서비 내줄 테니까 몰래 서울에 있는 대학을 쓰자고 했던 거? 그런 말을 해준 친구는 네가 처음이었어. 초초는 수능을 잘 봤다. SKY 공대를 갈 수 있을 성적이었다. 못해도 서성한 전액장학금이 있는 과도 노려볼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큰 세계에 초초와 함께 나아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초초의 부모님은 지방대에 진학해 지방인재 전형으로 약학전문대학원을 가길 원하셨다. 그녀는 지방대를 선택했다. 약대 준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 내가 너에게 더 무한한 용기와 지지를 줄 수 있었다면,
우린 같이 서울에 오지 않았을까?
우린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까?
너는 덜 방황했을까?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우울의 시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
내가 자유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 때. 그리고 그 삶이 꽤 불행하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본성이 누가 나에게 무엇을 시켰을 때, 쉽게 no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착한 딸? 모르겠어 그냥 조종하기 쉬운 딸이었나 봐. 아마도 난 그때 서울로 올라갔어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을 거야. 캐나다라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왔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어. 혼자 사는 법을 비로소 배웠어. 생존 욕구밖에 없었어. "
나랑은 기질이 다른 너. 방황 끝에 캐나다로 유학을 가겠다고, 최종적으론 이민을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 반대했던 것 같다. 한국이 싫어서 캐나다에 간다는 - 이분법적인 사고가 불안해 보였다. 너의 도피 끝엔 무엇이 있을까. 차라리 서울에 오라고, 나랑 같이 살면서 다른 길을 함께 찾아보자고 했었다. 초초는 처음으로 용기 있게 본인 만의 답을 선택했다. 그렇게, 내 친구는 자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갔고, 간호대를 갔고, 졸업을 했고, 취업을 했다.
"난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 학자금 대출도 갚기. 영주권 따기… 집중하고 있어. 지금은 간호사 하고 있지만.. 내 본성엔 너무 안 맞아.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힘들어. 다른 길은 그 다음에 찾아봐야지. 아직 아무것도 뚜렷한 건 없어."
본성에 맞는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기질에 맞는 일을 하면 행복할까?
"난 목표가 없으면 불안해. 방향성 없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생각을 그만하고 싶기도 해."
"넌 꿈이 크잖아. 성취지향적이고. 너의 본성은 개척자야. 넌 그런 사람인 거야."
오래된 친구가 표현하는 나는 개척자이다. 나는 황무지 속에서도 길을 보곤 했다. 일단 걷다 보면, 멈추지 않는 한,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자국들이 길이 되겠지. 남들이 만든 길이 아니더라도 길은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를 키우고 싶니?"
"글쎄 모르겠네. 내 아이든, 입양이든 하나의 독립된 개체를 키워낸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고양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무게가 있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훈이 같은 개척자 정신의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건강할 것 같아."
그런가?.. 아이의 기질이 어떤지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겠지? 나는 사실 너무 방치하는 부모가 될 것 같아 걱정이다. 결국 본인의 삶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최근 자기소개를 할 자리들이 많아지면서, 나의 꿈을 구체화하게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본인이 진정 원하는 삶을 용기 있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 땅의 많은 초초들이 덜 방황할 수 있도록- 지지와 응원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