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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l 02. 2020

코펜하겐 블루를 아시나요?

코펜하겐에서 만나는 3가지 블루(Blue)

한국에서는 봄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올 무렵인 2월초. 우리 가족은 여전히 겨울의 한 복판에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사를 왔고, 그 첫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늦은 아침, 딸과 함께 집 앞 마트에 가기 위해 첫 외출을 시도했고, 불과 30m 앞에 있는 마트에 가는 것을 결국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한 발짝 앞으로 가면 두 발짝 뒤로 물러나야 할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고, 결국 한국에서 준비해 온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웠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일 년은 6개월의 지옥 같은 겨울과 6개월의 천국 같은 여름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추운 날씨에 몸속 깊이 파고드는 찬바람, 햇빛 한 점 볼 수 없는 흐린 날씨 때문에 깊고 긴 어둠의 터널 속에 갇혀있는 듯한 겨울,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햇살이 저녁 늦게까지 밝게 비춰주고, 덥지 않은 선선한 날씨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눈부신 여름이 6개월씩 반복된다.

너무나도 극과 극인 날씨 때문에 덴마크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의 날씨처럼 겨울과 여름의 중간에 봄과 가을이 있어서 몸과 마음이 날씨에 적응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좋으련만, 신기하게도 코펜하겐의 날씨는 하루아침에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고, 다시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뀐다.

이런 극과 극의 날씨가 코펜하겐에 '블루'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블루 컬러는 상반된 두 가지의 의미를 같이 가지고 있는 컬러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진취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긍정의 아이콘이 되는 컬러이기도 하지만, 우울감과 깊은 슬픔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코펜하겐이라는 도시는 블루 컬러와 가장 많이 닮아 있다.

나는 코펜하겐에 살면서 영감을 주는 3가지의 블루 컬러와 만났다.


첫 번째 블루는 코펜하겐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블루 컬러라고 할 수 있다. 굴뚝산업을 육성하지 않는 덴마크의 국가 정책이나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는 교통환경은 공기오염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하늘은 그 어느 도시보다 맑고 파랗다. 파란 하늘이 도시 속의 바다와 호수에 비치기도 하고, 파란 하늘과 도시 속의 차가운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파란 하늘에 담긴 새하얀 구름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블루 컬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이 만들어내는 이 맑고 시원한 블루 컬러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햇살이 가득한 여름에는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을 보면서 모두들 집 밖으로 나와 하루 종일 블루 컬러와 사랑에 빠지곤 한다.

Langelinievej 요트 선착장의 모습
Kvæsthusbroen 바닷가의 모습

코펜하겐에서 두 번째 블루를 만난 건 이사온지 1년쯤 되었을 때였다.

천국 같은 6개월의 여름이 지나고 겨울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2월 중순이었는데, 마치 그곳은 겨울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3~4월까지 춥고 긴 겨울이 계속 이어지면서 추위와 어둠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심한 우울감이 찾아온다. 봄을 기다리는 길고 지루한 여정도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지만, 해를 볼 수 없는 흐린 겨울날들이 이어지면서 몸도 마음도 활기를 잃기 때문이다.

우울한 감정을 이야기할 때 '블루 먼데이',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코펜하겐에서 만난 두 번째 블루 컬러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9시에 뜬 해가 3시부터 지기 시작해서 해가 없는 어둠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긴 저녁시간을 만들고, 비가 자주 오는 습한 날씨와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추운 날씨 때문에 혼자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 코펜하겐 블루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코펜하겐에서는 겨울이 되면 심한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겨울이 오면 대부분의 덴마크 사람들은 우울한 감정을 없애기 위해 비타민D를 챙겨 먹거나 인공 햇빛을 쪼이기도 하면서 우울한 코펜하겐 블루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뿐만 아니라, 겨울에 찾아오는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해 여름 내내 햇빛을 충분히 몸에 축적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햇빛이 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모든 집들의 마당이나 테라스, 바닷가와 공원에는 햇빛을 쪼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코펜하겐 블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세계 3대 도자기 브랜드 중 하나이면서, 덴마크 왕실의 후원을 받아 발전해 온 덴마크의 대표적인 도자기 브랜드 '로열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의 블루 컬러이다.

긴 겨울밤의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덴마크 사람들은 저녁식사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바로 이것이 덴마크의 유명한 휘게(Hygge) 문화이다.

이런 휘게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덴마크에는 식기류를 비롯한 주방용품들의 디자인이 잘 발달해 있다.

식탁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따뜻한 촛불로 분위기를 더해서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며 우울함을 달래는 그들의 문화 한복판에 바로 로얄코펜하겐의 블루가 있다.

로얄코펜하겐의 플레그십 스토어에 가보면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세 번째 블루 컬러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으며, 블루 컬러가 얼마나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컬러인지 잘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의 청화백자와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로얄코펜하겐 제품은 아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아직도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명품의 이미지를 지켜가고 있기 때문에 제품마다 그림의 모양이나 색의 농도가 미세하게 다르다.

블루 잉크의 농도나 양에 따라 블루 컬러가 진해지기도 하고 연해지기도 하며, 그리는 사람의 붓터치에 따라서 도자기의 그림이 미세하게 달라지기도 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제품을 더 멋스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로얄코펜하겐은 단순히 그릇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자랑스러운 그들의 문화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하면서 같이 추억을 쌓아온 오랜 친구 같은 브랜드이기도 하다.

나 역시 로얄코펜하겐의 블루 컬러를 보고 있으면, 긴긴 겨울밤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족들과의 따뜻했던 저녁시간이 생각나기도 한다.

Royal Copenhagen 매장의 쇼윈도우와 내부의 모습

로얄코펜하겐의 브랜드마크를 자세히 살펴보면 왕관 아래 3개의 물결무늬를 볼 수 있다.

접시의 뒷면에도 또 다른 브랜드마크가 인쇄되어 있는데 그곳에도 3개의 물결무늬를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3개의 물결무늬는 로얄코펜하겐을 상징하는 무늬로 'Waves of blue'라고 부른다.

덴마크 여왕 'Juliane Marie'에 의해 'Waves of blue'가 로얄코펜하겐을 상징하는 무늬가 되었으며, 이 무늬는 섬이 많아 늘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덴마크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3개의 해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Wave는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에 있는 해협 'The Sound', 두 번째 Wave는 덴마크의 셀란섬과 퓐섬 사이에 있는 해협 'The Great Belt', 마지막 Wave는 덴마크와 독일이 이어지는 유틀란드 반도와 퓐섬 사이에 있는 해협 'The Little Belt'를 의미한다.

이처럼 로얄코펜하겐 브랜드의 정체성은 푸른 바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는데, 2019년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기획되었다.

덴마크의 사진작가 'Anders Hviid-Haglund'와의 협업 프로젝트로 3개의 해협을 1년간 여행하며 매주 해협의 물과 파도의 이미지를 담은 아름다운 사진을 한 장씩 찍도록 하였고, Anders는 로얄코펜하겐을 위해 52장의 아름다운 해협을 찍은 사진들을 공개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Royal Copenhagen Brand Mark Image

뿐만 아니라,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로얄코펜하겐의 리미티드 에디션 접시를 수집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로얄코펜하겐의 접시에 블루 컬러 하나만으로 그려진 정교한 그림들은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 장식용 접시로 활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로얄코펜하겐의 플레그십 스토어 2층에 가보면 지금까지 한정판으로 출시되었던 크리스마스 접시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매장 내부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리미티드에디션 접시들의 전시공간과 디자인

240여 개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갤러리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접시 하나하나에 그려진 그림들이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블루 컬러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꿔준 로얄코펜하겐의 아름다운 컬러와 제품의 디자인을 보면서 블루 컬러를 이렇게 아름답게 사용하는 브랜드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깊이 푸른 감동이 밀려온다.

그리고 2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일관된 이미지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노력과 역사가 또 감동스럽게 다가온다. 로얄코펜하겐의 블루는 외롭고 긴 겨울밤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면서 덴마크 사람들의 우울한 블루를 밝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그들의 가슴속 깊이 자리한 또 하나의 블루이다.


코펜하겐의 첫 번째 블루는 자연의 소중함을,

두 번째 블루는 가족의 소중함을,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블루는 추억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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