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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n 20. 2020

코펜하겐의 아침과 만나다

시간에 따라 달라 보이는 디자인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해뜨기 한 시간 전이다.

이른 아침, 집에서 나와 10분쯤 걷다 보면 만나는 아름다운 인어공주 동상을 지나, 별공원이라 불리는 Kastellet까지의 거리는 혼자 조용히 사색에 잠기기 좋은 길이어서 매일 아침 걷는다.

집에서 나와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보트들을  바닷가를 걷다보면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유일한 새드 앤딩 동화의 주인공인 인어공주 동상을 만나게 되는데, 인어공주 동상은 1913년 조각가 '에드바르드 에릭센(Edvard Eriksen)'이 제작한 작품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몇 개의 바위들이 놓여있는 랑겔리니(Langelinie)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신기하게도 동화를 읽으면서 상상했던 모습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햇빛이 밝게 빛나는 낮보다 해뜨기 전 어슴푸레한 새벽에 보는 모습이 동화 속에서 느꼈던 인어공주의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우수에 잠긴 표정과 외롭게 앉아있는 모습이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위태롭게 쌓아 올린 바위 위에 앉아있는 인어공주의 모습은, 푸른 새벽 바다의 컬러와 주변에 무심하게 놓인 돌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한층 더 운치 있는 그림을 만들어준다.

새벽에 만나는 인어공주 동상의 모습

이렇게 아름다운 인어공주의 모습을 보기위해 나는 아침 잠의 달콤한 유혹을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곤 한다.

아름다운 인어공주의 동상을 지나 그녀의 모습이 아련히 사라져 갈 때쯤이면 덴마크의 섬들 중 코펜하겐이 위치한 셀란섬의 탄생신화 속에 나오는 '계피온 여신'과 황소로 변해 밭을 가는 4명의 아들들의 모습과 만난다. 실제로 덴마크 땅의 대부분은 쓸모없는 황무지였고, 돌이 가득한 황무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오랜 기간동안 개간작업을 통해 지금처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셀란섬의 전설속에 등장하는 계피온 분수대를 보면서 덴마크 사람들의 힘겨웠던 과거 삶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해뜨기전 게피온 분수의 모습

이른 새벽부터 밭을 가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계피온 분수를 뒤로하고, 분수대 옆의 성 알반스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쯤이면 별공원(Kastellet)에 도착한다. 그 때가되면 비로소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깨어나는 코펜하겐의 아침과 만날 수 있다.

공원의 모양이 별 모양이라서 별공원이라 불리는 Kastellet은 2차 세계대전때까지 코펜하겐을 지키는 요새로 사용된 곳이다. 물론, 지금도 덴마크의 중요한 정부기관이 자리하고 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공원이다. 공원 입구의 작은 다리를 건너 오래된 나무문을 지날 때면,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먹이를 찾는 새들, 그리고 밝아오는 아침 하늘과 만난다.

Kastellet 공원의 모습

별 모양의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아래로 펼쳐진 별 모양의 호수가 보이고, 군데군데 보이는 전쟁의 흔적들이 이곳이 과거에 요새였음을 말해주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원의 모습만 남아있을 뿐이다. 공원의 산책길은 주변보다 지대가 높고 360도 조망이 가능해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까지 주변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군데군데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집들과 서서히 어둠에서 벗어나 제모습을 드러내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용히 잠들어있던 도시가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 흐리고 습한 날씨는 물안개와 만나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아침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나의 영감을 깨우는 시간, 해뜨기 한 시간 전.

새벽에는 모든 것들이 달라 보인다.


햇빛 한 점 보이지 않는 흐리고 습한 덴마크의 아침은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 산책이 끝나고 밝은 노란색 컬러가 인상적인 집 앞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을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노란색 컬러와, 장바구니를 입에 물고 주인을 기다리는 독일태생의 귀여운 블랙 슈나우져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날 수 있는 NETTO라는 슈퍼마켓에 들리는 일은 아침산책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게 해 주는 즐거움이다.

노란색 컬러가 인상적인 슈퍼마켓 'Netto'의 모습

국민마켓으로 불리는 NETTO는 덴마크의 슈퍼마켓 체인 브랜드이다. 이 브랜드가 블랙 슈나우저와 만난건 1992년 10월인데, 그들은 기존 브랜드에 고유한 이미지를 더해 저작권을 보호받기 위한 독특한 아이콘이 필요했고, 그래픽디자이너이자 광고크리에이터였던 'Peter Hiort' 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애완견을 좋아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정서를 잘 담고 있으며, 블랙 슈나우저의 충성심 강한 모습과 슈퍼마켓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장바구니를 물고 있는 귀여운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덴마크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디자인이다.

뿐만 아니라, 덴마크의 흐리고, 어둡고, 자주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노란색과 블랙컬러의 조합은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가시성이 좋고 강렬하다.

오늘은 NETTO에 들러, 눈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차 패키지디자인을 발견하고는 냉큼 집어 들었다.

아마도 저녁에 사러 왔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아침이라서 더 좋아 보이는 멋진 디자인이다.

산책길에 만났던 예쁜 새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잠에서 깨어나듯이 나의 아침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만 다.

같은 공간도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제품의 디자인도 보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마법 같은 일은 종종 일어난다. 보는 사람의 감정이 이입되기 때문인데, 브랜드와 만나는 시간과 장소,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는 시간도 디자인을 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흥부전에서 보물이 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박을 주렁주렁 열어주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처럼, 예쁜 새가 물어다 준 맛있는 차 한잔을 마시면서 보물 같은 하루를 맞이 했다.

Higher Living 의 다양한 유기농 티 패키지디자인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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