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5월이 되면 드디어 천국 같은 6개월이 시작된다. 아침 일찍 해가 뜨고, 저녁 늦게까지 햇빛이 가득한 화창한 날들이 이어지고, 비도 자주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걷기에 정말 좋은 날씨다. 무엇보다 코펜하겐은 공기가 맑고, 잘 가꾸어진 도로 주변의 나무들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거리의 모습을 하고 있어 오랜 시간 걸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물론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으면 더욱 즐거운 도시가 바로 코펜하겐이다. 도시 전체에 자전거도로가 잘 깔려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코펜하겐 전체를 여행하기에 불편하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코펜하겐에 살면서 자전거가 얼마나 고마운 교통수단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보행자도로나 차도와는 완벽하게 분리되어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자전거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여왕님이 기거하고 계신 아멜리안보르 궁전을 지나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세계 10대 오페라하우스 중 하나인 '코펜하겐 오페라하우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빛의 거장'이라 불리는 덴마크 건축가 '헤닝 라센(Henning Larsen)'이 설계한 이 건축물은 어마어마한 건축비가 든 초호화 건축물로도 유명한데 그 유명세만큼이나 멋진 외관을 가지고 있다.
덴마크의 인공섬인 홀멘(Holmen)에 위치하고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디자인한 헤닝 라센은 자연광을 잘 이용하는 건축가로 명성이 높아 '빛의 거장'이라 불리며, 빛이 건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덴마크의 대표적인 건축 디자이너이다. 덴마크에서 어둡고 긴 겨울을 지내보니 북유럽 사람들이 왜 그토록 빛에 집착하는지, 왜 덴마크 디자이너들에게 빛이 중요한 소재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빛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면서 멀리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을 뒤로하고 조금 더 걷다 보면 덴마크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뉘하운(Nyhavn)에 도착하는데, 뉘하운의 바로 맞은편에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인 마가진(Magasin)이 있다. 1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마가진 백화점은 건물 외형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과 웅장함 때문에 이곳을 자주 찾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 덴마크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빛의 존재처럼 그들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 이 백화점 안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펜하겐의 Kongens Nytorv역 앞에 위치한 Magasin Du Nord 백화점의 모습
Magasin Du Nord 백화점 지하1층 식품코너
덴마크 사람들은 몸에 좋은 잡곡과 유기농 식재료로 만들어진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달콤한 디저트들이다.
건강식과는 좀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달콤한 디저트들을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이 어딘가 부 조화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의 식문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북유럽 사람들의 음식들을 보면 소스나 양념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검은 잡곡빵이나, 샐러드로 먹는 유기농 채소들, 일조량이 적어 신맛이 강한 과일들,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담백하게 오븐에 구운 감자와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 음식의 맛이 자극이 거의 없고, 다양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매일 먹는 음식이라고 하면 잡곡빵과 샐러드, 그리고 유제품 정도이다. 한국음식들처럼 짜고 달거나, 맵고 신맛이 나는 자극적인 요소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심심한 맛의 북유럽 음식에서 디저트가 주는 진한 달콤함은 유일하게 입안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꽤 자극적인 맛이다. 마치 추운 겨울날을 비추는 따뜻한 한줄기 빛처럼 말이다.
뿐만 아니라, 거칠고 정제되지 않는 음식들로 부담스러워할 위의 소화기능을 도와주는 따뜻한 차와 함께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것은 북유럽 사람들의 오래된 식습관 중 하나이다.
그래서 마가진 백화점의 지하 1층에 가보면 다양한 종류의 달콤한 디저트들이 가득하다.
그중 내가 좋아해서 자주 들리게 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오래되고 작은 사탕가게이다.
백화점 안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디저트 가게들이 많이 있지만, 어린 시절 왕방울만 한 눈알 사탕을 입안 가득 넣고 달콤함에 매료되었던 행복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이 오래된 사탕가게를 자주 찾게 된다.
이 사탕가게에서 판매하는 색색의 사탕들은 예쁘기도 하지만 수십 가지의 다양한 디자인과 맛을 가진 사탕들의 모습이 신기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탕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색색의 줄무늬와 화려한 컬러들, 섬세하게 만들어진 덴마크 병정과 국기의 모습을 담은 사탕들, 과일 모양과 다양한 캐릭터의 아기자기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디자인의 사탕들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온다.
유리병에 담아서 판매하는 사탕들
다양한 모양의 사탕 디자인들 / Image by almuegaarden.dk
티볼리 파크 안에서도 이 사탕가게의 플레그쉽 스토어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 가보면 매장에서 사탕을 직접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체험도 가능해서 아이들은 이 사탕가게에 한번 들어서면 사탕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Almuegaarden'이라는 이름의 이 사탕가게는코펜하겐의 2곳에서만 제품을 판매한다.
1800년대에 작은 수제 사탕가게로 시작해서 1998년 전통적인 사탕의 맛과 제조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무설탕의 사탕을 개발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현재는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수제 사탕가게가 되었다.
시즌마다 한정 디자인 제품이 나오기도 하고, 모양도 맛도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장인정신으로 탁월한 품질을 자랑한다.
사탕가게 안에는 예쁜 디자인의 사탕들이 가득할 뿐 아니라, 심지어 왕관 모양의 천정 조명도 창문의 장식도 모두 사탕이다.
매장 안에는 몇 개씩 포장을 해서 파는 사탕들도 있지만, 원하는 크기의 용기에 다양한 맛의 사탕들을 종류별로 원하는 만큼 담아서 살 수도 있다.
아이들은 맛있는 사탕을 고르기 위해 유리병을 하나씩 들고 투명한 뚜껑 속으로 보이는 사탕 통 안의 사탕들을 한참 동안 자세히 살펴본 후 원하는 맛의 사탕을 담아가곤 한다.
큼지막한 막대사탕을 손에 들고 빨아먹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사탕도 있고, 심심할 때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맛보고 싶어 하는 어른들을 위한 작은 사탕도 있다. 사탕의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만드는 방식도 맛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샵에 가면 꼭 사탕 한 봉지를 손에 들고 나온다.
어린 시절 입안에서 살살 녹여먹던 달콤한 사탕의 추억이 생각나기도 하고, 실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사기도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사탕이다.
이 사탕의 선명한 줄무늬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 걱정 없이 커다란 막대사탕 하나만 손에 들면 그렇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참 그리워지곤 한다.
그리고 제삿날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렸다가 먹는 동그란 줄무늬 사탕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사탕을 입안 가득 넣고 그 달달함을 즐겨보곤 하는데, 모든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황홀한 맛이다.
원하는 사탕을 골라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매장 내부의 모습
티볼리 파크 내 'Almuegaarden' 플레그쉽스토어
덴마크의 척박한 환경과 거친 음식들 속에서 그들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되어 주었을 달콤한 사탕의 힘은 단순히 간식이나 디저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들을 찾아 이 오래된 사탕가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사탕은 덴마크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는 음식이기도 해서 관광객들도 이 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지금은 사탕 이외에도 달콤한 디저트들이 종류도 다양해지고 언제든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사탕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다른 디저트 제품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마도 사탕 속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달콤하고 행복한 맛에 대한 기억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이런 달콤한 기억을 소중히 잘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다양한 디저트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아이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행복은 그 기억이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자주 충전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덴마크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행복 충전이다. 매일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 것처럼 사소한 행복을 자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이기도 하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달콤한 추억이 그리워질 때면 가끔은 사탕 한 봉지를 사서 그 시절의 달콤함을 마음 편히 즐겨보는 건 어떨까? 잊고 있었던 기분 좋은 맛에 행복이 충전될지도 모른다.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