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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l 01. 2020

여왕님 찻집에서는 여왕님처럼

영감을 얻는 다양한 방법

조용한 평일 오전 10시 반은 하루쯤 여왕님이 되어보기 좋은 시간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코펜하겐의 중심부 스트뢰에(Strøget)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조용한 골목 길안에 위치한 'A.C. Perch's Thehandel'에 가보자.

이곳은 일명 '여왕님 찻집'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1835년 처음 이 찻집이 문을 열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으며, 여왕님처럼 잔뜻 멋을 부리고 나온 코펜하겐의 멋쟁이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Margrethe Alexandrine Þórhildur Ingrid)'가 즐겨 찾던 찻집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마르그레테 여왕이 가장 좋아했던 블랜딩 티를 맛보고 싶어 하는 멋쟁이 덴마크 할머니를 비롯해서 여유 있는 오전 시간에 맛있는 차 한잔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아담하지만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내공이 느껴지는 이 찻집의 간판에 자랑스럽게 표시된 왕관 이미지는 덴마크 왕실에 납품하는 품질이 우수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블랙 컬러의 배경에 금색으로 쓰인 찻집의 이름과 티포트 아이콘의 모습이 꽤나 고급스럽다.

A.C Perch Thehandel 매장의 전경

덴마크는 커피만큼이나 차를 사랑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차의 종류도 많고, 맛도 좋지만, 특히나 유기농 차가 많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차를 마실 때마다 신경이 쓰이곤 하는 일명 농약 차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농약으로부터 안전한 덴마크의 차는 맛도 좋지만 매장을 들어서면 은은하게 퍼지는 향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덴마크의 전통차는 물론이고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유명한 차들도 같이 만날 수 있어 선택의 폭도 넓다.

'A.C. Perch's Thehandel'의 1층은 찻잎을 포장해서 판매하는 매장으로 원하는 찻잎을 필요한 만큼 살 수 있고, 예쁜 차 제품들의 패키지디자인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한정판으로 만든 블렌딩 티 선물세트를 팔기도 하고, 관광객들을 위한 예쁜 티 패키지를 별도로 판매하기도 한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담긴 관광객을 위한 금속 티 패키지는 덴마크의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였던 'Anton Antoni'의 왕실 근위병과 인어공주, 발레리나의 일러스트를 담은 패키지 디자인으로 기념품으로 구입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곳에서 찻잎을 필요한 만큼만 따로 무게를 달아 구입하기도 하고, A.C. Perch's Thehandel의 다양한 블렌딩티 제품을 구입하거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예쁜 티 패키지만 별도로 구입하기도 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찻잎을 보관하는 용기로 금속 용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금속용기가 주는 전통적인 느낌과 묵직함이 고급스러움을 주기도 하지만, 차를 다 마신 후에 찻잎만 다시 구입해서 금속용기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패키지가 버려지지 않고 재사용되는 친환경적인 아이템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개방되어있는 북유럽 주방의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금속용기들은 멋진 장식용 제품으로도 활용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의 흔적이 더해져 더 멋스러워지기도 한다.

A.C. Perch's Thehandel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티 패키지 디자인
1835년에 만들어진 나무 선반들과 장식장 안의 황금색 가죽벽지까지 그대로 매장의 인테리어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
크리스마스 선물세트 패키지디자인과 관광객을 위한 티 패키지디자인

1835년부터 지금까지 덴마크 사람들에게 향기로운 차의 맛을 전하고 있는 'A.C. Perch'의 작지만 고풍스러운 매장 분위기와 차의 향기에 매료되어 매장에 도착하면 항상 1층 샵에 들러 다양한 차들을 구경한 후 2층으로 차를 마시러 가곤 했었다.

차를 주문하면, 도자기 주전자 가득 나오는 차를 마시며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수다를 떨기에 충분했고, 가끔은 예쁜 브런치를 주문해서 먹기도 했다.

덴마크에서 먹는 브런치는 입이 아니라 눈으로 먹는 음식이다.

배불리 먹기 위함이 아니라, 차와 같이 심심한 입을 달래주는 주전부리 같은 개념이라고나 할까?

어떨 때는 술의 안주처럼 차의 맛을 돋워주는 음식이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브런치의 주인공이 빵이나 샐러드 같은 음식이 아니라 '차'인 것이다.

물론 집에서 내가 이런 브런치를 준비했다면 아마도 남편은 상을 박차고 일어났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잠시 쉬는 입을 달래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브런치였다.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면서 가볍게 먹기 좋은 핑거푸드 수준의 브런치로, 테이블 위에 탑처럼 생긴 3단의 이 브런치 접시들이 올라오면 그래도 꽤 분위기가 있다. 수다 떨 맛이 난다고 할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차의 맛을 헤치는 강한 맛이 나는 음식도 없다.

A.C. Perch's Thehandel의 브런치와 차의 모습

나는 주로 가벼운 화이트 티 종류를 시켜서 마시곤 했었는데, 덴마크 전통의 엘더 베리(hyldebær)나, 루밥(Rabarber)이 들어간 새콤한 유기농 티를 맛보는 것도 좋다.

이 새콤한 유기농 티를 마실 때는 차와 함께 나오는 먹음직스러운(?) 갈색의 유기농 각설탕을 듬뿍 넣어마시면 차의 향기로움과 함께 새콤함과 달콤함이 만나 입안이 즐겁다.

그리고 차를 주문하면 담겨 나오는 로얄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브랜드의 접시와 찻잔, 게오르그 옌센(Georg Jensen)의 은식기들과 같은 명품 브랜드의 덴마크 전통 식기들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창문 너머로는 스트뢰에 거리에서 쇼핑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차를 마시면서 코와 입이 행복해지고, 그리웠던 친구들과 함께하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오전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여왕님 찻집에서 여왕님처럼 차를 마시는 방법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 이렇게 하루쯤 여왕님 놀이를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디자이너들도 때로는 눈이 아니라 맛이나 향을 통해 영감을 받기도 하는데, 우리의 오감을 기분 좋게 깨워주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조용한 곳에서 기분 좋게 담소를 나누며 향기롭고 맛있는 차 한잔을 마셔보는 건 어떨까?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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