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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n 27. 2020

눈과 입이 모두 즐거워지는 곳

화창한 토요일 오후 Henry와 Sally를 만나다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주말 오후가 되면, 코펜하겐의 도시 구석구석에는 벼룩시장이 서고, 음식 트럭과 야외테이블이 새로 생기는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들로 가득하다. 나도 가끔 코펜하겐에서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장소인, 'Fiskettorvet'이라는 곳의 작은 식당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곤 했다.

어느 날인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기분도 좋고, 오랜만에 하는 바깥나들이라서 모두들 헤어지기가 아쉬워 점심식사 후 야외테이블이 있는 맥주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유럽에서 맥주는 술이라기보다 음료수에 가깝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도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야외테이블에서 햇빛을 쬐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양한 맛의 수제 맥주를 파는 곳이었는데 추천 메뉴를 시켰더니 작은 와인 잔처럼 생긴 글라스에 4가지 종류의 맥주가 나왔다.

햇빛에 반짝이는 투명한 4가지 컬러의 액체들이 앙증맞은 글라스에 담겨있으니 예쁘기도 하고 맛도 있어 보여서 4명이 4가지 맥주를 한 모금씩 나눠마셨다. 밝은 카멜색의 부드러운 맥주와 커피 향이 감도는 진한 커피색의 맥주, 초콜릿향의 쌉싸름한 맥주와 진한 브라운 컬러의 구수한 맥주까지 맛도, 향도 다양한 맥주들이었다.

난 맥주 맛은 잘 모르지만 그런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그 후로도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면 그 맥주집에 가끔씩 들르곤 했다. 맥주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사람보다 시원한 맛과 분위기가 좋아서 마시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맥주와 함께 즐기는 다양한 안주들이 존재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다양한 안주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와는 좀 다른 맥주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안주가 아닌 맥주 자체의 맛을 더 즐긴다.

그래서 맥주 속의 원료들이 만들어내는 맛에 더 집중한다. 계속 새로운 맛의 맥주가 개발되고 있으며, 쉽게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맛의 맥주들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심을 해주는 정도의 약간의 안주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맥주 문화가 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안주를 먹기 위해 술을 마시는 문화이기 때문에 맥주집에서 파는 다양한 안주를 기준으로 맥주집을 선택해서 가기도 하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안주 없이 맥주 자체의 맛을 즐기기 때문에 무엇보다 맥주의 맛이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맥주 본연의 맛을 방해하는 안주를 잘 시키지 않기도 한다.

마치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덴마크에도 많은 맥주 브랜드와 맥주의 맛이 존재하는데, 신제품 맥주들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맥주의 디테일한 맛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어울리는 음식의 종류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Kastrup International Airport 내 Mikkeller Bar 와 Mikkeller & Friends Bottle Shop

'Mikkeller'

내가 자주 방문했던 맥주집의 이름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맥주집은 덴마크에서 맥주 애호가들의 성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수제 맥주집이었다.

Mikkeller는 2006년 고등학교 교사였던 미켈과 저널리스트였던 켈러가 함께 실험적인 맥주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는데, 현재는 전 세계는 물론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Mikkeller의 고향인 덴마크에서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Mikkeller의 맥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맛은 물론 패키지디자인도 독특하고 다양하다.

동네 작은 마트에서도 Mikkeller의 맥주를 조금씩 팔긴 하지만, 코펜하겐의 전통시장 '토르브할렌(Torvehallerne)'에 가면 이 맥주를 캔이나 병에 담아 파는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살 수 있는 'Mikkeller Bottle Shop'이 있다.

'Henry'와 'Sally'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Mikkeller의 창의적인  패키지디자인은 캐릭터와 함께 유니크하고 팝아트적인 감성을 물씬 풍기면서 재미있게 맥주의 맛을 설명하고 있다.

난 Mikkeller 맥주의 맛을 어려운 제품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패키지디자인 속 재미있는 이미지로 기억하곤 했는데, 의외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덴마크에는 Mikkeller 외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칼스버그(Carlsberg)', '투보그(Tuborg)'와 같은 다양한 맥주 브랜드들이 존재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자신만의 브랜드 이미지를 잘 기억하게 해 준 맥주 브랜드는 Mikkeller 뿐이다.

Mikkeller & Friends Bottle Shop에서 판매중인 제품의 이미지

그들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살려주는 Henry와 Sally라는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Henry와 Sally 캐릭터는 긴 코를 가진 한쌍의 연인의 모습이며, 그들의 모험과 이야기가 Mikkeller 맥주의 라벨 디자인에 담겨있다.

멋진 모자를 쓴 Henny와 파마머리를 한 Sally라는 재미있는 캐릭터를 통해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Mikkeller의 아트디렉터 '키스 쇼어(Krith Shore)'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위해 뮤지션, 셰프, 영화 제작자, 의류 디자이너, 항공사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Mikkeller가 키스 쇼어에게 디자인에 대한 많은 자유와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창의적인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Mikkeller 맥주의 패키지 디자인을 자세히 보면 그들의 실험적인 맥주 맛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캐릭터를 통해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00 IBU'맥주는 쓴맛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단적인 쓴맛을 가진 맥주이다.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며 철창에 갇힌 도둑의 모습을 하고 있는 Henry, Henry와 Sally의 혀를 활용해 혀에서 느끼는 맛의 위치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디자인, 블랙홀이라는 이름의 제품과 밀크가 포함된 제품의 이미지를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그들만의 심플하면서도 창의적인 디자인도 볼 수 있으며. 특히, 맥주가 가득 들어있는 맥주잔 속에서 손을 들어 살아있다고 외치는 It's alive는 아직 살아있으니 맥주를 더 달라는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어단어 bear의 '참다, 견디다'와 '곰'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재미있게 활용한 Draft bear의 디자인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Mikkeller 브랜드만의 정체성과 재미있는 스토리를 담은 패키지디자인은 술자리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준다.

Mikkeller 맥주의 Lable 디자인 / Image by Mikkeller

잘 만들어진 캐릭터를 활용한 패키지디자인은 소비자가 처음 보는 제품과 빠르게 친해지도록 만들어주기도 하고, 고객들에게 브랜드를 오랫동안 기억시키게 하는 힘을 가졌다. 

난 자주 Henry와 Sally의 이야기를 만나러  Mikkeller Bottle Shop에 들렀고, 한참 동안 제품의 패키지디자인들을 구경한 후 매장을 나올 때면 새로 나온 맥주캔을 한 개씩 사 오곤 했었다.

실험정신이 강한 Mikkeller 브랜드의 맥주 맛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맛이라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어떻게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지,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상상력이 가득 담긴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을 보고 있으면 눈도 즐겁지만 나도 모르게 기분까지 좋아진다.

맥주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실험적인 맥주의 맛과 Mikkeller의 아트디렉터 키스 쇼어가 선사하는 유니크한 스토리와 감성이 듬뿍 담긴 크리에이티브한 패키지디자인을 보면서 Mikkeller의 상상력 속으로 빠져보는 즐거운 경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이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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