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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l 02. 2020

티볼리에서 디자인 공부하기

책도 선생님도 없는 디자인 수업

코펜하겐의 주말 아침은 여유롭고 고요하다.

길거리에는 조깅을 하러 나온 사람들과 아침 준비를 위해 빵을 사러 나온 사람들 몇 명이 지나다닐 뿐이다.

나도 주말 아침에는 갓 나온 곡물빵에 햄과 치즈가 들어간 파니니와 따뜻한 차 한잔을 곁들여 아침을 해결하곤 했다. 일반적인 샌드위치와는 다르게 파니니는 그릴에 구워주기 때문에 따뜻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덴마크 사람들이 즐겨먹는 브런치 메뉴 중 하나이기도 한데, 대부분 아파트 테라스에 앉아서 햇빛을 쬐며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긴다. 덴마크 집들에는 대부분 테라스가 있고, 외부에서 잘 보이는 테라스는 다양한 꽃들이 핀 예쁜 화분과 안락한 의자, 작은 테이블로 꾸며져 있는데, 주말이 되면 편안한 차림으로 테라스 의자에 앉아 햇빛을 쬐며 아침을 먹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테라스는 햇빛을 쬐며 비타민D를 보충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외부공간과 연결해주는 중요한 소통의 장소이기도 하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 앞에는 작은 보트 선착장이 있었는데, 테라스에 앉아있으면 주말에 보트를 타기 위해 선착장을 찾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보트를 타고 여행하다가 잠시 들린 여행객들과 인사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보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현대적인 디자인의 멋진 하얀색 보트들과 오랜 전통이 느껴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배들을 보는 건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섬이 많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덴마크는 배로 여행하기에 참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름이 되면 보트여행을 즐겼다. 

이렇게 오전 내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슬슬 지루함이 밀려오는데, 이럴 때면 우리 가족이 남은 주말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꼭 찾는 곳이 있다.

코펜하겐 도심 한복판에서 17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한 '티볼리(Tivoli Gardens)'놀이공원이 그곳이다.

주말이면 긴 줄을 서느라, 사람들에 치여 지치는 일반적인 놀이공원과는 다르게 티볼리는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티볼리 가든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놀이기구를 타지 않아도 아름다운 정원을 보면서 여유 있게 식사도 하고 잔디밭에 앉아서 차도 마실 수 있는 도심 속 힐링공원이 되어주기도 한다.

현대식 놀이공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티볼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에게도 '월트 디즈니'에게도 영감을 준 곳으로 유명하다.


덴마크에서 북유럽 디자인을 공부하기 가장 좋은 곳을 딱 한 곳만 고르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티볼리를 선택할 것이다.

1843년에 문을 연 티볼리는 덴마크 왕가의 정원을 개조해서 만든 놀이 공원이어서 왕실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화려한 장식들과 디자인으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시즌에 맞추어 새단장을 할 뿐만 아니라 다시 2년을 주기로 같은 시즌이라도 디자인이 달라지기 때문에  늘 볼거리들로 가득한 곳이다. 부활절과 핼러윈데이, 그리고 크리스마스처럼 큰 기념일이 다가오면 한두 달 전부터 새단장을 해서 새롭게 문을 열기도 한다.

티볼리는 북유럽을 상징하는 기하학적인 패턴과 화려한 컬러들이 가득한 북유럽 디자인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난 어김없이 티볼리로 가서 디자인 공부를 하곤 했다.

동화 속 나라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놀이기구의 디자인과 건물들, 그리고 함께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딸이 친구와 놀이기구에 빠져서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 난 멋진 티볼리의 모습에 매료되어 북유럽의 디자인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티볼리에는 디자인을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고, 두꺼운 책도 없지만, 나에게는 그들의 디자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가르침이 되는 나만의 소중한 디자인 수업이 그곳에 있었다.

티볼리의 구석구석마다 옥석 같은 디자인들이 숨어있기도 했고, 창의적인 콘텐츠들과 만날 수도 있었다.

디즈니랜드에 미키와 미니가 있다면, 티볼리에는 덴마크의 문화와 안데르센의 동화가 훌륭한 콘텐츠가 되어준다.

안데르센이 옛날 의상 그대로 긴 검은색 모자를 쓰고 놀이기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상징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안데르센이 얼마나 티볼리를 사랑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눈의 여왕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나올 것만 같은 새하얀 궁전의 모습도 보이고, 빨간 유니폼에 까만 모자를 쓴 귀여운 장난감 병정의 모습과 피에로의 유니크한  모습도 모두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공원 안에는 아름다운 나무와 새들도 많이 있었는데, 안데르센은 이곳에서 '나이팅게일' 이야기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금방이라도 백마 탄 왕자와 아름다운 공주가 걸어 나올 것만 같은 새하얀 궁전 앞에서 만난 흰색의 담벼락에는 점으로 그린 티볼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밤에 보는 반짝이는 조명의 티볼리의 모습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워 감동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라인드로잉을 점으로 표현해서 작은 전구들이 일제히 켜지는 티볼리의 밤의 모습을 어둡지도 않고, 다양한 색도 쓰지 않으면서 그 어떤 야경보다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 그림을 발견했을 때 난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벽의 그림을 보면서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흰색의 아름다운 궁전과 담벼락에 점으로 그려진 화려한 티볼리의 모습
난간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귀여운 장난감 병정과 담을 넘는 5명의 도둑들의 모습, 그리고 안데르센의 동화와 함께할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는 건물의 모습


티볼리를 돌아다닐 때는 덴마크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메스 베어(mads berg)'가 디자인한 멋진 그림지도와 찾기 쉽게 디자인된 이정표들을 따라 둘러보는 것도 좋은 디자인 공부가 된다.

그림지도와 이정표 안에도 북유럽 감성이 듬뿍 담긴 디자인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를 대고 그린듯한 모던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일러스트들과 중간톤의 화려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밝은 저채도의 색상들이 만나 고전적이면서도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티볼리에서 만나는 이정표와 지도 속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선들과 반복되는 형태들, 불필요한 자유곡선을 사용하지 않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일러스트 역시,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정서가 잘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몰라도 찾기 쉽게 디자인된 그림지도는 아이들 뿐 아니라 노인 분들과 외국인들에게도 좋은 길 안내서가 되어주는데, 전체적인 공원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심플하고 단순하게 표현된 나무와 꽃들, 길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놀이기구와 건물들의 디테일한 일러스트 표현들은 화려한 티볼리의 분위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원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림지도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

북유럽 스타일의 일러스트와 화려한 색감의 조화로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그림지도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티볼리의 그림지도 / Image by visualmaps.dk, 티볼리 공원의 이정표

그뿐만이 아니다. 티볼리 파크에서 가장 경이로운 디자인을 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놀이공원의 주인공인 놀이기구 자체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놀이기구가 이 세상에 또 존재할까?

북유럽 디자인 특유의 기하학적인 패턴들로 둘러싸여 있는 놀이기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끝도 없이 나타나는 아름다운 컬러와 무늬들 때문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든다.

놀이기구에 사용된 컬러들의 조합을 자세히 살펴보면 북유럽 디자인의 컬러 배색 공식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왕실의 고급감을 살린 금색 컬러와 함께 강렬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컬러의 보색 대비를 잘 활용하고 있다. 보색은 서로 색상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상반된 컬러의 색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각각의 색이 강렬하면서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준다. 어느 색 하나 소외되지 않고 모든 색들이 돋보이도록 만든 컬러 조합 역시 개인 한 명 한 명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덴마크 사회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의 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사랑한 공원이었고, 특히 안데르센이 자주 찾아와서 영감을 받았던 곳, 티볼리에서 하는 디자인 공부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화려한 색상과 패턴이 돋보이는 놀이기구 디자인

티볼리는 이곳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물론 많지만, 어른들끼리도 자주 찾는 곳이다. 물론 여행시즌이 되면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기도 한다.

무엇보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서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평일 아침부터 낮까지는 노인분들이나 아기와 엄마들이 산책을 하기 위해 자주 찾아오고, 학교가 끝난 늦은 낮시간이나 주말에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로 활용되며, 밤에는 연인들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밤의 운치 있는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많이 찾는다.

아이들만을 위한 놀이공원이 아닌, 어른과 아이,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도 모두가 좋아하는 티볼리특별한 날에만 연례행사로 찾게 되는 일반적인 놀이 공원과는 다르게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앞 공원처럼 자주 찾게 되는 친근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노트도 필기도구도 필요하지 않다.

그냥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공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그들의 색과 디자인에 흠뻑 취하면 그만이다.

옛 시인들과 안데르센도 그렇게 영감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디자인 회사 중 하나인 '노만 코펜하겐(Normann Copenhagen)'은 티볼리를 주제로 한 다양한 디자인 소품들을 선보여서 눈길을 끌었다.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즐겨먹는 막대사탕인 롤리팝 콘셉트의 예쁜 컵들과 하늘 높이 떠다니는 풍선 콘셉트의 조명, 그리고 티볼리를 상징하는 동물인, 공작새를 모티브로 한 재미있는 쟁반의 디자인까지 다양하다. 이 외에도 공원의 퍼레이드에서 만나는 피에로, 왕자와 공주, 왕실 근위병의 모습까지 티볼리의 모습을 잘 담고 있는 다양한 피규어 소품들의 디자인이 참 재미있다.

Image by normann-copenhagen.co
노만 코펜하겐의 티볼리 콘셉트의 제품들




*이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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