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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an 09. 2021

성냥팔이 소녀가 반한 디자인

추위와 어둠을 이기는 디자인의 힘

안데르센의 동화속에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가 얼어 죽을 만큼 춥고 외롭고 어둡기까지 한 덴마크의 겨울밤.

불 꺼진 상점들과 띄엄띄엄 오는 버스들, 그리고 좁은 골목길에는 가로등조차 없어서 거리는 온통 어둡고, 사람들도 잘 다니지 않는다.

6시가 되면 상점들은 문을 닫고, 직장인들도 4시가 되면 서둘러 퇴근을 해서 집으로 향한다.

밤늦게까지 야근을 시키는 회사도 없고, 공부를 시키는 학교나 학원도 없다.

물론, 한국 사람들처럼 밤늦은 시간까지 번쩍번쩍 휘황찬란한 거리에서 술 문화를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겨울은 어느 나라나 춥게 마련인데, 북유럽의 겨울이 유난히 더 힘들고 외로운 건, 추위보다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드는 어둠의 존재이다.

어둠은 죽음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종교에서는 악마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의욕을 떨어뜨리며 두렵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래서일까, 오랜 기간 이런 어둠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북유럽에서는 인테리어 디자인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빛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인테리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사람의 감정에도 깊게 관여하는 빛의 흐름을 어떻게 배치하고 조도를 만들 것인가는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덴마크의 건축가들은 건축물의 설계뿐 아니라 집안의 가구나 조명까지도 함께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단순히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건축물과 잘 어울리는 가구, 건축물의 디자인을 돋보이게 해주는 조명의 문제 역시 그들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건축가가 디자인 한 세계적인 조명 브랜드의 디자인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춥고 어둡고 긴 겨울을 보내야 했던 그들에게 빛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북유럽의 집들은 한국의 집들처럼 따뜻하지 않다.

통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건축문화 때문도 있지만, 비싼 전기세와 환경에 유해한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고 친환경에너지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부족한 전력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은 난방을 많이 하지 않는다. 물론 추운 날씨에 대한 적응을 방해하는 지나친 난방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덴마크 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생활하는 한국 사람들과는 달리 약간 추운 실내에서 스웨터나 패딩조끼 같은 것을 입고, 두꺼운 털 슬리퍼를 신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들은 부족한 온기를 빛으로 채운다.

식탁에는 촛불을 켜고, 집안 곳곳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조도가 낮은 조명들을 설치한다.

싸늘하고 찬기가 돌던 실내에 조명을 켜는 순간 어둡고 우울하던 실내는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가 창문 너머로 지켜보며 그토록 부러워하던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조명의 힘이고 빛의 위대함이다.

어두운 겨울밤 덴마크를 밝히는 아름다운 빛은 가로등도 상가의 불빛도 아닌, 바로 집집마다 켜지는 아름답고 따뜻한 조명의 불빛이다.

덴마크 조명회사 'Le Klint'의 매장 내부의 모습

덴마크 건축물들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한국과는 좀 다른 점이 있다. 한국 주택들은 주로 남향으로 집을 짓지만, 덴마크 집들은 동향으로 짓는다. 그리고, 건물에 커다란 창문과 테라스를 많이 만든다. 심지어 천장에까지 창문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실내로 가장 많은 빛을 유입할 수 있는 구조로 집을 짓는 것이다. 아침 일찍 해가 뜨면서 동쪽에 난 커다란 창문으로 빛이 집안 깊숙이 들어오도록 설계하고, 낮에는 천장에서 실내로 빛이 들어오고, 해가 질 무렵에는 서쪽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를 한 것이다. 해의 동선을 따라 한 줄기의 빛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빛에 대한 집착이 엿보이는 디자인이다.

이처럼 그들의 빛에 대한 그리움과 집착 때문에 북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조명 디자인이 잘 발달해왔다.

특히, 디자인의 나라 덴마크는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나 '핀 율(Finn Juhl)' 같은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이외에도 '폴 헤닝센(Poul Henningsen, 1894~1967)'이라는 걸출한 조명 디자이너를 배출한 나라이다.

제대로 디자인을 공부한 적이 없음에도 그는 실용성과 감각, 그리고 눈의 피로도를 낮춰주는 자신만의 경제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로 디자인을 했고,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조명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그의 조명은 '빛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light)'이라 불리며 가장 적은 양의 빛으로도 빛의 반사를 이용해 낭비 없이 필요한 곳에만 비추게 할 수 있도록 빛 반사에 대한 분석과 테스트를 거쳐 디자인된 가장 경제적이면서 아름다운 빛을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과한 장식이나 불필요한 기능 없이 내구성이 좋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철학을 디자인에 그대로 담고 있는 폴 헤닝센의 조명은 어떤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빛으로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까지 온기로 가득 채워주는 폴 헤닝센의 조명 디자인은 추위와 어둠, 외로움으로부터 그들의 힘겨운 겨울을 버티게 해 주는 힘이 되었다.

어둡고 추운 겨울, 따뜻한 빛을 담은 집안의 조명들이 하나둘씩 거리를 밝히면 더 이상 그곳은 춥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성냥팔이 소녀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가족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디자인이 아니었을까?

'Poul Henningsen'의 조명 디자인 PH시리즈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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