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쉬는 날이 생기면 자신들의 썸머하우스로 휴가를 즐기러 가곤 한다.
한국에서는 별장이라고 하면 호화롭고 비싼 곳을 생각하겠지만 덴마크에서 썸머하우스는 진정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곳이고,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바이킹의 후손인 덴마크인들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썸머하우스를 가본 적이 있었다.
덴마크 최북단에 위치한 스카겐(Skagen)이라는 곳에 있는 작은 전통가옥이었는데, 스카겐은 아름다운 경치와 자연 그대로의 모습 덕분에 썸머하우스들도 많고 관광객들도 심심치 않게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북해와 발트해가 만나 서로 마주 보며 파도가 치는, 두 개의 바다가 부딪치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도 있고, 바닷가의 모래들이 잠시 날아와 쉬었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인, 자연이 만든 사막(Rubjerg Knude)을 보면서 바다 생태계의 일부도 경험할 수 있다.
바다와 사막이 함께 공존하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어서 자연이 주는 독특한 경험을 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자연현상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신기한 자연현상들보다 내가 더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그들의 전통가옥을 활용한 썸머하우스 였다.
바이킹 시대의 건물디자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썸머하우스는 옛날 덴마크 사람들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집의 지붕은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바이킹 전통가옥의 모습 그대로, 잔디와 덥수룩한 풀들로 덮여있었고, 들판에 길 게자란 풀들 때문에 집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조차 힘든 넓은 들판의 한 복판에 나무로 지어진 작은 썸머하우스가 있었다.
바이킹 시대의 집들이 지붕에 잔디와 풀을 심는 것은 위장을 하기 위함도 있지만, 겨울에는 따뜻함을, 여름에는 집의 시원함을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나무로 지어진 집의 마당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자라고 있었고, 집안에는 온기를 더해주는 오래된 벽난로가 있었으며,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아 옛날 모습 그대로 생활할 수 있는 곳이었다.
주변에는 마트는 물론 어떤 상점도 없었다. 대중교통도 없어 차가 없으면 찾아갈 수 조차 없는 곳이다.
썸머하우스 단지에는 집들이 여러 채가 모여있긴 했지만,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이웃의 모습은 볼 수도 없고, 내가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같이 간 가족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놀거리도 없고, 할 일은 하루 세끼 해 먹는 식사 준비와 가족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전부인 곳이다. 어찌 보면 따분하고 심심할 것 같은 곳이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이곳을 찾는다.
식재료들을 잔뜩 가져와서 휴가철이 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썸머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편리한 도시생활을 마다하고 교통도 불편하고, 외부와 소통하기도 힘들고, 먹거리도 없는 이런 오래된 전통가옥의 생활을 그들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와 세계 최고의 인테리어 브랜드를 키워낸 덴마크가 이런 좋은 관광지를개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가끔 시간이 멈춰버린 듯 느리게 흐르는 자연 속에서의 스트레스 없는 생활을 꿈꾼다.
세상은 빠르게 디지털화되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반대편에 있는 아날로그 제품들에 열광하기도 하고, 패스트푸드가 발달할수록 슬로우푸드와 유기농 식품들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덴마크 사람들 역시 오래전부터 도시의 스마트한 삶과 썸머하우스의 자연 그대로의 삶을 동시에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빠른 변화들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워야 하고, 빠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쉼 없이 뛰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 때문에 작은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제품들이 많아졌고,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부분인 쇼핑을 하는 방법도, 은행을 이용하는 방법도, 하물며 택시를 잡는 방법도 모두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런 속도들을 그때그때 따라잡지 못하면 나중에는 격차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배우기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기까지 한다.
이런 도시에서의 삶은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썸머하우스는 바로 이런 삶의 쉼표와 같은 곳이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남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일부러 적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들과 친밀감을 높이고 정서적인 안정감도 찾아주는 휘게(HYGGE)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을 이곳으로 부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머리도, 몸도, 그리고 마음도 잠시 쉬어가는 곳이 바로 썸머하우스인 것이다.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하나로 합쳐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쉼도 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은 풀들로 덮여있고, 이웃과의 거리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 썸머하우스의 모습
썸머하우스의 외관과 앞마당의 모습
오래된 벽난로와 마당에 핀 아름다운 야생화들의 모습
덴마크 사람들은 쉼의 질을 관리하는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바쁜 하루 중 잠깐 시간을 내서 차 한잔의 여유를 갖는 FIKA라고 불리는 잠시 멈춤을 실천하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휘게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몸은 물론 마음의 휴식까지도 챙긴다.
그들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안정감을 갖게 해 주는 휘게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고, 준비도 필요하다.
우선 입안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달콤한 차와 맛있는 음식이 필요한데, 이때 와인을 함께 준비하는 것도 좋다.
빵도 직접 구워 집안에 빵 냄새가 가득해지면, 어린 시절의 익숙한 향기로 마음이 훨씬 편안해진다. 오래되고 익숙한 도자기 컵에 차를 마시고,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목각 인형들로 집안을 꾸미는 것도 좋다. 새것보다 추억이 담긴 옛날 물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날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런 날은 폭신한 쿠션이나 담요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데, 이 정도면 일단 절반은 성공이다.
그리고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예를 들면, 핸드폰을 보지 말아야 한다든지, 자기 자랑을 하면 안 된다든지,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거나,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해주는 등의 규칙들을 통해 모두가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휘게 라이프를 완성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하나 더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위기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양초'이다.
덴마크는 전 세계에서 양초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며, 일 년 동안 덴마크 사람들은 일인당 양초를 6kg이나 소비한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런 이유로 가까운 마트나 쇼핑몰에서 쉽게 다양한 종류의 '양초'를 구할 수 있다.
많은 종류의 양초들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덴마크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양초는 'Skandinavisk'라는 브랜드의 양초였다.
'Skandinavisk'는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전형적인 북유럽 감성의 디자인으로 촛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쉼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디자인이다.
숲(SKOG), 바다(HAV), 피요르드(FJORD), 섬(ØY), 눈(SNö)처럼 자연과 쉼을 주제로 한 타이포그래피 위주의 디자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편안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쉽고 심플한 디자인이다.
특히 눈을 피로하게 만들지 않는 저채도의 색감과 작은 아이콘들, 그리고 마치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처럼 제품 전체를 감싸는 작은 무늬의 패턴들은 북유럽 감성을 잘 담고 있다. 유리나 세라믹 재질로 만들어진 양초의 용기 부분과 뚜껑의 우드 질감은 내추럴한 감성을 더해주어 기분 좋은 촉감을 전해주기도 한다.
'Skandinavisk' Candle 디자인
'Skandinavisk' Candle 선물세트 패키지 디자인
The Escapes Collection Candle 디자인
우리는 삶 속에 어떤 쉼표를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쉬지 못하고 너무 정신없이 채우기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은 채우는 삶이 아니라 쉼을 통해 비우는 삶을 살아야 건강한 삶과 지속 가능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디자인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이건 초보 디자이너들은 채우는 것에 집중하고, 디자인 고수들은 바로 '비움'을 이야기한다.
채우는 건 쉬워도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체를 읽어야 하는 비움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 삶에, 그리고 내 일에도 비움의 공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