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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l 03. 2020

개미, 새알, 포도, 꽃잎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

덴마크 초등학교의 수업시간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8시반에 시작해서 2시 반쯤 수업이 끝나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2번의 식사시간이 있다. 첫 번째는 간식시간이고 두 번째는 점심시간이다. 급식을 하지 않는 학교의 경우는 도시락을 2개나 싸가야 하고, 급식을 한다고 해도 간식은 집에서 준비해 가야 한다. 그것도 인스턴트 음식이나 설탕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은 가져갈 수가 없어서 주로 싱싱한 채소들과 직접 만든 음식들로 도시락을 준비한다. 그리고 수업 중간중간에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쉬는 시간이 있고, 놀이시간도 매일 한 시간씩 별도로 할당되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놀이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서 놀아야 한다. 놀이시간에 실내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매일 첫 번째 수업은 'Morgen humør'라고 해서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어서 수업시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6시간정도 되는데, 간식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쉬는 시간과 놀이시간을 제외하면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체육, 음악, 미술수업을 제외하면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진짜 공부에 해당하는 언어를 배우거나 계산하는 법을 배우는 공부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덴마크 선생님들은 숙제를 거의 내주지 않아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자발적으로 복습을 하는 것이 아니면,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는 5분 이상 걸리지 않는다. 숙제를 많이 내주는 것도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강요할 수는 없다.

딸이 덴마크 학교를 다닌 처음 몇 달간은 아이의 학업능력이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기까지 했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5학년이면 학교 수업으로도 모자라서 사교육까지 받으며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인데, 덴마크에 오니 학교생활의 반이상을 놀고먹으면서(?)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초등교육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래전부터 덴마크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생존의 문제였다. 

잘 먹고 건강해지는 것, 비바람과 추위를 포함한 자연환경에 익숙해지는 것,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로 협력하는 것이 그들의 오랜 교육방식이자 가르침의 핵심이다.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건강하게 먹는 습관을 기르고, 춥고 거친 날씨에 익숙해지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그들의 숙명과도 같은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이 초등 교육안에 잘 녹아있다.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그들이 초등학교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험이 하나 있다. 학교에서 보는 영어시험이나 수학시험은 성적도 알려주지 않고, 부모들도 학생들도 점수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한 가지 시험은 반드시 통과해야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학교도 많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중요한 시험이다.

그건 바로 수영 시험인데 초등학교의 필수과목이다.

덴마크에서 수영은 자유형이나 평형처럼 동작을 배우는 수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영이다.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수영을 하지 못하면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고, 산이 없어 바다에서 하는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덴마크 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덴마크 사람들 중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외에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일 년에 한두 번 학교에서 캠핑을 가는데, 텐트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하고, 자연과 함께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의 연장이다.


이처럼 덴마크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과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자신들의 주어진 날씨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성장한다. 

그들에게 자연은 특별히 보호해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그냥 그들의 삶의 일부이다. 나와 같이 살아가는 친구나 가족처럼 자연을 바라본다고나 할까?

그런 이유에서인지 북유럽 디자인의 소재나 아이디어는 대부분 자연에서 나온다.

덴마크 디자이너들의 세계적인 디자인들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작고 가볍고, 편하게 쌓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라는 주문을 받고 날씬한 허리를 가진 개미에서 영감을 얻어 가장 적은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3개의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의자, 앤트 체어와 호텔 로비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디자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마치 새의 알이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몸과 얼굴을 감싸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에그 체어는 모두 'Arne Jacobsen'의 디자인이다. 

물속을 미끄러져 헤엄치는 상어의 지느러미처럼 금속을 가르는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진 'Shaek's Fin'깡통 따개는 'Jens Quistgaard'의 디자인이고, 작은 부리와 동그란 검은색 눈을 가진 새의 모양에서 영감을 받은 Stelton의 티포트는 티테이블에서 도자기 주전자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적이면서도 우아한 보온 티포트를 디자인하려고 했던 'Erik Magnussen'이 1977년에 디자인한 작품이다.

Erik Magnussen이 디자인한 Stelton의 티포트

덴마크 최고의 공예가이자 디자이너였던 '게오르그 옌센(Georg Jensen)'은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Raadvad'마을을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지상낙원(et Paradia paa Jorden)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아름다운 나무숲과 개울이 흐르는 큰 연못에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이 그의 예술적 정신의 기초가 되었으며 자신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던 많은 아이디어들도 바로 그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자연에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loom'이라는 제목의 꽃병과 볼은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모습과 꽃잎의 유기적인 곡선을 통해 봄의 기쁨을 디자인으로 표현한 것으로 부드러운 곡선과 형태가 매력적인 디자인이다.

'Moonlight Grapes'라는 제목을 가진 액세서리 제품 역시 달빛 아래 은은한 빛을 내는 포도송이들의 모습을 디자인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알알이 빛나는 동그란 포도송이들의 모습이 탐스러운 디자인이다.


Bloom vases & fruit bowl
Moonlight Grapes Collection

덴마크 아티스트들의 자연으로부터의 영감은 과거뿐 아니라 현대에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코펜하겐의 Nørreport역에서 내려 Strøget 거리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눈에 띄는 재미있는 스튜디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Studio Arhoj'라는 세라믹 제품을 파는 작은 샵인데 자연을 표현하는 그들의 시선이 참 재미있다. 세라믹 제품에 다양한 컬러와 색의 섞임, 흐름을 활용하여 자연의 이미지를 심플하면서도 아름답게 작은 도자기 제품 속에 그려내고 있다.

좌측의 제품부터 'Ocean Flamingo, Sea Wave, Rose Leaf'라는 제목이 붙은 컵들인데 제목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컬러 조합이 참 흥미롭지 않은가?

'Anders Arhoj'라는 덴마크 아티스트의 작품들이다.

Studio Arhoj의 컵 디자인

 

덴마크 아이들은 봄이면 꽃의 봉우리가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꽃잎의 부드러운 곡선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름이면 자연에서 자라는 포도송이가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고, 바다에서, 숲에서, 동물들에게서 자연이 지닌 아름다운 컬러를 보면서 또 영감을 받는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자연은 가장 친한 친구인 동시에 가장 좋은 미술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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