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ISU Jul 14. 2020

습지대에서 발견한 디자인

감동을 주는 디자인은 항상 자연 속에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4시간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 있다.

내가 덴마크에 3년간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던 여행지이자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곳이기도 하다.

덴마크에 오랜 기간 살면서도 이 곳을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야 하는 곳이며, 훌륭한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곳도 아니지만 그냥 그 공간에 자연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되는 그런 곳이다.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의 서쪽 끝 리베(Ribe)라는 지역인데, 이곳은 사람보다 새가 훨씬 많은 곳이다. 

덴마크에서 가장 큰 해상 국립공원이 있는 곳이며,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바덴해의 500km에 달하는 긴 습지대가 형성되어있는 철새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이른 봄 우리 가족은 리베 지역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철새들의 모습을 보기 위함도 있지만, 얼마 전 덴마크의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인 '도트 맨드럽(Dorte Mandrup)'이 설계한 박물관 'THE WADDEN SEA CENTER'가 오픈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녀의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어서 결정한 여행이기도 했다.

덴마크 셀란섬에 있는 코펜하겐에서 출발해서 안데르센의 마을 오덴세가 있는 핀 섬을 가로질러 유틀란트 반도로 향하는 4시간의 여정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섬들을 연결한 멋진 다리를 보는 재미에 지루할 겨를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리베 지역에 들어서자 간간히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철새 떼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우리는 습지대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해상공원과 가까운 뢰뫼(Rømø) 섬에 숙소를 잡고 끝도 없이 펼쳐진 습지대에서 철새들이 다녀간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습지대의 가장자리에 셀 수도 없이 쌓여있는 굴과 홍합의 껍질들이 얼마나 많은 철새들이 이곳에서 쉬어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Ribe 지역의 습지대로 가는 길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바덴해의 습지대의 모습

습지대의 멋진 경치를 뒤로하고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트 맨드럽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THE WADDEN SEA CENTER'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 건물을 처음 본 순간은 아직도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있다. 

바이킹들의 건축양식을 살려서 설계한 박물관의 모습은 자연과도 너무 잘 어울렸고, 처음 보는 독특한 지붕과 건물의 재질, 그리고 낮고 비스듬하게 설계된 건축물도 인상적이었다. 

Johnny Søttrup시장은 THE WADDEN SEA CENTER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이유로 습지대의 광활하고 수평적인 풍경과 잘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었다고 말했다.

건물의 전체적인 색감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색을 그대로 재현한 느낌이었고, 건물의 소재도 주변 지역의 소재를 사용해서 보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자연의 일부처럼 보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건축물의 구조와는 많이 달랐다. 창문의 위치도 문의 크기도, 그리고 건물의 모양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THE WADDEN SEA CENTER의 모습 / Image by vadehavscentret.dk

그뿐만이 아니다. 건물의 디자인만큼이나 새를 주제로 한 내부의 전시도 감동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박물관 내부의 전시를 기획한 코펜하겐의‘JAC studios’는 디지털 인터렉티브 디자인팀조명디자인팀그래픽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화가와 조각가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전시를 기획했고, 많은 크리에이터들을 함께 참여시켜 아름답고 창의적인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매년 1,200만 마리의 철새가 다녀가는 바덴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는 'The Wadden Sea Migratory Birds'전시회는 철새와 바다 생물들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에게 바다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를 일깨워주는 공간이었고, 그들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해볼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기도 했다.

박물관 내부의 전시는 글보다는 디테일한 그림과 조형물들, 그리고 영상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조화롭게 철새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높낮이의 음을 가진 다양한 도요새나 물떼새들의 울음소리로 작곡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새 울음소리를 자연스럽게 반복해서 듣고 있었고, 보호색을 하고 있어 찾기 힘든 숨어있는 바다생물들을 직접 찾아보는 경험을 통해 새들과 점점 친해졌다. 

날아가는 철새들의 모습이 담긴 조형물
새들의 이미지와 영상자료를 함께 볼 수 있는 공간
새들의 영상과 새똥 조형물(?)
다양한 새의 울음소리, 새의 이동모습등을 활용한 체험 공간
바다 생물들과 새 조형물

이번 전시에 함께 참여한 Wildlife and natural history artist라고 불리는 유명한 덴마크의 일러스트레이터'Carl Christian Tofte'는 정교한 수채화 작품으로 감동을 주고 있으며, 수채화 작품의 원본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관람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새들의 생태나 생김새, 바다 동물들에 대한 내용까지 글보다 이해가 쉬운 그림으로 관람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Carl Christian Tofte'의 정교한 일러스트 작품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색감과 부드럽고 유기적인 형태의 선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을 닮은 무늬들에서 감동을 받지 못한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감동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은 그 자체가 감동이고 예술이고 디자인이다.

우리는 박물관 안에서 아무것도 읽지 않았고, 그 어떤 지식도 미리 공부해오지 않았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새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바다생물들은 왜 보호색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바다는 왜 지켜져야 하는지, 그리고 쓸모없을 것 같은 이런 습지대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THE WADDEN SEA CENTER의 디자인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이해되고 감동을 주는 덴마크 최고의 디자인으로, 건물 디자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마지막으로 건물을 나오는 순간까지 만난 모든 디자인 하나하나가 나에게 감동으로 남았다.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디자인 DB에서도 같은 주제로 썼던 글이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http://www.designdb.com/?menuno=1283&cates=1364

이전 10화 덴마크 거인을 만나러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