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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n 29. 2020

덴마크 거인을 만나러 가는 길

업사이클링(Upcycling) 아티스트의 기발한 상상력과 만나다

한국에 단군신화가 있다면 덴마크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지방에는 북유럽 신화가 있다.

영화나 책에서 접하는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거인 '트롤'의 존재일 것이다.

깊은 숲 속이나 동굴에서 사는 몸집이 거대하고 힘이 센 트롤의 존재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몇 년 전 코펜하겐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덴마크에 사는 거인 '트롤'을 찾아다니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딸이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들었는지 나에게 덴마크에 사는 거인을 찾으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덴마크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는 시키지 않지만, 반드시 시키는 것들이 있다. 

바로 운동과 책 읽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체험활동이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사칙연산은커녕 구구단도 못 외우는 아이들이 수두룩하지만, 유럽 각지로 여행을 다녀보지 않은 아이들이 없고, 주말이 되면 집에만 있지 않고 다양한 장소로 체험활동을 참 열심히도 다닌다.

캠핑을 가서 음식을 같이 만들거나 벽난로의 땔감을 직접 준비하기도 하고, 날씨에 관계없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거나 새를 보러 가는 등, 박물관에서 하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러 다니곤 한다. 주로 자연 속에서 하는 체험들을 통해 어릴 때부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자연과 친해질 수 있게 만드는 활동을 많이 시킨다. 


이런 덴마크 부모들에게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숲 속에 사는 거인 '트롤'의 존재는 당연히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딸아이의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거인을 찾아다니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서로 몇 명이나 찾았는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거인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덴마크에 거인이 산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무작정 찾아다녀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학교가 쉬는 휴일이 되자 우리 가족도 숲 속에 숨어있는 거인 '트롤'을 찾아 나섰다.

거인에 관한 기사와 주변에서 수집한 정보들을 중심으로 덴마크에 사는 6명의 거인을 찾는 우리 가족의 즐거운 모험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찾아 나선 거인의 이름은 '꼬마 틸데(Little Tilde)'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자연 속 야생동물들이 가득한 발렌스베크 모스(Vallensbæk Mose)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꼬마 트롤이었다. 발렌스베크 모스 지역은 커다란 호수가 있고 자연경관을 잘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지역이었다.

하지만 거인을 찾아가는 정확한 길도 알 수 없었고, 이정표도 없었으며, 오직 공원 입구에 있는 옛날 영화 속에 나오는 보물지도처럼 생긴 작은 지도가 전부였다.

공원 입구에 차를 세우고 넓은 공원을 가로질러 숲 속으로 들어가 한참을 걸었다. 길이 거의 없어지고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길을 지나니 나무숲 속의 한가운데에 놀랍게도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꼬마 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가진 꼬마 '트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모두들 진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낯선 숲 속으로 들어와 이리저리 나무와 풀을 헤치고 다니면서 나무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과 자연의 향기를 느끼고,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숲을 날것 그대로 경험하면서 우연히 나무 숲 속에 사는 작은 거인을 만나는 경험.

이것이 이 거인을 만들어낸 덴마크의 업사이클링(Upcycling) 아티스트 '토마스 담보(Thomas Dambo)'의 야심 찬 계획이다.


'개선하다'라는 의미의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이란 의미의 '리사이클링(Recycling)'이 결합된 단어가 바로 업사이클링(Upcycling)이다. 1994년 독일의 디자이너 라이너 필츠(Reiner Pilz)가 소개한 용어로, 우리말로는 '새활용'이라고도 불린다. 쓸모가 없어져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친환경적인 디자인이나 아이디어, 기술 등의 가치를 부가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활동이나 그러한 제품을 가리킨다. (doopedia 참조)

Vallensbæk Mose지역의 아름다운 경치
Vallensbæk Mose지역에서 만난 'Little Tilde'의 모습

꼬마 틸데는 꼬마라고는 하지만 키가 3미터는 족히 되고 꼬리가 긴 어린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물론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까지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습이 놀라웠다.

번개를 맞아 쓰러진 나무와 버려지는 산업용 파렛트, 그리고 부서진 건물의 폐자재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근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호기심이 가득한 커다란 눈망울에서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꼬마 틸데의 배안에는 숲 속의 다람쥐와 새들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나무집들도 숨겨져 있었다.


두 번째로 찾아 나선 거인 '트롤'의 이름은 '산 위의 토마스(Thomas On The Mountain)'이다.

우리 가족은 토마스를 찾기 위해 넓은 들판을 한참 동안 걸었다. Albertslund 지역의 들판에서는 이름 모를 꽃들과 야생의 풀들, 그리고 다양한 벌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들판을 걷다가 멀리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산 위의 토마스를 만나고 나오는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토마스의 위치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들판의 한가운데를 지나 왼쪽에 위치한 작은 숲 속 언덕 위에 있는 나무 숲에서 우리 가족은 토마스와 만났다.

들판을 오래 걸어와서 다리도 아프고 강한 햇볕 때문에 몸도 지쳐가고 있었다.

토마스는 그늘진 나무숲 속에서 여유 있게 몸을 기대어 쉬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도 잠시 쉬면서 땀을 식혔고 잠깐 동안이지만 언덕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들판의 경치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아이들은 토마스의 몸위를 오르내리며 마치 숲 속의 작은 놀이터에 온 것처럼 그와의 만남을 즐겼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몸소 경험하면서 북유럽 신화 속의 '트롤'과 조금씩 친해져 갔다.

아름다운 숲과 들판이 있는 Albertslund 지역의 모습
'Thomas On The Mountain'의 모습

2명의 거인과 만나고 나니 벌써 여름날의 긴 해가 뉘었뉘었 지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은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모험은 끝나지 않았고, 아직 더 만날 수 있는 4명의 거인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됐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좋은 경험을 갖게 해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아이들은 편리한 도시생활에 더 익숙하고, 심심한 자연보다는 즐거움이 가득한 놀이공원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자연과의 경험을 만들어주려고 해도 그건 어른들의 욕심일 뿐 아이들에게는 고생스러운 기억만 남기 일쑤여서 뜻깊은 경험이 되기는 쉽지가 않다.

덴마크 아이들에게 거인 프로젝트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동화책이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트롤의 모습을 실제로 만나보는 뜻깊은 경험은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토마스 담보는 '덴마크에 사는 6명의 잊혀진 거인들'이라는 스토리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 주었고, 그 중심에 멋진 디자인이 있다는 사실이 감동스러웠다.

아이들 스스로 거인 '트롤'을 만나러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했고, 넓은 들판도, 뜨거운 햇볕도, 그리고 숲 속의 불편한 돌길도 마다하지 않고 즐거운 모험의 길은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폐기물들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해서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아이들에게는 책이나 전시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깨끗하고 질 좋은 재료로 멋진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예쁘지도 깨끗하고 질이 좋지도 않은 재료를 가지고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인 본래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앞 작은 마트에 들렀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에서 보물 하나를 더 발견했다. 이번에는 보물 지도도, 주변의 정보도 없었지만,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트 안의 칫솔을 판매하는 매대였는데, 업사이클링 제품을 팔고 있었다.

플라스틱 요구르트 용기가 재 탄생시킨 칫솔이었다. 다른 제품들처럼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가 아닌 재활용 종이 케이스에 담긴 모습도 너무 마음에 드는 멋진 제품이었다. 딸도 너무 신기하다며 좋아했고 우리 가족은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기쁜 마음으로 그 멋진 칫솔을 손에 들고 마트를 나왔다.


이 제품은 1837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시작한 'Jordan'이라는 이름의 구강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제품이었다. 재생용지로 만들어진 불투명한 칫솔 케이스에 종이 스티커를 붙여서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칫솔이 잘 보이도록 디자인했고, 코팅이 되어있지 않은 종이스티커는 굳이 떼어내지 않아도 케이스와 함께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이었으며, 칫솔의 브러시를 제외한 칫솔대 부분도 요구르트 용기를 비롯한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해서 만든 친환경 제품이었다.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나머지 4명의 거인들을 더 만나고 싶다면 디자인 DB에서 만날 수 있어요.

http://www.designdb.com/?menuno=1283&cates=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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