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전 Dec 27. 2023

할머니 가설

-

 술자리에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죠. 술 마시고 글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죠. 그러니까 저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관심도, 저의 의무감도 아닌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이 말입니다. 크하하.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술자리에서 했던 대화들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서일까요? 사실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들은 내일이면 대부분 까먹어버립니다. 대화가 생산적이고 의미 있었는가는 그렇게 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대신 더 중요한 건 저의 말을 누군가 경청해 주었다는 느낌인 것 같아요. 술에 취해 난잡한 생각을 지껄여도 사람들이 흥미롭게 들어줄 때,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낄 때, 그럴 때 술자리에 흥미가 돋습니다.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사람들이 내 말을 좋아한다는 걸 느끼는 일 말이에요. 커뮤니케이션의 내용보다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의 질이 중요하다는 거죠. 뭔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사려 깊게 오고 간 느낌을 받으려 술자리에 낍니다. 

 그런 술자리가 끝나면, 상대방을 조금 이해한 느낌이 들죠. 저 또한 누군가에게 이해받았다는 느낌이 들고. 사실 이해한 건 조또 없겠지만, 말했다시피 중요한 건 느낌이니까요. 느낌이에요, 느낌이요... 취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돼도 이해해 주세요. 중요한 건 느낌이니까요...


-

 그래서 술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했다면, 저 혼자 진화생물학에 대해 이리저리 떠들었어요. 진화생물학은 재미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 드릴게요.

 '할머니 가설'이라는 게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과거 유골을 분석한 결과, 할머니의 유골이 다수를 차지했대요. 반면 멸종한 인간 속의 다른 종들은 노인의 유골이 드물었다고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대부분 노인까지 살아남은 반면 다른 인간 종은 노인이 되기 전에 무리로부터 버려지거나 도태되었다는 뜻이겠죠.  인간이 종간 경쟁에서 승리하고 고도화된 지능을 얻은 이유가, 할머니들의 생존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회에서는 노인, 특히 할머니들이 노화로 인해 사냥이나 채집 등 부족의 생존을 돕지 못하게 되더라도, 영아들을 키우면서 자신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육아와 생존에 대한 경험이 많았기에 젊은 부모보다 능숙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고, 영아 생존율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늘어난 영아 생존율은 전체 인구수 증가로 이어졌고, 이것이 종간 경쟁에서 승리하고 복잡한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했을지 모릅니다. 복잡한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증가했고, 이것이 언어와 지능의 발달로 이어졌을 수도 있죠. 

 진화생물학은 철학이나 사회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영장류가 왜 색깔을 구분하는 능력이 뛰어난지, 인간이 왜 일부일처제를 채택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 물론 인간은 지능이 고도화되면서 어느 순간 진화로부터 이탈했죠. 그래도 우리의 원초적인 본능은 원숭이에 머무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님 말고요. 술자리에서 이런 걸 떠들다니, 좀 최악이죠.


-

 오늘 안경을 바꾸려 이곳저곳을 다녔습니다. 안경원은 제대로 시력검진을 못할 것 같아서 먼저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죠. 왜냐하면 안경원에서 검진을 받았다가 렌즈가 불편해 어지러웠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안과가 너무 바빠서 제 시력 검사를 대충 하더군요. 제대로 했는지 모를 시력검진표를 들고 안경원을 찾았는데 손님이 없더군요. 검진을 받았으면 한적한 분위기에서 세심하게 검진을 받았을 수도 있죠. 렌즈를 맞추고 나오는 데 뭔가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냥 안경원에서 검진받았으면 안과 가는 돈도 아꼈을 텐데.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안경원이 한적하다고 제대로 검진을 해준다는 보장은 없죠. 물론 해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죠. 생각해 보면,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경험은 조또 아닐지 모릅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빨리 변해서 경험에서 비롯된 추론이 들어맞지 않을 경우가 많아요. 저는 제 경험을 믿었지만 최적의 선택을 하지 못하고 후회화기만 했죠. 경험의 배신은 뼈아프게 느껴지는 게 전 그걸 완전히 믿었거든요.

 우리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험보다 더 확실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수험생은 오답노트를 쓰고, 기업은 빅데이터에 투자하고,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물론 그 데이터도 틀릴 수도 있어요. 다만 본질은 우리의 불안을 해소하고 그나마 나은 대안을 찾는 것에 있겠죠. 데이터가 맞든 틀리든, 무언가 근거가 있다는 느낌이 중요한 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설득당하는 건 바로 그 느낌이거든요.

  무엇이 우리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요. 더 정확히 말하면 불안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까요? 경험일까요, 데이터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근거를 찾아 헤매야 할까요.

작가의 이전글 답장 미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