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했던 시간들
벌써 꿀댕이가 세상에 나온 지 9개월이 흘러 10개월이 되어 간다.
낳으면 금방 큰다고 했던가.
사진첩을 뒤적여 속싸개에 꽁꽁 싸매져 작은 얼굴만 빼꼼이 내밀고 아기침대에 누운 모습의 꿀댕이를 한 번 쳐다보고, 어느덧 훌쩍 커서 베이비룸을 잡고 서서는 우렁차게 소리지르는 현실세계의 꿀댕이를 한 번 쳐다본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고, 지금껏 건강하게 자라준 꿀댕이가 고맙고, 여태껏 무탈하게 키운 내 스스로가 장하다(물론 남편의 몫도 있지만 육아휴직을 하며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임신은 뜻밖이었다.
날짜를 잘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아가양들의 생명력이 너무나 끈질겼던 것인지 어쩐일인지 계획에도 없는 임신이 덜컥 되어버렸다.
나이가 아주 적은 것도 아니었고 요새는 힘들게 임신이 되는 경우도 많아서 자연임신은 그 자체로 매우 축복받을 일이었지만, 임신에서 출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임신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33년 남짓한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자는 도중에 토를 하는 희귀한 경험을 하고난 후 어딘가 쌔한 기운을 느껴 테스트기를 해 보았고, 두 줄을 확인했었지. 당시의 복잡미묘했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낭만적인 상황을 꿈꾸지만 본래가 현실적인 나는 이 때에도 어떠한 서프라이즈 없이 남편에게 카톡으로 사실을 알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내 딴에는 꽤나 호들갑을 떨었던가?
그 후의 임신기간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속이 조금 더부룩하다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정도의 불편함이 있을 뿐 하루에도 몇 차례 변기를 마주해야 하는 입덧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먹어야만 하는 먹덧도 없었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무난한 임신기간을 보내며 점점 배가 부풀었던 것 같다.
어느덧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내 안에서 꿈틀꿈틀대는 생명체를 마주할 때에는 신기한 마음에 연신 핸드폰을 들고 비디오 버튼을 눌렀는데, 그러면 이상하게도 움직임을 멈추곤 했다. 청개구리!
처음에는 심드렁했던 나도 태동이 시작되면서 나와 깊이 연결된 존재가 내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신비롭고도 따뜻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돼지띠가 될 아기에게 꿀꿀이의 '꿀'과 겸댕이(귀염둥이의 준말)의 '댕'을 합하여 '꿀댕이'라는 태명을 붙여주었다.
임신기간 동안 나는 일도 하고 대학원에도 다니고 한 동안 맘 편히 못 갈 여행도 하면서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냈는데, 당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남편이 집에 너무나 늦게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사실 남편의 늦은 귀가는 임신 전부터 종종 다툼의 원인의 되었다.
결혼하고 4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다니기 시작한 회사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업무로드를 가지고 있어서, 남편은 10시까지 출근해 새벽 2시가 넘어 집으로 오는 날이 허다했고 주말 중 하루도 온종일 회사에서 머물렀다. 나는 아침에 출근할 때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거나 그가 간신히 일어난다면 나 먼저 나간다는 인사를 했고, 그것이 하루 중 우리가 나누는 시간의 전부였다.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함께 만든 저녁을 먹는 신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렇다보니 가사분담 또한 제대로 될 리 없었고, 이것도 내 스트레스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신혼다운 신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저녁내내 독수공방 외로운 날들을 보내다가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면 한 번씩 화를 쏟아냈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답을 찾지 못하고 또 같은 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에 마주한 임신소식이었으니,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동안 내가 느낄 서운함은 불을 보듯 뻔했다고나 할까.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변해가는 몸과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버린 감정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내 생활은 많은 부분이 변화되어 가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는 남편의 생활에 나는 절망했다.
물론 남편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가 임신을 했다고 해서 회사가 일을 줄여주는 것은 아니니까.
속으로는 내가 우선이라고 해도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상황이 남편에게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알기 때문에 대놓고 탓하지도 못해서 속으로만 삭이고 있다가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출근길이며 퇴근길, 자기 전에 우는 날이 많았다. 지하철에서 배가 불룩한 임산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앉아있으니 사람들은 대단한 사연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지금도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가여워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날들이 지속되는가 싶었는데,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다름아닌 '대화'였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바쁜 와중에도 조그마한 노력을 들여 나에게 해 줬으면 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말했고, 남편은 각종 과일과 들기름, 호두, 우유 등 임산부에게 좋다는 음식들이 가득한 택배박스, 그나마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종종 손에 들려있던 아이스크림, 주말의 근사한 식사를 예약하는 것 등으로 화답해 주었다(불러오는 배에 튼살크림을 정성스레 발라준다거나 자기 전 따스한 손길로 다리마사지를 해 주길 바란 것은 너무 큰 기대였나...뒤끝작렬ㅋㅋ).
요즘 배송서비스가 얼마나 잘 마련되어 있는가! 내가 먹고싶다는 것들을 기억해 뒀다가 손가락 몇 번 움직여 주문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를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주중에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혼자만의 편안한 시간을 최대한 누리고, 토요일은 함께 맛난 음식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고, 일요일 남편이 출근을 한 후 체력이 되면 느즈막히 남편 회사 근처로 가서 저녁을 같이 하고서는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그렇게 무사히 나머지 기간을 넘겨 꿀댕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 당시 지근거리에 살던 내 동생과 동생과 함께 사는 털복숭이 친구들의 도움도 무시 못하지(thanks to 조이, 몰리).
내 인생에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던, 다시 없을 임신기간을 보내고 우리는, 우리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어려움이 있을 때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 상대도 나만큼 힘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 사소한 것들이 큰 감동을 준다는 것, 뭐 이런 것들을 곱씹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알면서도 잘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다행히 출산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준비한 이직에 성공하여 출산과 동시에 남편은 더 좋은 조건에 출퇴근이 규칙적인 곳으로 가게 되었다.
꿀댕이는 복덩이!
오늘의 결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