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털복숭이 Oct 16. 2020

내가 엄만줄은 아는걸까?

마음이 심란한 밤

이제 막 돌 지난 내 아들은 낯을 안 가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꽃미소를 날리며 심지어 어쩔때에는 팔벌려 안기기까지 한다. 엄마로서 조금 서운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동생이나 부모님, 시부모님께서 아들을 잠깐씩 봐주실 때 맡기기도 편하고, 9개월쯤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에도 빨리 적응하고, 등하원 도우미 이모님이랑도 처음부터 잘 지내서 “우리를 이렇게나 도와주다니 정말 순둥이 착한 아들이네.”싶어 고마운 마음이 컸다. 낯 가리며 엄마, 아빠가 아니면 울고불고한다는 애들이 꽤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아니, 이런 효자가 있나.” 싶었다.


조금 일찍 간 어린이집도 금방 적응!!


적절한 때에 가게 된 어린이집, 아들을 이뻐해 주시는 이모님, 무엇보다 효자 아들의 큰 협조 덕분에 나는 출산 후 10개월 뒤 복직하였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출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는 대충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아들이 6시 정도에 기상하면 남편이 일어나 같이 놀아준다. 나는 옆에서 좀 더 뒤척이다가 6시 반 정도에 깬다. 남편이 7시 반쯤 출근하고 그 쯤 이모님이 오시면 나는 마저 준비를 한 후 8시에 출근을 한다. 6시에 퇴근해 집에 오면 7시 즈음. 남편도 비슷하게 집에 온다.

출산 전부터 듣고 있던 대학원 박사과정에 복직과 동시에 복학하였다. 다행인건지 코로나 19로 모든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학교로 오가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학기는 주중 7시 시작하는 강의를 2개, 주말 강의 1개를 신청하여 수강하고 있다. 화, 목요일은 퇴근하여 집에 옴과 동시에 급히 입에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집어넣고 노트북을 켜서 zoom으로 강의를 듣는다. 아들은 남편이 전담하는데, 6시에 이모님께서 저녁을 먹이시면 우리가 7시 반 정도에 마지막 수유를 하고 8시에 재우기를 시도하면 8시 10~20분 쯤 되서 잠에 들기 때문에 크게 힘들진 않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꿀댕이가 엄청 활동적이라고 했는데, 엄청 힘을 빼고 신나게 놀다 오는지 8시만 되면 눈이 껌뻑껌뻑하고 졸린 티를 낸다. 빨리도 자주고 진짜 효자!!

결국 주중에는 아들 얼굴 볼 시간이 많지 않고, 심지어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아침 출근하기 전 잠깐 책을 읽어주거나 같이 과일을 깎아먹거나 하는 것이 다다. 대신 주말에는 온전히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집에서 같이 뒹굴며 놀든지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을 가든지 놀이터나 공원에 나가 놀아도 주고 가끔은 동물원 같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바람도 쐬러 간다.

그래서 나는 육아의 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양보다 질이지! 하면서.

내 딴에는 쉬는 시간을 쪼개어 유아식 반찬도 내 손으로 만들어 왔고 아들이 잘 먹어주었기에 나름 더 자부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며칠 전의 일로, 엄마를 알아보기는 하는 걸까?, 애착관계가 형성되어있긴 한 걸까? 하는 물음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날은 출장이 있어 빨리 퇴근하는 날이었다. 외부 출장이 있는 날은 종종 빨리 퇴근하곤 하는데, 집에 빨리 와 버리면 이모님께서 7시 퇴근시간을 채우지 않으시고 ‘이제 엄마 왔으니까 가도 되겠지’라고 생각하시는건지 어쩐지 이른 퇴근을 하시는 것 같아서, 이젠 곧장 집으로 가지 않거나 집에 들렀다 카페로 가서 책을 읽거나 대학원 수업을 위한 공부를 해 왔다. 그 날도 3시 30분쯤 집에 온 나는 잠시 쉬다가 아들 하원시간인 4시에 맞춰 집을 나와 카페로 가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글쎄 가는 길에 유모차에 탄 아들과 그 유모차를 밀고 있는 이모님을 딱 마주친 것 아닌가?! 놀란 것도 잠시, 이모님께는 빨리 퇴근했는데 어딜 좀 가야해서 다시 나왔다고 말하고는 곧장 아들에게로 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밤톨머리를 하고 눈을 땡그랗게 뜬 아들이 너무 귀여웠다.

“아들!!! 엄마야! 안녕!!?? 엄마야 엄마! 어린이집 잘 갔다 왔어?”

그런데 아무리 내가 엄마라고 외쳐도 아들이 내 얼굴을 쳐다도 안 보고 고개를 돌리려 하지도 않았다.

옆에 딴 곳만 응시하고는 내가 계속 떠드는대도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지 않는 아들.  

마스크때문인가 싶어서 마스크까지 내리고 얼굴을 바로 앞까지 들이밀었는대도 아는 체를 안 한다.

나는 이모님 앞에서 괜히 멋쩍어서 "아니, 얘가 왜 이러지? 아는 척을 안 하네? 옆에 뭐 궁금한게 있나?"하고는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계속 그 때의 아들의 태도가 마음에 걸리는 거다. 하루종일 내내.

그 이후로 아들이 나를 대하는 게 뭐랄까, 나를 엄마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아기의 모습 같달까...

아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돌 쯤 되면 엄마랑 딱 붙어있고 싶고 엄마에게 달려와 치대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

엄마, 엄마 하며 말도 곧잘 하고 나를 보며 잘 웃기도 해서 그 전까지는 전혀 그런 느낌을 못 받았었는데, 내가 엄마인 줄을 알고 엄마라고 하는건지, 그냥 옆에서 엄마라고 계속 떠드니까 따라만 하는건지, 내가 좋아서 웃는건지, 아무나한테도 웃는데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건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심란했다. 계속 아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멀찍이 떨어져서 엄마에게 오라며 팔 벌려 불러보고, 뽀뽀해 달라고 했다가, 손을 잡자고도 했다가.

그런데도 아들의 반응은 시큰둥.

웃으며 다가오다가도 옆으로 내빼고 뽀뽀도 안 해줘, 손도 뿌리쳐.

아직 말을 못 하니 속마음을 알 수도 없고 참. 아들의 생각이 궁금해 죽겠다.

내가 너무 아들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어서일까.

그래도 생후 9개월 정도까지는 매일같이 붙어 있었는데...


놀이터에 놀러가고 꽃도 본 지난 주말



오늘 밤엔 자기 전에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열심히 책을 읽어줬다.

이번 주말엔 또 어디 재미있는 곳으로 놀러가 추억을 만들까 생각한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친해지는 수밖에.

머리가 복잡한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의 실패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