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빠의 간절한 바람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요동치는 심장의 두근거림, 찰나의 순간의 크나큰 기대감, 아주 잠깐 동안의 기분좋은 설렘.
누가 들으면 로또나 청약 추첨하는 줄 알겠지만...그렇다. 이건 돌잡이를 두고 하는 얘기다.
돌잡이 상을 앞에 두고 아기가 손을 뻗는 그 짧은 순간에 엄마아빠는 내 아들이 의사가 되는 것도 봤다가 판사석에 앉아 있는 것도 봤다가 세계적인 골퍼가 되어 그랜드슬램 달성하는 것도 보고 BTS 저리가라 전세계가 열광하는 가수가 되어 있는 것도 봤다가 그도 아니면 어쨌든 엄청나게 부자가 되어 우리를 호강시켜 주는 꿈을 꾼다.
세상에 나와 고작 이제 12개월을 살았을 뿐인 아기에게 그런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쬐끔 미안해진다.
하지만 으레 이 순간이 되면 부모는 그런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돌잡이가 뭐길래 정말!
한 달 전에 했던 꿀댕이 돌잔치 때 찍었던 스냅사진을 그저께 드디어 메일로 받았다.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그 때 기억들이 스믈스믈 나면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몸부림치는 꿀댕이한테 셔츠부터 멜빵바지, 타이, 쟈켓을 낑낑대며 입히고, 불편한지 짜증부리는 꿀댕이를 돌아가며 달래고, 몸에 꽉 끼는 드레스를 입고 평소에는 잘 신지 않는 하이힐까지 장착하고, 전 날 비가 왔는지 축축해진 풀밭을 하얀 새틴의 하이힐이 쑥쑥 빠지는데도 거침없이 활보하며 때로는 10키로 꿀댕이를 들쳐안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면서 카메라를 응시했던 그 날.
힘들지만 절대 얼굴을 찡그려서는 안 된다.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무기가 생명인 것처럼 돌잔치에서의 부모에게 입꼬리 바짝 올라간 웃음은 생명과도 같으니깐.
찍을 때는 "아..이걸 내가 왜 한다고 해서... 그냥 가족끼리 밥 먹고 우리끼리 휴대폰으로 기념사진 몇 장 찍고 끝낼걸.."했지만 역시 전문가의 손길을 다르다.
남는 건 사진뿐.
결과물을 놓고 보니 스냅사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진들 중 돌잡이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꿀댕이가 판사봉을 만지작거리길래 내가 “안돼!!” 외마디 소리를 질렀더랬지.
우리집에 더 이상의 법조인은 필요없을 것 같구나 아들아.
그러자 움찔하더니 더 이상 아무것도 집으려 하질 않길래, 거기 있는 것들 중 남편 눈에 그나마 나아보였던지 청진기를 꿀댕이 목에 걸어주었다. ㅎㅎ
아니 왜 거기에는 요즘 핫한 돌잡이 아이템이라는 골프공이나 마이크가 없었던 것인지.
우리가 바라는 꿀댕이의 진로는 공부가 아니었는데, 결국 고른다는게 청진기였다.
부모 맘이란게 어쩔 수 없구나.
부모들은 흔히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왜 커갈수록 바라는 게 점점 많아지는 것인지.
생후 12개월, 돌만 되어도 돌잡이라는 명목으로 자녀의 미래를 점치며 부모의 기대를 투영하니 말이다.
물론 그건 자녀가 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티비를 보는데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휘재가 그러더라.
자기네 부부도 아이들에게 선행학습 시키지 않고 어려서부터 공부공부 하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려 했는데, 아이들이 친구들을 만나고 그 부모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눈 감았다 떠 보면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이 한글을 떼고 있다고.
결국 또 사교육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고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은 끊임없이 주위의 친구들과, 세상의 잣대와 비교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자연스럽고도 일반적인 추세에 흔들리지 않고 초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행히 자녀가 잘 따라와주고 본인 스스로 공부가 적성에 맞고 흥미가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케이스가 훨씬 많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사교육에 힘을 쏟는다면 자녀는 자녀대로 지치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힘들고 부모는 부모대로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자녀가 안타까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애초부터 마음을 먹었다.
꿀댕이 교육에 너무 목매지 말자.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했는데, 또 꿀댕이가 자라고 학교갈 때가 되면 어떻게 될 지 나도 장담할 수는 없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 일찌기 알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 꿀댕이가 똑똑하다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흐뭇해했던 나다.
“에이~ 좋게 봐주셔서 그렇죠, 아직 애긴데.” 말로는 아닌 척 했지만 “역시 내 아들이야.”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인 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도치맘.
그래도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말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기를.
며칠 전부터 줄줄 나오는 콧물이나 제발 얼른 멈췄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