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도 잘 부탁해
나는 수족냉증을 앓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고등학생 때, 다이어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때부터 내 삶은 수족냉증과 함께였던 것 같다.
학생 때 보다 못한 엄마가 나를 데리고 한의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내 몸을 스캔해서 온도를 나타내 주는 화면을 보니 진짜 손이랑 발을 포함한 많은 부분이 파란색이었다. 그때 한의사가 나에게 수족냉증에 좋지 않은 음식을 나열하며 그것들을 피하라고 했는데, 밀가루, 유제품, 커피, 치즈 등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다 포함되어 있어서 '에이, 어쩔 수 없구만. 생긴 대로 살아야지 뭐.'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다이어트를 예전만큼 하지 않는데도(체력이 딸려 할 수도 없다) 왜 이 증상은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없어지지 않는 것인지. 진정 음식 때문인가...
어제는 사무실 한편에 고이 잠들어있던 발난로 쿠션을 꺼냈다.
뚫린 구멍 사이로 두 발을 쏙 넣고 전원을 켜면 발이 따뜻해지는 다람쥐 모양 쿠션인데 겨울 필수품이다.
뜨거운 물을 항상 컵에 넘치게 부어놓는 것도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홀짝이며 두 손을 컵에 대고 몸을 녹여야 하니깐.
난방을 세게 틀면 머리가 너무 아프니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하는 것으로 몸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의 수족냉증은 더욱 그 정도가 심해져서 두꺼운 수면양말을 신지 않고는 잠에 들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깜박하고 맨발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가 발이 너무 시려서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양말을 가지러 가는 것조차 귀찮을 때에는 누운 채로 아빠 다리를 하고 발을 허벅지 사이로 구겨 넣는다. 그러면 잠시 동안 발이 녹아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손도 마찬가지로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거나 목을 감싸서 녹이고는 했다.
정말 심할 때에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해서 체온을 한껏 높인 후 재빠르게 몸을 닦고 포근한 잠옷과 푹신한 수면양말로 갈아입고서는 따뜻한 물까지 한 잔 마시고 잠에 들어야 한다.
몸이 따뜻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은 기초체온이 평균보다 높은 사람이다.
땀이 많아 여름을 훨씬 힘들어한다.
나는 추워 죽겠다고 하는 날씨도 남편에게는 그저 시원한 날에 불과하다.
요 며칠 사이 너무 추워졌길래 옷장 속 캐시미어 니트며 가디건에 재킷을 겹겹이 겹쳐 입었더니, 남편이 나를 심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얇은 트렌치 하나만 달랑 입고 나가는 남편이 이상한데...
이렇게 느끼는 온도가 다르니 겨울에 난방을 할 때에도 나는 집 온도를 계속 높이고 남편은 계속 낮춘다.
잘 때에도 나는 집에서 제일 두꺼운 오리털이불을 끌고 와 덮어야 하고 남편은 대충 따뜻한 이불을 덮어도 잘만 잔다.
한 침대 두 이불이다.
이런 남편과 결혼을 하니 좋은 점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난로가 내 옆에 있으니까.
양말을 신지 않고 잠에 들어도 발이 시릴 때면 나는 남편의 이불속으로 내 발을 살포시 밀어 넣어 남편의 발에 내 발을 갖다 댄다. 남편은 화들짝 놀라지만 이내 또 올 것이 왔다는 듯 체념하고 본인의 발을 내어준다.
손도 마찬가지. 남편의 잠옷 속 등으로 내 손을 뻗친다.
난로를 껴안듯 남편을 안으면 내 몸으로 그의 체온이 전해지며 따뜻해져 온다.
물론 남편은 또 화들짝 놀라지만. ㅎㅎ
나는 "시원하니 좋지? 내가 시원하게 해 주는 거야~"라며 은근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고 반강요로 스킨십을 한다. 마지못해 등을 내어주는 남편.
단 남편이 먼저 자고 있을 때는 등 난로 사용이 불가하다. 나도 그 정도 예의는 있다.
그때는 등 대신 손을 잡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 생일과 크리스마스가 있고 황홀한 연말 분위기가 가득한 계절이라 겨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는 이 수족냉증은 다가오는 겨울을 두렵게 만든다.
그래도 인간 난로 남편이 곁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올 겨울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