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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Nov 16. 2020

불공평한 다이어트

아, 힘 빠져

출산을 하고 일 년이 지났다.

임신 중일 때에는 아기가 위를 누르는 위치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건지 조금만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됐고 그러다 보니 입맛도 없어서 체중이 8킬로밖에 늘지 않았다.

꿀댕이가 3.2킬로로 태어났으니 양수와 태반 무게를 더하면 살은 정말 적게 찐 편이다.

누구는 임신하고 원 없이 마음껏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그러고, 체중이 20킬로 가까이도 불어난다는데, 그런 얘기는 나에게는 먼 나라 얘기였고 그나마  입덧 심하지 않은 것에 만족을 했었다.


임신 중 체중이 많이 불어나지 않았어서 출산을 하고 나면 바로 내 원래 몸매를 회복할 줄 알았다.


근데 이게 무슨 일??


뽈록 튀어나왔던 배는 매우 천천히 조금씩 가라앉았고(자궁이 원래 모양으로 줄어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조리원에서 거울에 내 배를 비춰볼 때마다 아직 임신 6개월은 되어 보였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산후조리에 힘쓸 때였고, 또 난 모유수유를 할 생각이었어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모유수유를 하면 살이 쪽쪽 빠지다 못해 임신 전보다 더 말라간다고들 했으니깐!!


그래서 나는 모유수유에 힘썼다.

물론 모유가 아기에게 가장 좋다고들 하고 모유 양도 충분했고 꿀댕이와 합을 맞추는 그 순간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모유수유 시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효과로 자궁이 빨리 수축되고 칼로리 소비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배가 얼른 쏘옥 들어가길 바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피도 나고 너무 아파 고생을 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지고 무엇보다 너무 편해서 처음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무려 9개월 가까이 모유수유를 했다.

 

근데 이게 무슨 일??


살이 빠지기는 개뿔.

수유를 하고 나면 배가 너무너무 고팠다. 영양분을 다 빨아가기 때문인지 금세 허기가 졌다. 임신 중일 때 보다 더 잘 먹었다.  위를 누르는 아기가 이제 없으니 소화도 잘 되고 자연히 입맛도 돌았다.

모유 수유하면 살이 쭉쭉 빠진다는 말은 도대체 누구 얘긴가 싶었다(아마 수유를 하면서도 아기를 돌보느라 본인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엄마들의 경우가 아닐까... 그런데 나는 너무 자~알 챙겨 먹었다 ㅎㅎ).

설상가상으로 육아휴직 중 세 가족 모두 코로나 확진자의 접촉자로 분류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밤낮 할 것 없이 사육을 당하기도 했고, 복직 후에도 코로나로 인한 간헐적 재택근무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뱃속의 지방은 더욱 자리를 공고히 잡았다.

배는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몸무게는 예전의 숫자로 돌아왔는데, 왜 어째서 배는 예전처럼 쏘옥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배가 나오니 아무래도 옷 입을 때 신경이 쓰이고, 허리 선이 드러나지 않는 옷만 찾게 되고, 앉아 있을 때도 불편했다. 무엇보다 그런 내 모습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침 남편도 결혼 이후 늘어난 내장지방으로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남편은 딱 보기에는 슬림한 체형으로 다이어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가 볼록 튀어나와있다. 이티 체형 아시려나...


일하느라 계속 앉아있는데 예전처럼 운동하지는 않고 먹는 건 잘 먹으니, 배가 서서히 불러와서 눈대중으로 보기에 한 임신 5개월은 되어 보이는 정도였다.

남편이 옷 갈아입을 때마다 내가 옆에서 "헉!!!" 놀라며,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꿀댕이 동생이 뱃속에 있는 거냐며 시비를 걸면 남편은 내 배를 꾹꾹 누르며 이건 뭐냐고 응수했다.


그렇게 서로를 걱정하듯 놀리던 어느 날, 한 달 전쯤이었나.

그날도 뱃살 빼야 하는데~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먼저 5킬로 빼는 사람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는 내기를 했다.

뭔가 그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될 것 같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한 내기였는데... 아뿔싸. 난 미처 이걸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남편이 그러는 거다. 자기도 몰랐는데 주말에  체중을 쟀더니 6킬로가 빠져 있더라고...

아니 어째서?

남편은 특별히 식단 조절을 한 것도 아니었고, 따로 운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남편 얼굴이 좀 갸름해진 것도 같고, 배가 좀 들어간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남편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 물었더니, 그저 야식을 먹지 않았을 뿐이었다고 했다.

그걸로 무려 6킬로를??

그 전엔 꿀댕이를 재우고 출출하다며 빵이나 핫도그, 냉동피자나 감자튀김 같은 것들을 데워 먹긴 했었지만 그것만 안 먹었다고 그렇게 쉽게 살이 빠지다니?


난 원래 야식을 잘 먹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체중을 줄이기 위해 알게 모르게 해 왔던 노력들을 되새겨 보았다.

식단 조절한다며 컬리에서 닭가슴살을 종류별로 사다 놓고 저녁마다 한 개씩 꺼내 볶은 채소와 같이 한 끼를 해결했던 나의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출퇴근 시간 계속되는 유혹을 뿌리치고 꿋꿋이 버스 대신 걷기를,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택했던 나의 의지는, 점심시간에도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로 식단을 채우려 했던 나의 선택은, 다 무엇이었을까.

왜 그것들은 나에게 홀쭉한 배와 아름다운 바디라인을 선물해 주지 않는 것일까.

부질없구나.

힘이 쪽 빠졌다.




"우리 내기하지 않았나?"

그때 치고 들어오는 남편의 말.

"응?? 언제? 잘 모르겠는데?"

완벽한 포커페이스였다. 난 눈을 똥그랗게 뜨고 꿈뻑꿈뻑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고는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대단하다~ 어떻게 야식만 안 먹었다고 6킬로가 빠지냐."

"저번에 한 것 같은데..."

제발... 더 이상 생각하지 마!!!

다행히 남편은 별 노력도 없이 6킬로를 감량한 것으로 내기에서 이겼다고 생색내는 것이 본인 스스로도 썩 자랑스럽지는 않았던 것인지 어쩐지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후...십년감수했구만.

이제 절대 남편과 살 빼는 걸로 내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내 배...ㅠㅠ  

운동은 진짜 싫은데, 뛰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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