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털복숭이 Jul 15. 2020

같은 직업을 가진 동갑내기 부부

나와 남편은 동갑내기 친구(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빠른 년생이라 한 살 어림!)이자 변호사 부부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만나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냥 친구로 지내며 학교 사람들과 다 같이 어울려 다니다가, 점점 둘이서만 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연락의 빈도가 잦아지면서 어느샌가 매 순간 딱 붙어있는 교내 커플이 되었다.


 

2013년 1월 3일. 동생 생일과 같은 날이라 잊을 수가 없지.

겨울방학의 어느 날 우리는 동네(남편과 나의 본가는 걸어서 5분 거리로 엎어지면 코 닿는 수준이었는데, 이것이 우리의 사귐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커피집에 마주 앉아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차마 누가 먼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눈알만 빙빙 굴렸던 기억이 난다. 몸도 베베 꼬았나?

그 후 어떻게 상황이 전개되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남편이 "잘해보자"라며 쑥스럽게 악수를 청했던 건 또렷이 기억나는군. 허허.

그렇게 우리의 1일은 시작되었다.



학기 중에는 둘 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만 빼놓고는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지냈다.

아침에 일어난 후 식당에서 만나 아침밥을 같이 먹고, 강의실로 가서 수업을 듣거나 독서실로 가서 공부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고, 또 강의를 듣거나 공부를 하다가 같이 저녁을 먹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며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맞춰 학교 산책을 하거나 휴게실에서 수다를 떨고는 다시 기숙사로 가서 각자 잠을 자는 패턴의 하루하루가 반복되었다.

학교의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렇게 하루 온종일을 같이 생활하는 일상이다 보니, 우리말고도 교내에 커플이 매우 많았다. 사귀다가 깨지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과 사귀고, 동기랑 사귀다가 다른 기수 사람이랑 사귀다가... 그야말로 그 안은 정글이었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참 도토리 쳇바퀴 굴리듯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물론 중간중간 데이트도 하고 방학 때는 놀러도 다니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었었지. 후후

힘든 수험기간 지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는 닮은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부분도 많았고, 종종 투닥거리기도 하였지만 시험을 치르기까지 2년 동안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자 연인,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었다. 고마워 남푠!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결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상상을 해봤던 것 같기도 하고...ㅎㅎ





시험이 끝나고 발표가 있기 전까지 약 3개월 동안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여행도 다니고 미뤄두었던 데이트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시험 이후의 모습도 각자의 성격에 따라 극명히 차이가 났는데, 남편은 시험이 끝난 직후 홈페이지에 올라온 답안으로 채점을 마치곤 합격권에 들었음을 확인한 후 그 뒤로는 마음 편하게 놀러 다니며 발표일을 기다렸다. 반면 나는 심장이 떨려 채점하길 포기하고 발표 나기 직전까지도 당연히 합격하겠지 하는 마음 반, 혹시나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 반으로 걱정하며 개운하지 못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친 시험이고 이미 결과가 났는데 왜 채점을 못했을까 싶은데,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아아 여린 가슴이여...

드디어 발표날!! 우리는 합격을 확인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더랬나?? ㅎㅎ

솔직히 나는 기쁜 것보다는 안도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제야 마음 편히 시험지를 가져와 답안지를 보며 점수를 매겼는데!

아... 나는 왜 그토록 마음을 졸였던가. 한편으론 허무했던 채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변호사가 되었다. 두둥.


아주 행복한 나날들이었지...잠깐 동안은




드디어 수험생활이 끝났다며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는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남편은 3년의 법무관 생활이 정해져 있었지만 나는 취업을 고민해야 했다. 실무수습 기간이 끝난 후 나는 꽤 오랫동안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고, 우연히 접한 공고에 반신반의하며 본 면접에서 좋은 인연을 찾아 어느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서의 첫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한 차례 이직을 했고, 남편도 법무관 생활을 거쳐 법무법인에서 일을 하다 지금의 회사로 가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한 차례 헤어지기도 했는데,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만나 5년 연애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 후 2년이 지난 지금, 너무나 사랑스러운 꿀댕이를 만났고 세 가족이 되었다.



부부가 같은 직업을 가지면 좋은 점이 많을까, 안 좋은 점이 많을까.

우선 일을 하다가 잘 모르겠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가장 편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고,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 SOS를 칠 수도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남편은 일에 허덕이던 지난날, 임신한 나에게 본인의 일을 나누어 주며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또 이직이나 학업 등 앞으로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 같이 생각을 나누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고, 법조계가 생각보다 좁기 때문에 인맥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서로의 업무환경이나 업계의 생리를 잘 안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데, 잘 알기 때문에 상대방을 더욱 이해할 수 있는 반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오히려 포장을 하거나 둘러대기는 어렵달까.

더 나열하려면 나열할 수 있겠지만 일단 요정도.

아, 변호사라 그런지 역시 남편은 말싸움에서 절대 절. 대. 지지 않는다. 최대 단점이군... 오마이...


그래도 사 랑 해!

 




이전 01화 변호사 되기 잘했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