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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Feb 07. 2020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돌아오지 마, 아름답게 거기 있어줘요


She's back.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대를 하면 반드시 실망을 한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존 코너를 죽이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일반적으로 누군가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2편을 말하고 있을 확률이 클 것이다.

그만큼 이 시리즈를 대표하는 게 2편이고, 제임스 캐머런의 필모 중 가장 명작인 영화를 <터미네이터 2>라고 우겨도 누군가와 크게 의견 부딪칠 일은 없다.

이 영화는 시리즈 초기작들의 느낌을 많이 내는 데다 원년 사라 코너 린다 해밀턴까지 소환하여 옛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뻔하였으며, 3,4,5 시리즈의 내용을 외전 취급하며 없던 일로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 굉장히 기대감을 증폭케 하는 요소들이었다.    

기존 이야기를 폐기하고 2만큼 멋진 영화가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이번 편이 이 시리즈의 종착역이라고 선언한 제임스 캐머런의 패기 넘치는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3,4,5에서도 이미 존 코너는 능멸을 당하고 있었다. 어미가 목숨 걸고 지켜놨더니 인류의 뒤통수를 치거나, 외모가 지나치게 역변하는 식으로. 그러나 이번 편에서는 존 코너를 아예 없애 버린다. 그래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영화는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마무리로서도 실망스럽고, 원작자에게 다시 돌아왔음에도 실망스럽고, 그의 호언장담에도 미치지 못하고, 린다 해밀턴의 컴백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럽고, 맥킨지 데이비스라는 매우 매력적인 배우가 주연을 맡아 혼신의 근육 연기를 펼치는데도 실망스럽고, 중간의 시리즈 망작들을 과감히 무시해버리는데도 뭐 굳이 그래야만 속이 시원했냐 싶게 실망스럽고,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내 일생엔 어떤 신조와도 같은 것이 있는데, "호언장담의 끝은 개망신이다".

그리고 기대를 하면 반드시 실망한다.


제임스 캐머런은 "팬이라면 만족할 것"이라고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놓고 있다. 실망하면 팬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덫.


https://www.yna.co.kr/view/AKR20191025159800005?input=1195m



결혼을 네 번이나 해봐서 여자를 잘 안다는 제임스



영화의 장점

초반 십분 정도는 1,2편과 의도적으로 비슷하여 레트로 느낌 나고 좋았다. 



이 언니가 처음 등장해서 신나게 액체 괴물을 타격해줄 때까지는 전율하며 즐길 수 있었다.  



재미가 없다고 보긴 어려웠고, 중반부까진 재미있었다. 중후반부부터는 떨어지는 긴장감에 잠이 쏟아졌고, 제임스 선녀님 빙의한 배우들의 일차원적이고 노골적인 주제의식 대사,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걸 크러시 느끼라고 강요하는 센 대사들에 거부감이 느껴졌으며 이것들이 몰입을 크게 해쳤다. 




실망한 점

중반부터는 그렇게 산으로 가는 듯했다. 긴장감은 미래에 놔두고 온 모양이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한데 왜 때문인지 눈에 보이고 있는 유령처럼, 영화 속에 내내 선명하고 부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화자의 의도도 문제였다.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을 선녀 빙의한 무당처럼 주인공들이 너무도 직접적으로 내뱉어내고 있었다. 어린이 관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역시 pc 인가 싶어 마음 깊이 감사하였다. 


스티븐 킹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에 영화의 pc와 예술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가 난독증 환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말의 의도나 핵심과 무관하게. 


https://nypost.com/2020/01/14/stephen-king-ignites-online-fury-over-controversial-oscars-tweets/


스티븐 킹은 PC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작품을 외부 정치 윤리적 요소 외 예술적 완성도로만 평가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왜 완성도가 높지 않은 영화를 보면서 “난 그저 아들을 생산하는 자궁이 아니야! 눼가! 나님이 바로 변화 그 자체다! 닥치고 걸 크러시 해!” 손뼉 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성별 인종 관념에서 벗어나 좀 아무나 멋있으면 안 되는 거야? PC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영화는 물론 많다. 부자연스러운 억지 PC 역시 어느 정도 미디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며, 생각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어린 시절엔 흑인 배우를 미디어에서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흑인 배우들 간의 얼굴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나 작품으로서 영화의 예술성은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지나친 PC는,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되려 오만한 배려일 수도 있다. 



무려 1979년에 개봉한 에일리언. 리들리 스콧은 인종차별주의자 의혹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시대에 얼마나 진보적 여성상을 파격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내었던가. 나는 에일리언 시리즈가 시고니 위버를 그려내는 방식과 비유적으로 성 역할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방식이 진정한 의미의 찐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에일리언도 빨리 하나 더 만들어줘요.)



린다 언니와 

아놀드 주지사님은 최선을 다했다. 

이건 감독 책임이다. 


I'll be back. 

돌아오려거든,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납시다. 

잠들어 있는 영웅을 깨울 구실은, 변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혁신이었어야죠.

수많은 관객의 기억 속에 박제된 그림에 덧칠을 하려거든 더 좋은 물감을 준비해오셔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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