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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an 20. 2020

포드 대 페라리

너희는 차 팔아라, 우리는 그저 즐길 테니


“We think he may be too pure.”

-우리는 그(켄 마일스)가 지나치게 순수하다고 생각해.


너희는 차 팔아서 돈 벌어라. 우리는 그저 밟는 것이 즐겁구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그래 너희는 성공해라, 우리는 그저 속도를 즐길 테니. 

그저 완벽한 순간, 자신의 한계를 이기는 순간만을 위해 달리는 사람과, 현실의 다른 역할과 타협해야 하는 사람이 마주하는 이야기.


“세상에는 자동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미쳐서 몰두할 다른 것을 찾아 자동차에서 빠져나온, 르망 우승 레이서 출신 셸비.

"(비비 부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너무 순수해서" 최후까지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레이서 켄 마일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있는 줄도 모르지만 분명 존재하는, 완벽한 어떤 순간만을 위해 달렸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백미러에 곧 나타날 누군가를 따돌리고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야가 넓어지고 다른 모든 것이 느려지는 그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던 날들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7000 rpm에서 만나는 그 순간.


There’s a point, seven thousand RPM, where everything fades. The machine becomes weightless, just disappears. And all that’s left is a body moving through space and time. Seven thousand RPM. That’s where you meet it. It asks you a question. The only question that matters: Who are you?



무언가에 몰두하며 살다 보면 찾아오는 궁극의 순간이 있다. 이 순간들은 흔히 외부의 자잘한 요소들(특히 자본주의적 요소)로부터 독립적이며, 그것들과 균형을 이루기는커녕 주로 대척점에 있다. 


몰두할 것을 찾아냈다는 셸비에게도 자본과 조직의 벽은 높기만 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궁극의 완벽함에 도달해본 사람에게는 더 자괴감 드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업은 이윤이라는 수단을 승리의 목적으로 삼지만 개인은 한계를 넘어서는 승리의 순간 진짜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달린다. 궁극에 몰두하기 위한 열망이 자본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행운이 따라야, 도전의 정점까지 앞뒤 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용인되는 행위가 된다.   


 그건 이 영화가 자본주의적 연출을 피할 수 없었던 여러 지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화는 중간중간, 특히 막바지에 다다르면 많이 아쉽다. 지나치게 판타지처럼 묘사되는 양처와 귀여운 아들도 그렇고, 실화를 좀 더 영화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너무 안이하게 택했음직한 장치들도 많이 보인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 속 조직의 간부 자체가 워낙들 평면적이고 단순하다 보니 너무 극화됐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국가-조직-가족-개인의 구도에 대한 이야기도켄 마일스나 포드의 에필로그를 다루는 방식도 기대보다 구태의연하기는 하다.


완벽한 영화가 되지 못했지만,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아름답다. 심장까지 진동하는 클래식 카의 엔진 소리,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경기 중의 접전과 마일스가 결승선에 들어올 때의 희열에 팔뚝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다.

"자전거랑 똑같아요! 다 기억이 나요!"

유머러스하기도 하며, 셸비와 켄의 캐릭터 설정 또한 다소 평면적으로 기시감이 스치지만 배우들의 호연이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퍼펙트 랩. 궁극의 순간에 도달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한순간이 막대한 돈과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느냐고 반문할 지점 인지도 모른다. 선택받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순간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모든 이가 납득할만하지 못할 도전이 될 수도 있고, 아예 그 순간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택받은 사람이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현실과 타협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 빙상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기를 해내는 사람을 보며 본능적으로 대리만족을 느낀다. 어떤 이유로 내가 가기 어려웠던 지점에, 누군가는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영화 속 켄 마일스의 경기 중 속도전 속에서도 노련하게 기회를 살피다가 마지막에 엑셀레이터를 밟는 마일스의 퍼펙트 피치에 여러 번 소름이 돋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사족이 많고 다소 온도 조절이 안 된 영화이지만, 영화에서 가져갈 수 있는 즐거움의 소재는 거의 다 가져오는 영화인 것 같다. 삶, 승부, 경쟁, 가족,  속도, 손에 땀을 쥐는 경기, 승리의 카타르시스, 조직과 거대 자본 속 개인 등.





153분도 견뎠으니 이제 아이리시맨도 보쟈. 아니 왜 영화를 두 시간 넘게 만드는 거죠? 오줌도 안 싸는 사람이 만들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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