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 데이 인 뉴욕
가득 품었던 기대를 귀신같이 눈치채고 하나 둘 틀어지는 하루,
갑작스러운 장대비처럼 마음 같지 않은 사건의 연속,
보상처럼 반복된 우연 끝에 온전히 찾은 새 인연.
기대를 눈치채고 하나 둘 틀어지는 하루, 그 자식...... 머피
기대를 하면 반드시 실망한다. 잔뜩 기대해서 기획한 데이트는 엇나가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생각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신선하게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머피라는 녀석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귀신같이 눈치채고 하루의 일정을 하나 둘 틀어지게 만든다. 중요한 데이트가 있거나 결혼식이라도 올리는 날, 피부가 귀신같이 눈치채고 안 나던 뾰루지를 출몰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타고나 자란 나와바리 뉴욕을 떠나 근교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개츠비는, 금발의 귀여운 미인 여자 친구 애슐리에게 흠뻑 빠져 있다. 영화광인 여자 친구가 갑자기 유명 감독과 인터뷰를 잡게 되면서 잔뜩 기대하던 뉴욕 여행,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들에서 애슐리와 함께 할 생각을 하며 부푼 기대를 품던 개츠비의 예정된 일정은 하루 종일 틀어지고, 두 사람은 어긋나기만 한다.
갑자기 만난 장대비처럼 손 쓸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인생
개츠비와 애슐리는 사실 진짜 자신인 채로 사랑할 수 있는, 어울리는 짝이 서로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개츠비가 홀로 뉴욕의 거리를 걸으면서 늘 바쁜 이 회색도시와 지나치게 다른 이에게 관심 없이 불안감과 적대감, 편집증에 가득 찬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애슐리는 뉴욕에서나 가능한 다양한 만남을 즐기며 전혀 반대의 뉴욕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만난 장대비처럼 갑작스러운 일로 가득한 삶. 살다 보면 자기 자신과 멀어지곤 하는 우리는 늘 그 나답지 못한 일상의 익숙함에 지고 만다. 인생은 갑자기 우산 없이 외투 하나만 아슬하게 걸친 채 쫓겨나 걷는 거리처럼 손 쓸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익숙함에서 갑자기 벗어나 고단한 외부 난제들을 만날 때 우리는 어쩌면 진짜 나다운 나를 되찾을 기회를 맞기도 한다.
돌고 돌아 마주하는 나다움, 보상 같은 새 인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몸 담고 자라온 도시를 떠나 살던 개츠비는 어긋남으로 가득한 하루를 겪고, 생각지 못한 어머니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 오랜 시간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나고 자란 환경과 배경이 비슷하여 익숙한 패턴으로 대화가 통하는 이성을 새로 우연히 만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했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지기 쉬운 익숙함을 깨고 자신으로 남기로 한 순간 마주한 새 인연. 하루 종일 궂었던 하루와 한 동안 잊고 있던 자신을 돌려주는 것 같은 하루.
비, 재즈, 뉴욕, 별 것 아닌 수다 수다
스티븐 킹은 ‘별도 없는 한밤에’의 닫는 말에서, 글쓰기에서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작가를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부도덕한 소재에 대한 비난과 자가 복제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실제 수준보다 많이 저평가될 수도 있지만, 마치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처럼 꼼꼼하게 인물과 주변 배경을 설정하고 매끄럽게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플롯을 풀어가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플롯이 두드러지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은 즐겁다. 인간은 소문과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디 앨런이나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인간이 왜 진짜 삶이 아닌데 진짜 삶만큼이나 진짜 같은 이야기를 자꾸 창조하고, 듣고 싶어 하고, 시공을 넘도록 실어 나르며 그 과정에서 계속 재창조를 하는지, 그런 인간의 본능에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을 준다.
쉽게 써 내려간 듯하지만 보는 사람이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잡아두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요즘 세상에 쉽지 않다. 요즘 세상엔 너무 뭣도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1935년생 할아버지로선 더 하다. 점점 자극적인 MSG가 빠져가는 우디 앨런의 가벼운 수다 수다가 나는 즐겁다. 게다가 그 수다가 비, 재즈, 회색 도시 안에서 벌어진다면 좋아해야지, 뭘 더 망설이겠는가.
비 오는 날 재즈가 흘러나오는 펍에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별 것 아닌 수다를 떠는 일을 좋아하세요?
영화의 내용을 압축한 노래가 아닐까, 우디 앨런이 이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딱 맞아떨어지던 노래, 원곡은 시나트라인가, 챗 베이커의 노래로 더 익숙한 Everything happens to me. 비 오는 날 피아노 앞에서 부르는 이 노래 하나만으로도 관람료가 아깝지 않았다.
I make a date for golf, and you can bet your life it rains.
내가 골프 약속을 잡는다면, 비가 올 거라는 내기에 당신 인생을 걸어도 좋을 거예요.
I try to give a party, and the guy upstairs complains.
내가 파티를 연다고 하면, 위층 남자가 항의를 할 거예요.
I guess I'll go through life, just catching colds and missing trains.
내 인생은 감기에 걸리거나 기차를 놓치는 것 같은 일로 가득하죠.
Everything happens to me.
늘 내게 벌어지는 일이에요.
I never miss a thing. I've had the measles and the mumps.
뭐 하나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네요. 여드름도 수두도요.
And every time I play an ace, my partner always trumps.
내가 카드게임을 한다면 내 파트너는 늘 나보다 우세한 패를 쥐고 있죠.
I guess I'm just a fool, who never looks before he jumps.
아무래도 나는 높이 확인도 하기 전에 먼저 뛰기부터 하고 보는 바보인 것 같아요.
Everything happens to me.
늘 내게 벌어지는 일이에요.
At first, my heart thought you could break this jinx for me.
처음엔 당신이 나의 이런 징크스들을 깨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That love would turn the trick to end despair.
사랑이 나의 이런 절망들을 날려 보내줄 것이라고.
But now I just can't fool this head that thinks for me.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나를 원망하죠.
I've mortgaged all my castles in the air.
다 허황된 꿈일 뿐이었으니까.
I've telegraphed and phoned and sent an air mail special too.
나는 전화도 해보고, 전보도 부쳤고, 특급 메일도 보냈지만
Your answer was goodbye and there was even postage due.
당신의 대답은 안녕, 우표조차 아까웠던 모양이죠.
I fell in love just once, and then it had to be with you.
단 한 번 사랑에 빠졌는데, 그게 꼭 그런 당신이어야만 했던 것까지
Everything happens to me.
늘 내게 벌어지는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