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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Aug 27. 2020

인과라는 순리와 물리적 시간이라는 속박이 없을 때

'테넷'의 1회차 관람기 / N회차 안 할 거면서

로고가 변경되기 전의 테넷 포스터 /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What will be will be.” 스티븐 킹이 이미 이렇게 말했지.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고. 인과라는 순리와 물리적 시간이라는 속박이 없을 때의 이 문장은 자신의 관조나 부족함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의지에 대한 찬양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미래의 나세끼가 현재의 나새끼를 조져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과거의 나님이 현재의 나보다 훌륭한 분이신 것 같아, 이 추세로 가면 미래의 나시끼는 현재의 나와의 싸움에서 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의식해야 할 건 언제나 타인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의 나뿐이고 무모한 의지나 무지 같은 날것들은 언젠가 나도 모르게 승리의 근원이 된다. 


터지지 않은 폭탄은 위험하지만 그렇게 터지지 않은 우리의 포텐이 우리를 구하려나보다. 환경은 파괴되고 있고 우정과 인류애가 우릴 구원할 것이라고 또 그런다. 영국인들이 입지 않는다는 브룩스 브라더스는 반값으로 나온 여주 아울렛에서도 비싸다면서 떨리는 손으로 카드 긋는 브랜드인데 싸구려 수트라고도 한다. 스룩브룩스......


의식과 기억 속에서 자유롭게 앞뒤로 흐르는 시간 흐름을 이야기하던 영화 컨택트도 생각난다. 물리적 제약이 사라진 시간 흐름을 비유하며 딸의 영문 이름을 거꾸로 해도 같은 hannah인데 영화의 제목인 테넷도 거꾸로 해도 테넷이며 거꾸로 해도 이효리 같은 거라고 보면 되겠다. 찰스 유는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에서 인간은 언제든 기억 속 추억을 떠올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전천후 맞춤형 타임머신이라고 하기도 했다. 


내가 못 가지면 남도 못 가진다고 떼쓰는 스포일드 차일드 출신 늙은 빌런의 패기가 괜스레 멋있어질 무렵 미인계는 21세기에도 먹히는 만고의 전략이라는 교훈도 얻는다. 21세기의 미인계 구사자가 “난 상처 받고도 사랑 타령하는 여자가 아니라 복수에 도른자 미친리언” 이라며 파워 당당하게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지 자존심을 앞세우는, 입만 산 자식이라는 것은 아쉽다.


다른 영화에서는 설명 없이도 통빡으로 아다리가 맞아 이해가 잘 되던 것들을 여기선 무슨 말인지 오지게 빠르고 오래도록 설명하는데 통 알아듣기가 귀찮아지고 그래. 자꾸 딴생각나고 회사 생각나고 화장실 가고 싶어 지는 와중에 건조하게 건네는 희망의 말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도 다 알겠고 찡하고 그렇기도 하다. 

쉴 새 없는 설명충들 속에서 날 견디게 만들어준 건, 네모 바위 사람처럼 생겼다고 생각해 한 번도 매력을 느낀 적 없던 드라큘라 녀석이 오랜만에 핏기 좋은 얼굴과 숱 풍성한 금발 바가지 머리를 빙구처럼 나부끼며 꽃잎(파편과 먼지가 미남빨 받음) 속에서 해사하게 웃음으로 안녕하는 장면 같은 거였다.


쓸데없는 가정과 망상을 필요 이상으로 즐기며 살았기 때문에 MBTI 타입이 나와 동일하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한 번도 눈으로는 본 적 없는 망상이나 막연한 상상 같은 것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구현해서 내놓아쥬는 건 늘 반갑다. 현대에선 이제 뭘 봐도 놀랍지가 않은데 놀란은 놀라운 놈이라 언제나 못 보던 것을 보여주며 남의 몽상 범위까지 확장하도록 리드한다는 아저씨 언어유희로 1회차 관람을 마감하지만 n회차 관람은 아마도 결국 안 할 것 같고 나무위키에 잘 정리되어있을 줄거리를 읽으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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