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가장 큰 미덕은 공평함-조커가 말했지
나홍진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준, 천우희
장르가 무엇인지, 누가 무슨 역할이고 설정이 무엇인지조차에 대해서도 일부러 안 보고 갔는데(배급사가 폭스인 것 조차 몰라서 타이틀 뜰 때 상영관을 잘못 찾아들어온 줄 알았다.), 그래야 더 즐길 수 있는 영화인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장르영화에서 스토리 자체보다는 영화가 보는 자를 몰입하게 하는 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갖고 있는 본능적 공포심을 적절히 이용해 심장을 쫄깃하게 들었다놨다 하는지를 주요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내 기준의 훌륭한 영화에는 상당히 부합하는 영화였다.
[약 스포일러]
'설명이 불친절한 영화'와 '떡밥 회수가 안 되는 영화'는 엄연히 다르긴 한데, 이 영화에는 '설명을 생략한' 게 아니라 정말 떡밥으로 던져놓고 바다 저 깊은 곳에 그대로 버린 듯한 복선도 꽤 있기는 하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은 관객이 의심하고 현혹되거나, 헛갈리게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기는 하다.
사실 결론은 처음에 던진 그대로였고,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그 중간의 교란들 때문에 계속 다른 경우를 생각하게 했던 것이므로.
그리고 이런 교란에 활발하게 놀아나려면(재미있게 감상하려면) 이 영화의 장르가 뭔지조차 모르고 가는 것이 좋다. 영화가 끝난 분위기일 때쯤 '설마, 지금 엔딩 타이틀이 뜨는건가'라고 생각할 때까지도. 화면이 암전된 후 2,3초 후에야 감독 나홍진, 이라고 뜨는데 이것도 관객이 끝났나? 하고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계산한 것 같고.
떡밥 회수 안 된 부분들 때문에 저 평가하면서, 아다리가 완벽하게 맞거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서 기대와는 달랐다고 처음엔 이야기 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영화보다 재미있던 한국영화 다섯 개만 대 봐, 라고 하면 다섯 개까지는 못 댈 것 같다.
게다가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영화를 본 사람들과 이렇게까지 길고 많은 토론을 하게 한 영화도 드물었다.
(응? 포스터에 스포일러가......)
이 영화 속에서 연기 제일 잘하는 일본 아재의 정체는
(곽도원은 연기를 잘 해도 뭔가 악인같고, 황정민은 아무리 열일해도 이미 존재감이 너무 커져 자꾸 '황정민' 자체 같아서)
'나쁜 포스' 정도 되나보다. 성직자의 눈에는 악마로,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귀신으로,
사람이 본능 속에서 두려워하는 실체없이 여겨지는 존재 정도.
'부성애'는 한국영화 소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건가.
개인적 취향일 뿐이지만 나는 이 부분이 아쉽다.
이 영화 속에는 도시에 살며 미신이나 민간신앙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사람이 보기에도 재미있는 소재들이 가득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보기에도 획기적으로 재미있을 소재가 여럿 등장한다.
전라도 곡성에서 한 폭의 수묵화처럼 겹겹이 마을을 싸고 있는 산은 낮에는 아름다운 초록빛이지만 밤에는 음산함을 더 하고, 천만 원짜리 굿판은 그야말로 볼거리이고, 시골 마을 어디를 가나 있을 수호귀신 이나 잡신,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사람이 본능적으로 흥미로워하는 소재들인데,
(천 만 원짜리 굿 신은 정말 볼거리. 굿 한일전으로 교차편집)
이런 한국적인 소재 속에서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 부성애는, 아무리 좀 더 잘 팔리기 위한 장치라 해도, 굳이 있었어야 했나 싶은.
개인적으로 곽도원이 정육점에서 친구들을 모아서 산까지 올라가 좀비 만나는 부분과(좀비물 마니아임에도 이 부분은 웃겼으나, 애교로 넣은 볼거리 정도로 봐줄 정돈 되었음) '그 놈 잡아야 우리 딸 산다'며 울어대는 장면이 유일한 군더더기 같았다.
'그토록 사랑스럽던 딸'이 미쳐갔기 때문에 더 아빠는 절실해졌다는 메시지를 위해 조숙한 딸이 경찰서에 찾아와 잔망스럽게 잔소리를 하고, 아빠에게 됐다고 위로하며 커피를 먹여주는 '장치'를 너무 눈에 띄게 한 것도 약간 진부했다.
자고로 한국영화에서 부성애, 모성애, 가족애는
흡입력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자들이 쓰는 '치트키'같은 것으로 생각해오곤 했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장면까지 안 넣더라도 흡입력이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도 조금......
물론 이 영화에서 '피해자' '미끼를 문 자'가 느끼는 고통을 증폭하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흉흉한 일을 더 공포스럽게 느끼게 하는 장치가 바로 '직계가족'인 것은 맞다.
한 집에 살던 가족이 갑자기 미쳐서, 게다가 원래 신체가 가진 힘보다 더 저항하기 힘든 강한 육체적 힘을 쓰면서(좀비화)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서 오는 찝찝함이나 공포감은 더 크다. 일상적 공간에 피칠갑이 되어있는 장면을 뒤늦게 뛰어들어와 목격하는 가족의 심정에 그대로 몰입하게 되는 것도 공포를 더 한다.
다만 개인적 취향일 뿐인데 사실 나는 누군가의 감정이 극한까지 과잉된 부분을 영화에서 보고싶지는 않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세상이 무너진 심경을 겪는 자를 연기하면 우와, 하고 칭송은 받지만 사실 나는 다른 나라 배우들도 연기 못해서 그렇게 안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런 장면이 선호되지 않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