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세기 동안 누구도 넘지 못한 SF영화와 원작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space odyssey)/1968
반 세기 동안 누구도 넘지 못한 SF영화
아서 C. 클라크는 미래를 보는 직관력이 일부 작가들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케네디 대통령의 인류 달 착륙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빨리 성공한 1969년보다 1년 더 이른 1968년에 제작된 영화다. 원작소설도 1968년 발표되었다. 인류가 달에 가기 전에 제작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지금봐도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고, 요즘 영화들과 비교해도 위화감이 없다. 심지어 우주선 디자인, 포스터 폰트, 카메라 구도 어느 것 하나 미적으로도 구린 것이 없다. 48년, 거의 반 세기 동안 이 영화를 넘는 영화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듯 하다. '할'의 섬뜩한 붉은 렌즈와 상냥해서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대적할 악역도 반 세기 동안 열 손가락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고.
인류 발전의 여명에서 우주선까지
늘 먹이가 부족하고, 종종 맹수의 먹이가 되고, 다른 부족의 우두머리에게 당하고. 자연계에서 쪼렙으로 살던 인류가 도구를 '발견'한 후 지식을 축적하며 고렙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원작소설에 충실하다. 원작소설에서도 이 인류시초 여명 첫 챕터를 가장 좋아한다. 원숭이(인류의 시초, 호모 뭐시기 뭐시기이겠지)가 이를 드러내며 연장으로 사용하던 뼈다귀를 하늘 높이 집어던지고 이 뼈가 우주선으로 변하면서 모든 인류 발전의 역사를 압축하는 장면은 언제봐도 철학적이고, 이 장면의 비유를 넘어서는 장면을 다른 영화에서 본 적도 없다.
-원숭이 형태의 인류를 연기한 배우들 넘나 대단한 것. 얼핏보면 진짜 원숭이로 보일만큼 연기가 리얼하다. 접고 있어도 보이는 긴 다리를 못본 척 하고, 다른 부족 우두머리 연장으로 치러 달려가려고 일어섰을 때 너무나 사람 비율인 것만 빼면 정말 원숭이 같다.
'2001년'
2001년 데이빗(케어 둘리. 둘...리?)은 프랭크, 과학자 세 명, 인공지능 컴퓨터 HAL과 함께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를 타고 목성 탐사를 떠난다. 우주선을 유영하는 대신 바닥에 벨크로를 부착하고 무중력 상태를 보행하는 승무원이 기장실에 우주푸드를 배달하기 위해 180도 도는 장면은 어이없을 정도로 멋지다. 클라크가 틀린 것은 2001년에 사람을 태운 우주선이 목성으로 갈 수 없다는 것 정도인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후손이 되어 거장에게 죄송합니다. 스탠리 큐브릭이 미리 보지 못한 건 어마무시하게 네모지고 투박한 우주선 버튼 딱 하나인가. 막상 2000년대가 되니 2000년대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만 20세기에 2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먼 미래 이미지는 굉장했다. 2020원더키디도 4년 밖에 안 남았다.
기계의 역습: 차가운 고요 속 급박함
인공지능 컴퓨터 할은 아주 계획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생을 감행한다. 안테나가 고장났다는 거짓정보로 프랭크를 우주선 밖으로 쫓아낸 뒤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죽이고, 프랭크를 구하러 간 데이빗도 못 들어오게 하고, 데이빗과 우주선 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동면 중이던 과학자 세 명의 생체장치도 끊어버린다. 이 긴급한 과정이 거의 아무 소리없이 느리게 진행되지만 긴장감은 엄청나다.
할의 붉은 렌즈가, 할이 못 듣는 곳으로 가서 할의 인공지능 장치를 꺼버리자고 논의하는 프랭크와 데이빗의 입 모양을 번갈아 관찰하는 모습은 정말 소오름.
잠시 신체가 우주공간에 노출되는 우여곡절 끝에 우주선 안으로 들어온 데이빗은 할의 기억을 하나씩 소거하고 인공지능 장치를 내린다. 살인을 개시하는 시점부터 데이빗이 이 공간에 침투하는 동안 할은 내내 평정을 잃지 않은 차가운 기계음으로 할과 대화하는데 이 상냥하고 차가운 기계음이 몹시 소름끼친다. 대니보일의 선샤인 속 이카루스 호에 나오는, 좀비나 귀신보다 더 무서운 인공지능 컴퓨터나, 프로메테우스에 나오는 사이코패스같은 휴머노이드는 다 할의 후예들임이 분명하다.
인류는 세 번의 모노리스를 마주할 때마다 인류사에 혁신이 될 큰 도약을 한다.
도구를 발견하면서 먹이사슬 쪼렙에서 고렙으로 단숨에 올라가고, 달에 착륙하고, 목성에 도달하고
원작자의 소설대로라면 지금 진짜 세상 속 우리는 두 번째 모노리스를 만났어야 하지만 저조한 중이다. 죄...죄송합니다.
결국 기계의 역습에 대응하여, 신 인류가 되어 지구로 돌아간다(아니면 목성에 정착하여 눌러 사는 진보를 이룩하는 건가, 해석의 여지는 활짝 열려있어서 모호하다만). 신 인류의 시작을 암시하며 영화는 시작 때와 같은 짜라투스투라 음악과 함께 수미쌍관으로 끝난다.
'영화계의 모노리스' 다운 불친절을 극복하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역대급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영화는 진짜 역대급으로 불친절하다. 시작부터 '응? 오류인가?' 싶을 만큼 긴 어둠과 정적으로 시작하고(이는 태초에 빛이 있기 전 상태를 상징), BGM은 클래식이며, 거의 모든 장면이 정적 속에서 진행된다. 인류의 여명을 나타내는 원숭이 인류 단계에서는 대사가 한 마디도 없고,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함께 시작해 인류가 연장을 발견하고부터 우주선이 등장하고 난 뒤까지인 약 25-30분 이후 승무원이 첫 대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후반 스타게이트~결말까지는 넘나 그로테스크한데다가 암시와 비유만 가득하다.
이 불친절함을 극복하는데에는 세 번의 시도가 필요했는데, 한 번은 아름다운 클래식을 들으며 잠들었고 한번은 집에서 BGM 삼아 틀고 간간이 눈길을 주다가 내용 파악에 실패했다. 포인트는 집에서 감상하더라도 휴대전화로 딴짓을 하지 않고 초집중해서 보는 것이었다. 대신 옛날 영화를 볼 때 각오해야만 하는 촌스러움은 이 영화에 거의 없다. 우주선 내 버튼 투박한 거만 빼면 디자인도 심플 간결한데다 원작자가 훗날 NASA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니만큼 원작 자체가 우주에 대한 고증이 철저하여 조금도 이상한 점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시대나 살고있는 시대가 아닌 먼 미래가 배경이라 촌스러울 수가 없다. 일단 이 불친절함을 집중력으로 극복만 하면, 그동안(현대의 번쩍번쩍한 영화를 그렇게 보아왔는데도. 다시 한 번 되새기지만 이 영화의 제작 연도는 1968년이다!) 본 적 없는 신세계를 보고 넋이 빠지도록 감탄하게 된다. 역대급 악역 캐릭터인(심지어 인간도아닌) 할이 조성하는 지리는 긴장감과,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사실은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눈을 뗄 수 없다. 미적으로도 아름답고,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완벽하다. 한 사람의 인류에 대한 애정과 철학, 인문학적 과학적 지식이 다 들어가 있는 한 편의 완벽한 영상미술을 보는 기분.
원작의 필력은 첫 챕터만 읽어도, 책머리 작가의 글만 읽어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책에서 가정한 상당수의 가설이나 상황은 실제로 이루어지거나 실제 기술에 참고가 됐다. 누군가 이 영화를 '영화사의 모노리스'라고 표현했듯, 모든 현대 우주과학 영화의 기준이 될 정도로 혁신적 영화이다. 우주만큼의 무한 존경으로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