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조지 클루니의 <미드나이트 스카이>
2047년,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어 버린다. 일생 우주의 신비를 연구하는 일에 매진해온 저명한 과학자 오거스틴은 홀로 북극에 남기를 택하고, 인류가 이주할 곳을 찾아 목성의 위성 탐사를 떠났던 에테르(위쪽 하늘, 위쪽 하늘의 공기를 의미)호는 재앙 때문에 교신이 끊긴 지구로 돌아오던 중, 오거스틴과 연결된다.
종말이 와서 홀로 남겨진다면, 내 곁에 내내 따라다니며 풀지 못한 숙제가 될 기억은 어떤 것이 될까. 오거스틴은 홀로 남겨져 자신이 일생 걸어온 삶을 돌아보게 되고, 회한에 휩싸인다.
2020년 한 해 동안 작은 재앙(영화 속 재앙에 비해 상대적으로)을 겪으며 필수적인 동선만을 삶에서 남겨내고 난 우리는, 홀로 고립된 오거스틴처러 좀 더 삶 전체와 내면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해오던 일들의 많은 부분을 지워내고 반드시 필수적인 활동만을 수행하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지만, 내가 어떤 외적 활동들로만 삶을 가득 채우며 내면을 파고들 시간은 갖지 못했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사람이 늘 끊임없이 움직이고 무언가를 배우며 변화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겉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고하고 명상하는 시간은 그에 비해 곱절로 중요하니까.
[ ! 영화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
모든 것이 끝나버린 상황에서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삶,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더 돌아보고 살피지 못한 후회. 지나온 시간을 곱씹는 오거스틴의 곁에 어린 딸의 기억이 줄곧 따라다닌다.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콩을 골라내고, 나란히 누워 동그란 창문 밖의 먼 별들-아버지가 일생을 바친 것들-을 바라보는 일이 왜 그때는 쉽지 않았을까.
우연이지만 오거스틴은 가족을 등한시하면서까지 일생을 바친 연구로 소중한 것을 지켜냈다. 딸과 함께 바라본 북극성, 아버지 오거스틴이 마지막까지 걸어온 길은 딸의 항해에서 탐험에 아주 중요한 별인 북극성이 되었다. 하나를 넣는다고 반드시 하나가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이 삶이라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삶의 인과는 순환하며 대를 거듭하기도 한다. 어떤 간절한 희생은 그 허무함을 절감한 뒤 잊어버리고 있을 때나 삶의 장난처럼 보상되곤 한다.
오거스틴 역시 그의 삶 마지막에 사무친 회한을 씻을 수 있기를.
"나는 (우주를) 가리켰을 뿐이야."
우주는 늘 우리가 정의 내려주기 전에도 거기 있었지만 명명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기억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나아가서 겪은 공간과 바라만 보는 공간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삶에서 일어난 인과의 의미를,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우주를 가리킨 청년의 호기심은 인류가 좀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결과적으로는 제때 지키지 못한 것을 지키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우주를 가리켜 사람들이 탐험하게 하고, 온몸으로 사랑하는 것을 우주로 밀어내고 지킨 남자. 네스프레소 젠틀맨.
목소리에도 지문 같은 것이 있다고는 하는데 조지 클루니의 목소리가 지문이라면 남보다 선명한 곡선을 그리는 선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특별하게, 이 배우를 식별케 해준다. <서버비콘>에 이어 2년 만에 연출한 작품 <미드 나이트 스카이>는 릴리 브룩스돌턴의 소설 <굿모닝, 미드 나이트>(영화 개봉 훨씬 전, 홍대 북스 앤 리브로에 매니저 추천 작품으로 큐레이팅 돼 있던 덕분에 읽어볼 수 있었다)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 존재에 대해 철학하고 내면과 기억을 파고드는 영화이다 보니 너무(좀 많이) 잔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SF영화라고 하여 큰 스케일의 우주나 긴박한 아마겟돈 상황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영화 속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몰입하다 보면 존재에 대해 사유하게 되고 소중한 기억을 돌아보게도 만든다. 마냥 잔잔하지는 않고, 조지 클루니의 이전 출연작 <그래비티>를 떠올리게 하는 우주 사고 장면도 나름 긴박하고, 가장 신경 썼을 반전도 뻔한 듯 이야기의 마지막 퍼즐을 찡하게 완성해준다. 12월 23일부터 넷플릭스에 공개 서비스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