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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n 18. 2021

오래된 가족사진 속 우리

에브리바디스 파인


감광의 과정과 시간의 퇴적을 겪은 후 

낡은 사진 속에서 색 바랜 옷을 걸치고 우리를 마주 보는 

예전의 우리 가족은 아련하다. 


그때도 크고 작은 걱정이야 끊임없었겠지만 극도로 우울한 순간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잘 없을 테니, 

오래된 앨범을 열면 우리는 귀엽거나 행복하거나 뭐 그런 감정선 위주로 편집된 가족의 생애를 본다. 



가끔 가족은 서로를 망친다. 


밖에서는 내놓지 못하는 자신 내면의 괴물을 꺼내 험한 말을 하고 

무관심과 불친절, 과도한 간섭으로 서로를 할퀴기도 한다. 

지금 잘 풀리지 않는 일의 원인을 서로에게서, 서로가 준 상처에서  찾기도 한다. 


사진 속에서 때로 나보다 더 젊은 엄마 아빠에게,

내가 던진 무관심이나 나쁜 말을 거둘 수 있는 시점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어서 

지금보다 젊고 어렸던 가족사진이 아련하기도 하다. 


남아있는 시간이 아쉽고 자주 볼 수 없는 귀한 자식들 얼굴이 아까워 

자꾸만 순간을 붙잡아 사진 속에 담아두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현물이 된 것 같은 디지털카메라.



부모는 소원해진 자녀 모습을, 서로가 가장 가까웠던 순간의 이미지로 

가슴속에 박힌 사진처럼 늘 껴안고 살게 되는 걸까, 

병든 몸을 끌고 여행하는 그 먼 길보다 더 멀어 

가닿지 못하는 자녀들의 마음속이 아버지는 한스럽다. 


자신을 무섭게 몰아붙이던 아버지의 패기 로운 나이를 넘고 

생과 사의 경계에서야 

"괜찮아요 아버지, 아버지 잘못이 아니에요" 하고 

지난 시간과 화해할 수 있을 만큼, 

가족 간에도 단추 잘못 끼운 역사의 회복은 어렵다. 


하지만 노력하고 다가서서 그 먼 마음에 가 닿았을 때, 

거의 완벽하게 지난 일을 용서하고 껴안을 수 있다는 게 

가족 바깥사람들과 가족의 차이점인가.


항상 지나치게 엄격했던 아버지의 전신주를 그리며

그 전신주에 담겼을 마음을 기억하고 새겼던 데이비드.


목숨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너무 닮아있어 서로 다를 때 그 다름이 더욱 낯설고 용납되지 않기에

우리는 마치 자기 스스로에게 화내듯 관대함 없이 가족에게 화를 낸다. 


아버지 눈에 예쁘지 않은 길일지라도, 

길을 걷는 그 마음이 즐거우면 서로에게 최선일 것이다.

"행복하니?"

아버지의 질문에 고개 끄덕이며 아임 파인, 괜찮아요 하고 대답할 수 있는 것

그저 그것이, 자식이 어떤 길을 가든 

걸어가는 어린 뒷모습이 커다란 뒷모습으로 변한 후에도

하염없이 길 입구를 떠나지 못하고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을 아버지가 바라는 전부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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