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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Aug 18. 2021

'미안해'로 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

넷플릭스, <맬컴과 마리>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고, 

그중 알파요 오메가는 일반적인 싸움의 문법으로 풀이되지 않는 남녀 싸움. 


남녀의 싸움에는 승자가 없다. 

상처 입은 두 영혼만이 남을 뿐.


미안해로 가기 위해 밤새 막말 배틀 붙고 욕하고 울다 웃는 지난한 과정. 

'미안해'에 영혼이 없어도 안 되고 뭐가 미안한지 정확히 몰라도 안 됨. 

세상에 이 수위까지 싸워도 되는 건가 싶지만 모든 건 그들 사이의 합의.


“인간의 사랑은 문화적 배경 안에서 펼쳐진다. 이 문화적 배경은  무엇이 '정상적인' 사랑인가에 대한 강력한 인식을 만들어내며 어디에 감정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교묘하게 가르친다.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어떻게 갈등에 대처하며, 무엇에 흥분하고  언제 참아야 하는지 ,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상황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 알랭드보통, “관계” 중에서



그런데 격렬하게 싸우는 연인은 잘 헤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상대에게 거품 물고 따질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얘기고 관심의 증거다.


“우리는 상처를 준 당사자에게는 쉽게 화내지 못한다. 내가 원망해도 참아줄 것 같은 사람, 나에게 상처 줄 것 같지 않으며 내가 화내더라도 쉽게 내 곁을 떠나지 못할 사람에게 화를 낸다.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화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나를 친밀하게 여긴다는 희한한 증거이며 사랑의 징표라고도 볼 수 있다.”


- 알랭드보통, “관계” 중에서


어떻게 저렇게 잔인하게 자신만 아는 상대의 정확한 약점 과녁을 찾아 

카운트 펀치를 먹이는 걸까, 싶은 오래된 두 연인의 싸움.


사실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2차 대전에 불을 붙일 불씨는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는 걸 알면 소홀하게 대하지.

그 사람을 잃고 나서야 빈자리를 깨달아.

나를 당연하게 여기지 마."


우리에게는 잠재적 싸움의 소재거리가 너무 많다. 

미디어나 과거의 이상적 관계가 심어둔 이상향 때문에 

(이 사람과의 관계이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든)

내 사랑이 놀라울 만큼 비정상적으로

상식 밖이거나 상처 투성이로 여겨질 수도 있다. 

낭만주의적 사랑과 일부일처제의 역사는 놀라울 만큼 짧고 일부 문화권에만 국한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이 짧은 기간과 협소한 바운더리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인류의 본능은

우리의 사랑을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게 한다.  


“낭만주의적 사랑을 '사랑의 유일한 모습'이라고 전제하면서부터 비극이 되었다. 동물로서의 인간의 본성과도 맞지 않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도외시한 전제가 사랑을 불행하게 만든다.”


- 알랭드보통, “관계” 중에서



아무리 싸우면서 속내를 바닥까지 

다 까뒤집고 이야기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남에게 내 서러움과 억울함, 

원하는 바를 온전히 전달하기는 정말 어렵다.

운이 좋아 전달이 되고 상대가 가슴 깊이 이해한다고 해도

일생 살아온 습관이 쉽게 수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서로 이해하며 안 싸우는 커플'

그다음이 '싸우는 커플'

그다음이 '이해를 포기한 커플' 일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찾아보아야 할 사람은 관심사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은 아니다(그런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이견과 차이가 있더라도 비교적 관대하고  노련한 방식으로 함께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 알랭드보통, “관계” 중에서


그래서 연인은 또 싸운다. 또 싸우고 또 화해하기를 반복하다

유효기간이 다 되거나 너무 너덜너덜해진 사이

연인으로 지내본 적 없어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 신선한 다른 이성을 만나게 되면

그제야 긴 싸움을 다른 방식으로  끝내기도 한다. 


영화에서까지 피곤한 하이퍼 리얼리즘 말싸움을 보고 싶지 않거나 

삐져서 조개처럼 입 다물었는데 삐진 티는 오지게 내는 사람을 바로 옆에서 보는 듯 보고 싶지 않으면 

가볍게 패스, 강 건너 불구경하려면 추천.

(두 배우의 비주얼이나 연기, 예쁘고 유일한 배경인 집 세트, BGM의 감성이 좋기도 하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방식은 연민의 마음에 조금 더 맞출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공격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사실 얼마나  초조하며 곤혹스러운  상태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 알랭드보통, “관계” 중에서



우리가 상대의 무수한 단점과 

때로 이해할 수 없이 폭주하며 내는 화,

어둡고 치사한 밑바닥,

오랜 시간의 지겨움을 견디고  

의리를 지키며 서로의 곁에 머무르는 것은 

지난 시간과 추억의 소중함, 연민, 

각자 여러 가지의 이유이겠지만 

그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난 그냥 당신을 사랑해.

필요한 게 아니라고

그래도 사랑해, 

세상엔 당신을 그냥 사랑하는 사람도 있어."



때로 듣고 싶은 말은 단 한 마디. 

지난한 밤샘 싸움의 종결이

단 한 마디로 충분할 수도 있었는데,

말 못 하는 아기의 울음처럼

요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게 남의 마음.

그렇게 오래 잘 알고 지내도

전달되기 어려운 게 사람 마음인가 보다.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어도 당신의 영화가 이렇게 좋았을까? 

-아니.

난 그 말이면 충분했어." 


“이 맥락에서 ‘삐졌다’라는 감정을 관찰해보면, ‘상대방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굳이 세세히 설명하기는 싫은 상태’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삐지게 된 원인이 뭔가 객관적으로 해석되지 않을수록, 내심 그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었고 많이 기대했을 정황이라고 볼 수 있다.”


알랭드보통, “관계” 중에서


"미안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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