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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Aug 30. 2021

우린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뿐이에요

넷플릭스, <D.P.>




K-신파 free 드라마

넷플릭스가 오랜만에 수작 오리지널 시리즈를 내놓았다. 넷플릭스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웰메이드 한드. 드라마가 담아낸 상황은 우울하고 / 우울한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유머를 섞어서 최대한 가볍고 덤덤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런 진중한 가벼움(?)이 가능한 건 2화 등장부터 집중과 이목을 확 잡아끄는 구교환 배우 덕이 크기도 하다. 모든 주인공들이 눈물 흘리고 소리 지르는 대신 뒷모습과 표정과 자기의 대사만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에 시청자들은 비로소 정답이나 감정을 강요당하지 않고 각자 소재에 대한 자신만의 고민을 할 여백이 생긴다. 충분히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고 아리지만 아다치 미츠루 만화처럼 담백하고 정제된 여백이 가득하다. 

멋있는 대사 강박증도 전혀 없고, 눈살 찌푸리게 억지로 웃기려고 하거나 감정 과잉인 곳도 없고, 오랜만에 K-신파로부터 자유로운 드라마. 


+OST도 툭 내려앉는 얼얼한 마음에 한몫 보탠다. 정말 좋다. 





미필자의 인생 드라마

요즘 시대에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남직원들이 부당한 상황이나 시련 앞에서 조금 덜 궁시렁거린다는 생각. 지인은 군대 다녀온 남자에게 웬만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지시는 비교적...... 아니 아마 엄청나게 정상적 범주에 속해서 그렇다는 대답을 했다. 

그런 군대란 건 가보지도 않았는데 엄청나게 두려운 존재였다. 회사 동료들과 3~4일만 연수니 워크숍이니 단체 숙식하고 방을 4명이서 같이 쓰기만 해도 옆에 24시간 붙어있는 타인의 묵직한 존재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는데, 온갖 다른 사회 배경을 가진 불특정 다수와 2년 동안 단체 숙식 + @@@@ 를 겪어야 하다니. 지인은 또, 군대생활은 단체 숙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잠시 만만하게 보이거나 단체의 평범함에서 1미리만 벗어나 튀어도, 혹은 가만히 있어도 재수 없으면 괴롭힘의 대상이 테니까. 그런 위험을 겪거나, 그런 잠재적 위험에 깊이 몸 담게 되는 것이니까. 

가장 슬픈 이렇게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모두, 꽃다운 20대 극초반의 청춘들이라는 점이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사람들에게 너무 버거운 시련이 아닐까?





"입대를 안 했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을까요?"

드라마 오프닝 중 이준호(정해인 배우)가 거수경례 중인 단체 속에서 홀로 사복(훈련소 갈 때 입고 간 옷)을 입고 돌아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한 이미지가 이 드라마 전체의 고민을 잘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학교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짧은 자유를 채 다 누리기도 전에, 각기 너무 다른 생활방식과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한 공간에 두고 강력한 서열 문화를 도입하는 것. 이유가 뭘까?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신체 속박을 하는 것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데 부당한 지시나 괴롭힘을 참아야 하고, 모아만 놓고 벌어지는 일에는 수수방관, 아무도 부당한 상황에 적극 개입하여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젊은 청춘들이 왜 이런 감옥을 견뎌야 하는 걸까? 내가 이유를 속속들이 길이야 없지만, 혹시 평화롭지 못한 휴전 상황이 그저 "불안해서" 군대가 생긴 거라면, 지금과 같은 군 제도는 재검토돼야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는 거라면 뭔가 해결이 시급하지는 않을까. 왜 전 국민의 절반이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의무적으로 몸 담아야 하는지 똑 부러지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민방위까지도 끝난 군번들도 간혹 꾸는 악몽이 군대 재입대하는 꿈일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할 일이라면. 선임한테 이유 없이 "넌 그냥 와꾸가 맘에 들어" 라며 떠밀림 당하는 상황을 겪는 것이 전쟁에서 이기는 어떤 도움이 될지 다들 모르니까 말이다. 


넷플릭스에서 8월 27일부터 공개 서비스 중. 잘 안 들리면(?!) 묘하게 1초씩 스포 당하는 기분이지만 한국어 자막 켜놓고 봐도 된다. 이렇게 말귀 못 알아들으면 장수 같은 애한테 털린다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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