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은 피할 수 없다, <돈 룩 업>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딱 하늘 올려다보고 싶은 생각.
이 영화를 보려고 끊었던 넷플릭스 재결제했는데 결제하고 보니까 영화관보다 늦게 (크리스마스이브에) 릴리즈 되는 게 아닌가!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도 그래서 영화관에서 봐놓고 왜 잊은 걸까)
하지만 이 영화를 집에서 봤으면 잠들었을지도 모르겠고, 집순이라서 OTT계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얼리어답터이지만 디카프리오의 너부대대한 얼굴 윤곽을 조그마한 넷플릭스 화면에서 처음 마주하기는 아직 어색하기도 했으니까 그래 뭐 좋은 걸 크게 보았으면 되었다.
디카프리오는 여주인공 아리아나 그란데부터 남주인공 조나 힐, 스토이키 무지크 아저씨까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본 영화에서 혼자 통장 입금내역 확인 못하고 촬영장에 나온 듯한 용모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과학자 역 정도는 아직 할 수 있었다.
감성 콘텐츠와 명언을 풍부히 제조하면서 실제 섹시한 과학자로 인기를 얻었던 칼 세이건은 피규어로 등장한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딱 하늘 올려다보고 싶은 생각.
앞말과 뒷말이 인과를 물고 물며 이어지는 전형적 대화나 서사를 들을 때는 1.2배속으로 돌리고 싶어 지다가 잠이 들고 만다. 여기저기로 튀면서 하나의 가치관에 합의하는 대화, 뻔한 리액션이나 다 아는 얘기는 생략하는 대화나 이야기를 사랑하는데, 이 영화는 번역가님(황석희 번역가님)도 고생했다고 밝혔듯(늘 아담 맥케이 감독님 영화를 번역할 때는 즐거운 고통(?)을 느끼신다고 한다) 맥락을 마구 스킵 점프하며 이어지고 그래서 재미있다. 그래도 남의 나라 정치 경제에 대한 기반 지식이 없으면 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의 주제는 오늘날 인류의 모든 문화와 미디어 습성이기 때문에 쉽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설명하다가 귀찮으면 욕조에 앉아있는 마고 로비 보고 다 말해주라던 감독 양반은 현재 HBO와 기생충의 드라마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재미있지 않으면 주목을 끌지 못하는 세상. 인기가 많거나 쉽게 이해되지 않으면 훌륭하지 않거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모든 일은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공유하지 않으면 중요하지 않은 일로 잊힌다. 데이터 기반이라고 하면 진실이 되는 세상, 불편한 부정적 감정의 표출은 세련되지 못하고 덜 성숙한 태도로 간주하며 유쾌한 어른인 척 코스프레하는 세상, 잘생기고 유명한 칼 세이건이 얘기해야 더 신빙성 있다고 여기는 세상, 감성 한 방울 끼얹은 과학자나 기술자들의 사연팔이가 대유행하는 세상.
세상의 것들은 다수의 사람이 의미 부여하고 정의하는 바에 의해 사실이 되며, 권위가 있는 사람은 대의를 들먹이고 같은 편 같은 소속인 척하며 감정에 호소하여 다수의 사람을 설득하고 쉽게 원하는 바를 얻는다. TV가 말하고 다수가 믿는 진실은 언제나 가끔(자주) 틀린다.
4-5년 전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알랭 드 보통은, 언론이 정치색이나 의견을 갖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의견을 갖고 전달하는 뉴스는 청자가 알아서 필터링하지만 오히려 의견이 아닌 척하는 뉴스가 시청자의 눈과 귀를 더 현혹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100% 팩트이기만 한 날 것의 정보는 드물고 팩트의 나열도 그 나열의 순서에 의도가 깃들 수 있다.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이 틀릴 수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TV가 하는 말은 가끔(자주) 틀리다.
전문가의 권위에 기대 있어도 틀리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찾고 배워야 하지만 문해력이 떨어지거나 살면서 지나치게 제때의 배움을 스킵해왔다면 책 한 권 더 읽는 것보다 자신의 동물적 생존본능과 직관을 믿는 편이 더 낫다.
배워도 어쩌면 멸망은 피해 갈 수 없다.
남은 건 오만한 나의 종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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