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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Feb 08. 2022

빨대 꽂힌 바다거북 이미지가 숨기고 있는 더 큰 진실

반전에 반전 뒤통수 얼얼 넷플릭스 다큐 <씨스피라시>, 이것은 실화입니다


지난 3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해양 환경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다큐멘터리이지만 거듭된 반전 전개에 뒤통수가 얼얼한 게 웬만한 스릴러 저리 가라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실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극단적 주장이다, 선동적이라는 지적도 많이 받는 작품이지만 지구에 살고 있는 개인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한 시사점은 많이 준다. 


일본 타이지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돌고래 학살을 폭로한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이 나온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다큐의 시작은 <더 코브>에서 십 년도 더 전에 고발한 바 있는 그 타이지다. 저곳은 그렇게 폭로당하고 세상에 충격을 던져 줬는데 아직도 저러고 있구나. 나쁜 놈들. 바다와 고래, 돌고래를 사랑하며 자라왔다는 감독의 다큐멘터리 내용이 대략 예측이 된다고 생각할 즈음, 영화는 연속하여 사람들(나)이 잘 알지 못하던 이야기들을 폭로하며 뒤통수를 강타한다. 


1. 바다 생물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빨대 <<<<< 어업용 그물

맥도널드는 빨대가 은퇴했으니 뚜껑이를 이용해달라고 한다. 스타벅스는 앞장서서 그 어떤 커피도 종이 맛으로 바꿔버리는, 물에 잘 녹아 눅진하게 문드러지는 종이 빨대만을 제공한다. 

21세기 인류라면 거의 누구나, 얼굴에 빨대가 꽂히거나  해파리로 오인하고 비닐봉지를 먹은 바다거북의 사진을 보았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 중 개인들이 버린 빨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0.3%를 넘지 않는다. 빨대 때문에 사망한 바다거북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그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강력한 인상이 적은 수치에 비해 우리에게 직접적인 시사점을 주는 것이다. 



2. 타이지의 잔인한 학살보다 돌고래에게 더 해로운 프랑스의 부수어획

<더 코브>와 이 다큐의 도입부에서 돌고래 러버들을 그토록 열받게 했던 타이지 대학살이 프랑스의 부수어획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두 번째 뒤통수 가격. 우리는 타이지에서 돌고래의 피로 바다 전체가 에반게리온 퍼스트 임팩트처럼 붉게 물드는 광경과 인간이 마지막 꺼져가는 생명을 향해 몽둥이를 거세게 내리치는 비인간성을 목도했다. 그 장면이 그토록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마 그 직접성 때문이었을 테지만, 전체 돌고래 개체수와 피해 규모 면에서 타이지 어획보다 돌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대규모 어획이다. 


3. 지속 가능한 어업이란 건 없다

사람의 사고는 언어에 지배당하기 쉽다. 지속 가능한 어업이라는 건 없다. '최소한의 어업'이라면 모를까.



4.환경단체는 환경을 위해서 움직이나

다시 바다거북  이야기다. 환경단체는 대규모 어획을 행하는 자들과 결탁하여, 빨대가 코에 꽂힌 바다거북의 가련한 이미지를 팔아먹으며 성공적으로, 거대기업의 잘못을 개인의 죄책감으로 치환한다. 이 와중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환경운동가들은 어업모니터를 나갔다가 망망대해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실족 사고사 및 실종 처리되고 있다는 뉘앙스도 줌. 


5. 물고기는 고통을 느낄까?

기후환경 변화를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돌고래와 북극곰, 바다거북. 이들의 존재와 개체변화가 어떤 환경 변화의 마지노선 같은 것을 제시해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기 쉬운 이미지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동질감을 느끼고 감정을 서로 읽기 쉬운 포유류의 고통에만 주목하는가? 물고기가 고통을 덜 느끼고 자아를 덜 가진 존재라는 것은 입증이 확실히 되었는가?


6. 설득을 하려거든 씨스피라시처럼

널리 알려진 편견이나 상식을 차츰차츰 뒤집는 전개와 적절한 인포그라피를 활용한 데이터의 제시, 이 다큐는 아주 잘 만든 한 편의 프레젠테이션 자료 같다. 누군가를 설득하려거든 이런 전략을 펴라고 보여주고 싶은 교과서 같은 다큐다. 



7. 논란

'바다를 지키는 길은 생선을 덜 먹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다소 급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비약적으로 보이는 인과관계가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인류는 너무 쾌락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다. 덜 사서 공급을 줄이는 방법 외에 그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알려진 바와 다르게 실은 고통을 느끼는 물고기의 고통 경감과 위태롭게 얼음조각 위에 버티고 서 있는 북극곰에 대한 동정 때문이 아니라, 바다 생테계가 파괴되면 인류에게는 재앙이 닥치기 때문이다. 환경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하릴없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이 지구 생테계 최상위 레벨에 있는 릴림새끼들의 실제 지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연의 재앙 속도와 두뇌 하나로 신체의 나약함을 극복한 인류의 대처 속도 중 무엇이 더 빠를지는 관전 포인트겠지. 팝콘잼으로 환경변화를 지켜보기에 우리는 너무 그 속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8. 푸드 포르노와 동물보호

인스타그램에 오늘 저녁 먹은 모둠 사시미 사진을 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른다. '음식(특히 육류와 어류)'이 삶의 큰 자랑거리와 본인이 향유하는 어떤 문화가 된 요즘, 불판 위의 붉은 고기 사진을 올리면서 살짝 이것은 PC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는 불쾌한 사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든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 잡식동물로 태어난 인간이 굳이 채식을 하겠다고 설쳐야겠냐는 어르신들의 핀잔이나 회식 중에 고깃집 가서 상추만 뜯어먹는 직원을 보는 곱지 않은 시선(유난도 떤다는 식)은 요즘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촌스러운 견해가 되어버렸다. 그래, 인간은(나는), 자기 몸에 필요한 영양소보다 너무 더 지나치게 많이, 쾌락을 위해 먹는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컬러명 "살몬핑크빛"으로 염색된 연어가 실은 연어 본어가 싼 똥물에서 뒹구는 회색 살의 생선으로 둔갑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차츰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9.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직은 "육식이 지구의 환경을 파괴한다"는 인과관계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지는 않다. 지구 온난화 같은 것은 인간 활동의 부산물이 아니라 그냥 자연 자체의 큰 변화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인간에게는 지구를 파괴할 정도의 권한이 있지 않다는 견해. 무엇이 옳든 나는 지금 당장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지나친 육식을 비난할 생각은 아직 없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채식주의자가 자신의 견해를 밝혔을 때 사회에서 가감 없이 듣는 무례하고 불쾌한 말과 시선들, 회식에서의 차별 등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 SNS에 누군가의 눈엔 불쾌할 수 있을 붉은 살의 고기와 생선 사진을 올려대지 않는 것, 정도일 것 같다. 그리고 빨대 얘긴데, 알고 보니 빨대는 바다 오염 요소 중 그물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해보려 한다. 그것은 내가 지구와 환경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일 테니까. 개인의 삶은 자신의 태도를 통해 의미를 갖고, 작은 시작과 마음은 늘 중요한 거니까, 그렇게 조금씩 시작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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