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랄라 Jul 28. 2022

한국인이라면 가슴에 거북선 한대쯤은 출렁이고 있는 거죠

<한산: 용의 출현>,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영화

역사가 깡패인 이 영화를 객관적인 자세로 보기는 사실 어려웠다. 출근할 때마다 이순신 장군상과 매일 마주하는 한국인이라면 가슴속에 거북선 한 대쯤은 출렁거리고 있는 거 아닌가.  



몇 년 전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영화 <미드웨이>를 보면서 참 시원하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한산: 용의 출현>도 비슷한 느낌이면서 더 뜨거웠다. 모터조차 없는 쌩 아날로그 시대의 전쟁을, 한국사 내에 있는 전쟁을 이 정도 퀄리티의 이미지로 볼 수 있다니. 

영화는 전 국민이 아는 영웅을 굳이 새삼 일차원적으로 예찬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과 온도를 유지한 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려고 노력한다. 정작 조금 아쉬웠던 건 주변 인물들의 플롯이었다. 굳이 넣지 않았거나 달랐어도 될 정도로 뻔했지만 뻔한 만큼의 당연한 감동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아쉬움 정도는 또 뻔하게 주인공 등장 타임에 맞춰 주인공답게 나타나는 거북선을 보는 순간 또 씻겨나간다. 쇼타임에 딱 맞춰 주인공답게 등장한 거북선이 너무 압도적으로 시각화되었기 때문이다. 학익진을 <300>에서나 볼법한 퀄리티로 볼 수 있다니 자꾸 들썩이며 고쳐 앉게 될 수밖에. 




결말을 알지만 굳이 여러 번 보게 되는 좋아하는 영화처럼

역사가 스포일러라지만 출연 배우에 대한 정보조차 모르고 본 것이 더 재미있었다. <헤어질 결심>부터 왠지 발성이 전과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박해일 배우의 이순신도 좋았고(나는 이순신이 실제로 그와 같이 맑은 양반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와키자카 역의 변요한 배우는 압도적이었다. 어떤 작품에서보다 압도적으로 좋았고 이 영화 안에서도 압도적이다. 

주인공들이 긴 시간 돌고 돌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결국은 만나게 되는 로맨스 영화의 결말이 좋아서 여러 번 다시 보는 것처럼, 7년이 지난 후에야 엘리에게 전해진 노아의 편지 속 "진정한 사랑은 가슴에는 열정을 마음에는 평화를 가져다줘. 난 네게서 그것을 얻었고, 너에게도 주고 싶었어. 사랑해, 언젠가 또 만나"라는 구절을 들을 때마다 눈물 쏟는 것처럼, 유튜브와 서적을 통해 몇 번을 봐도 똑같이 자긍심이 차올라 뻐렁치는 역사. 거짓말처럼 9회 말 투아웃에 시원하게 터진 만루홈런 같은 전투, 난세에서 이끌어낸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승리.

예나 지금이나 잘나고 올곧은 자의 꼴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참 많아서, 이순신은 좌천과 유배를 겪었을 뿐 아니라 결국 누군가 그가 필요해 다시 찾았을 때조차 그게 합당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직도 사과하지 않은 채 고개 빳빳이 들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어른이 되어 TV 속 속에 나오는 권선징악은 신화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날들, 청렴하게 어릴 때부터 옳다고 교육받아온 어떤 것-영화 속에서는 '의'라고 언급된다-을 추구하며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역사 속 인물. 


가슴에 국뽕이 세련되지 못하게 마구 차오르는 지금, 좋아하던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가장 사랑하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작가의 이전글 빨대 꽂힌 바다거북 이미지가 숨기고 있는 더 큰 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