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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an 28. 2023

무엇을 기대했나? 공평하게 삶을 점령하는 눈물과 웃음

존 윌리엄스, <스토너>


<스토너>를 내 인생의 소설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느껴지고, 책의 어느 부분을 펼쳐도 마음에 들지만 어느 부분이 가장 멋진지 꼽으라면 꼽기가 또 어렵다. 이 소설은 항상 좋은 책을 알게 해주는 전 직장 동료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고, 하루 만에 다 읽고는 며칠 동안 사로잡혀 있었으며, 현 직장동료에게 추천하게 되었는데 그 동료(과년함, 남자임) 역시 새벽 두 시까지 이 소설을 읽은 뒤 마지막에는 아주 많이 울었다고 한다.


신형철의 이 리뷰가 이 소설을 꼭 읽고 싶게 만들었다.


“스토너의 삶은 뜻밖의 ‘기회’와 그에 따르는 ‘대가’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중략)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중략) 눈물이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이 나도록 슬픈 날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모두 저 속절없는 0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스토너처럼, 삶이라는 서술어의 보편 주어 같은 이 사람 윌리엄 스토너처럼.” -신형철(문학평론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렸을 때 소설을 읽는 일은 세상 전부 같았던 일이다가도, 자라서는 소설을 읽는 일이 자주 허무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걸 읽어서 뭐 하나 싶거나 읽으면서 이 책을 읽어내는 일이 의무로 느껴지거나, 다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이 잊혀 허무하기 일쑤다. 현대인에게 흰 종이에 글씨만 있는 매체를 조용히 읽어내길 바라는 건 이제 꽤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잘 쓰인 소설은 과연 다르다. 읽는 과정 자체가 너무 행복했고, 줄어가는 페이지가 아쉬웠고, 단 한 줄도 의무로 느껴지지 않고 매 순간 아름다웠다. 그래, 이게 소설을 읽는 행복과 재미였지, 세상에 이야기와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구나, 깨닫게 해 준, 성인이 된 후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인 책.


작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설을 읽고 ‘슬펐다’는 후기를 남겨서 많이 놀랐다고 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스토너는 영웅이라고. 나도 리뷰를 보다가 “솔직히 스토너는 매력이 없다”라는 누군가의 글을 읽고 놀랐고, <옮긴이의 말> 속 “이 사람아, 왜 당하고만 있어”라고 생각했다는 번역가의 말은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내 기준에 ‘당하고 산다’는 건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 쓰며 자기가 좋아하거나 믿고 있는 것을 조작하거나,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일에만 연연하며 사느라 아예 좋아하고 믿는 게 없어지는 뭐 그런 거다. 그게 진짜 남들한테 내 인생 도둑질 당하고 사는 거랄까.


작가의 말대로 스토너는 자기 삶 속에서 영웅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않았고 작은 성공과 아픔과 환희 속에 본래의 자신을 잃지 않고 나아갔다. 다가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냈고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 순하게 책임졌으며 자신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삶의 초반에는 성공과 기쁨만 가득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언젠가는 상실을 겪고, 후반에는 크고 작은 현실적인 걱정들로 보풀 가득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우연히 무슨 일을 겪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처하는 자세는 좀 더 많이 중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 좋고 나쁜 일에 대처하는 의도와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삶 자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순간들이 점이라면 그 점들은 나중에 내가 그리는 궤적에 따라 그제야 선으로 연결되고 의미를 갖는다. 젊다 못해 어렸던 시절 친구들과 맥주 한 잔 마시며 했던 대화-그 기억으로 일생 서로 연결될지 그땐 몰랐을 것이고, 한 때 천사처럼 나를 욕망케 했던 여자가 어떻게 내 속을 뒤집다 못해 인생을 헤집을지,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모른다는 것도 모른 채 결혼하게 될지 그 순간에는 환희로 가득 차서 미래를 확신하더라도 그게 잘한 일일지 아닐지 누가 미리 알겠으며,

짧지만 인상적인 대화를 나눴던 어떤 사람이 나중에 내 삶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내 눈이 따라가는 곳에 있던 무언가가 나중에 어떤 우연으로 내 것이 될지, 중요한 점의 순간들을 잊고 살다가 그것이 걸어온 길 속 중요한 좌표가 될 거라는 걸 그 당시엔 어찌 알겠는가.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게 삶이겠지.

(특유의 싸한 느낌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게 정말 특별한 감인지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특별한 건지는 꿈에서 번개가 쳐 눈을 뜨니 그 순간 번개가 치고 있는 것처럼 시제가 묘한 그런 거다)


나는 보통은 하 수상한 시절을 지내오는 어떤 인물의 기구한 연대기를 굉장히 지루해하는데, 자극적인 사건과 비루하고 가련한 순간들의 나열을 다 읽고 책을 덮을 때면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어 지기 때문이다. 불쌍하다는 건가 시대가 잘못했다는 건가 지지리도 복도 없었다는 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스토너의 이야기는 얼핏 아무 평가도 의견도 없이 건조하게 나열된 서사처럼 보이지만 그런 ‘점’의 순간들이 나중에 퍼즐처럼 선으로 맞춰지도록 면밀하게 짜여있어 몰입감이 굉장히 크다.


책의 장르조차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눈앞에 햇살 가득한 강의실 풍경이 그려지는 것 같은 아름다운 묘사들에 매료되고, 초중반 이후부터는 도대체 이 사람의 얘기가 어떻게 전개되려는 건가 정말 궁금해하고 경이로워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눈에 이 삶은 경이로울 것 없는 평범한 삶일 수도 있겠지만.

오랜만에 남은 페이지가 동나는 게 슬펐고 며칠 동안 아껴 읽어 보려고 했지만 외근 갔다가 오는 길이 너무 멀어 몇 시간 만에 남의 인생을 면밀하게 사찰해 버렸다.


"윌리엄 스토너는 젊은 동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과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가 분빌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낸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무명의 존재로서 근면하고 금욕적으로 살다 간 선조들에게서 혈연을 통해 물려받은 것에 대한 지식이 항상 의식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비록 스토너는 그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의식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심연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항상 단단하고 황량한 표정을 짓게 되었던 그 10년 동안, 그런 표정을 공기만큼 친숙하게 알고 있던 윌리엄 스토너는 어렸을 때부터 겪은 절망의 징조를 보았다."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그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넌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불과 몇 년 전까지 삶은 단순했다.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감사하면서 살았다. 조금씩 삶의 보풀 같은 걱정들이 생겨나는 나이로 진입하면서는, 누구도 삶에서 특별히 선택받거나 외면받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행복과 불행은 랜덤이고 누구도 어떤 의도에 의해 특별히 재수 없거나 특별히 행운을 거머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 전체에서 순간일 뿐인 어떤 젊은 날의 영광이나 성공에 심취할 필요도 없고, 자연스러운 생로병사와 저물어감에 크게 절망하거나 '나에게 왜' 류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나는 그냥 내가 일생 사랑해 온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작가가 생각하는 영웅 스토너처럼. 중요한 것과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다를 텐데, 내 깊은 내면에서는 관심도 없는 주제와 가치인데 다수가 가치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들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다. 고맙게도 중점을 두는 가치가 맞는 친구들이 많다. 지금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많이 배운다. 세상은 참 아름다우면서도 조악한 요소가 참 많은데, 어떤 곳에 있어도 주변의 다크함과 사악함을 생뚱맞은 운치로 만들어버리면서 이상한 품위와 맑은 느낌을 지키고 있는 나의 동료들. 타고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살아온 궤적에 대해 들으면서 늘 그렇게 자신을 지키려 노력해 온 것임을 알게 되었고 더 많이 배우게 됐다. '눈물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 나도록 슬픈 날들'을 지날 내일들 속에서,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계속해서 지켜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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