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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Feb 06. 2023

영화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바빌론>, 사랑하는 것에는 뜨겁고 장황한 데미언 샤젤


디테일하게 완벽한 것을 만들어본 사람은 안다. 정말 작은 차이가 완성품의 완성도를 크게 좌우한다는 걸. 창조자가 완벽하게 만족해서 외치는 "컷!"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CG로 후보정을 할 수 없어 화면에 담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합이 맞아야 했던 어떤 시대에는 그것이 좀 더 어려운 일이어서, 단 하나의 완벽한 컷을 위해 몇 번이고 부족한 것들을 메워서 다시 하고, 다시 하고, 또 다시 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합이 완벽하게 맞는 순간 감독의 입에서 떨어지는 컷 사인이 요즘 그것의 환희와 같지 않음을 모두가 알 것이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허리까지 비가 넘치는 홍수난에도 정장을 챙겨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우산을 받고(하의는 다 젖었는데 우산을 받쳐 든다) 출근을 하던 때인 지난 세기, 1900년대에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불가능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할리우드 영화현장에서는 엑스트라를 총으로 위협하여 일을 시키기도 하고, 앰뷸런스로 촬영장비를 급하게 실어 날아와 간신히 해가 넘어가기 전에 맞추기도 했다. 장비가 공수되는 동안 촬영감독은 머리를 감싸 쥐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능한 놈이라서 이렇게 찬란하게 아름다운 노을과 빛을 낭비했습니다." 

주 52시간은 상상으로도 할 수 없는 얘기고, 성희롱과 범법이 난무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씩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시피 해서 만들어낸 창작 시스템과 명성. 그 창조과정의 어머니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원로 배우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오는 시대의 변화에서 생각지 못한 장벽에 가로막혀 사장된다. 배우라는 직업이 대중에게 사랑받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국민의 친구, 연인, 아버지 같던 배우.

사람들이 그런 잭 콘래드의 음성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처음 들은 그의 음성과 연기에 감동받는 대신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한 것이다. 잭 콘래드는 자신의 음성이 나오는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을 찾았다가 예상하지 못한 관객의 반응을 보고 충격과 상처를 받고 황급히 몸을 숨긴다. 눈물을 흘릴 타이밍에 천재적으로 눈물의 양까지 조절할 수 있었던 천재 신예 배우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역시 '당나귀 같은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에 유성영화(talkie)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게 돼버렸다.



점점 저물어가는 자신의 시대. 슬럼프에 빠져가는 자신에 대해 악의적 기사를 쓴 가십기자에게 찾아가 묻는다. 나는 할리우드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다. 사람들이 배우를 환영하지 않을 때부터 영화판을 일구고 이제는 모든 사람이 스타를 사랑하게 된 시대를 만든 사람. 그게 나다. 당신도 오랜 시간 함께 했기 때문에 잘 알지 않느냐. 그런데 왜 나에 대해 그런 기사를 썼느냐고.

기자는 말한다. 정말 궁금한 건 내가 왜 이런 기사를 썼는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왜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웃는가가 아니냐고. 그런데, 이유는 없다고. 그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 알지만 그냥 당신의 시대가 끝난 것뿐이라고.

하지만 대신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가 영화 필름을 영사기에 서는 순간 당신은 살아나는 거라고. 그것이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영생이니까 감사한 일이라고.  


카메라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배우가 갑자기 불참하게 되면 급하게 대신할 적역자를 구해 아무 트레이닝도 설명도 없이 투입하고, 그런 멘땅에 헤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이 작품을 만들던 시대였기도 했다. 요즘은 이렇게까지 '우연히 사고로' 멋진 배우나 멋진 장면이 탄생하기는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저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은 더욱 자신의 업적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슬프고 몰락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데미언 샤젤은 항상 군더더기라곤 없는 영화를 만든다. <위플래쉬>, <라라랜드> 모두 얄미울 정도로 결말은 아쉽고, 그 냉정한 군더더기 걷어내기가 늘 영화의 완성도를 더 높이고 이 젊은 감독을 한층 돋보이게 해 줬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퍼스트맨에 이어 조금 더 군더더기가 있는 느낌이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 어려운데, 나는 왠지 이렇게 감독이 조금은 장황해진 작품에 조금 더 마음이 가기는 한다. 


물론 3시간 안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압축해서 넣지 못하는 감독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뭐랄까, 괴롭게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나보다 더 취한 상사가 떠드는 인생 서사 이야기 듣는 느낌도 나고 그렇기는 한데...... 

이 영화는 굉장히 새로운 방식으로 제4의 벽을 허물었다고 해야 하나, 이 영화의 결말 즈음에서의 영화관 장면은 지금껏 해보지 못한 체험을 갑자기 하게 된 느낌이었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이랬다면 어땠을까" 장면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첫사랑 생각하듯 영화를 생각하는 버전으로 변형된 느낌.  


역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머니볼>의 대사를 이렇게 변형해서 이 영화를 요약할 수 있겠다. "영화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그건 브래드 피트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족 1) 사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보다는 만화를 좀 더 사랑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영상보다는 내가 언제든 내가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는, '시간의 제약이 없는 예술'인 사진이나 그림을 좀 더 사랑하기는 한다. 내가 그렇게 사랑하던 것처럼 영화를 사랑하던 아이가 영화를 보고 자라 영화감독이 된 후에 만든 것이 이런 영화라면, 그런 관점에서는 이 영화가 감독의 역작이라고 보게 되기도 한다. 성덕의 러브레터 같은 거?


사족 2) 사마라 위빙(사탄의 베이비 시터/반지의 제왕 엘프족 최고형님 배우 휴고 위빙인가? 실제 조카)이 나오더라. 개인적으로 좀 더 예쁘고 상큼한 마고 로비(둘이 닮음)라고 생각하는데 같이 나와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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